하연이 연못가에서 기운을 다스리고 있을 때, 가현계 경주시에 위치한 백련문 白蓮門*의 문파 마당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참고 : 성천여검 문파계보
1) 정파 (正派)
천하의 질서를 유지하는 문파들.
● 백련문(白蓮門)
주인공 하연의 소속 문파
과거엔 강호 5대 문파였으나 현재는 몰락
첨성대와 오래전 인연이 있었으나 잃어버림
● 운천검문(雲天劍門)
천검류의 정통
강직하지만 폐쇄적
하연을 견제하는 제자들이 여기서 많이 등장
● 청풍누각(靑風樓)
정보와 첩보 중심의 문파
별자리 이상 현상을 가장 먼저 감지
하연의 스승 동방박사들에게 큰 흥미를 품음
2) 사파(邪派)
별의 어둠을 이용해 세상에 혼란을 주는 세력.
● 사성교(邪星敎)
28성좌 중 ‘흉성(凶星)’을 숭배
운명을 뒤틀어 인간·요괴를 타락시키는 ‘사성력(邪星力)’ 사용
전생에서 하연을 죽음으로 몰아간 배후로 의심됨
● 마황 AI 세력
수면계의 세력으로 영원한 에너지를 원하는 AI 세력
하연에게 패배했지만 하연이 회귀 후 수면계 곳곳에 잔존 세력 존재
첨성대의 ‘문’이 열리는 것을 다시 노린다
3) 중립 / 비밀 세력
● 동방박사(마기, Magi)
멜기오르 / 가스파르 / 발타살
별의 길을 연구하는 ‘성천술(星天術)’의 마지막 계승자
하연의 회귀를 이끈 장본인
별의 흐름, 문양의 힘, 시간의 결을 다룸
● 신라 유적 집단 ‘향월단(香月團)’
첨성대 관련 유물을 수집하는 비밀 조직
하연을 ‘선덕의 계승자’로 의심
백련문이 자리한 가현계의 경주는 인간계에 존재하는 과거의 도시가 아니였다. 가현계의 경주는 분지처럼 펼쳐져 있었다. 낮은 산들이 사방을 감싸 안고, 그 중심에 왕경이 놓여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연꽃 한송이가 돌위에 피어있는 형상이였다. 그 연꽃의 심장부, 가장 높은 언덕 위에 백련문이 있었다.
백련문은 성곽이 아니였다. 그러나 성곽보다 위엄있는 기운을 발산했다. 하얀 화강암으로 쌓아 올린 문루는 첨성대와 같은 비율로 설계되어 있었고, 그 기단에는 연꽃 문양이 겹겹이 새겨져 있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운을 흐르게 하는 문양이었다. 연꽃은 더러움 위에 화려히 피는 법. 백련문은 스스로를 정파라 칭하지 않았다. 다만 끝까지 더럽혀지지 않은 자리에 머물 뿐이었다.
문 아래로 내려다 보면 경주는 바다처럼 펼쳐졌다. 기와지붕의 물결, 석탑과 사원, 관측대와 연무장이 별처럼 박혀있었다. 거리마다 무인과 학자, 상인과 수행자가 뒤섞여 있었고, 그 발걸음 하나하나에 기운이 실려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 도시는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수련의 장이라는 것을.
도시의 동쪽 끝에는 옛 왕릉들이 있었다. 그러나 무덤은 더 이상 죽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곳의 성좌무공의 전승지였고, 밤이 되면 별빛이 능선을 따라 흐르며 무인들의 호흡과 공명했다. 북쪽에는 거대한 연무평원이 펼쳐져 있었고, 바람이 불때마다 검기와 기합이 뒤섞여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서쪽 첨성대가 보이는 방향에는 아무도 함부로 집을 짓지 않았다, 그곳은 여전히 하늘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백련문 정문이 위치한 곳에 서면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배련문의 장문인 백우현이 처음 그 자리에 섰을때,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압박을 느꼈다. 힘 때문도, 위엄 때문도 아니었다. 이곳은 수백년 동안 수 많은 선택이 내려진 자리였다.
살아남은 선택, 그리고 사라진 선택들이 겹겹이 쌓여 공기 자체가 무거워진 곳
"경주는 칼과 별이 함께 숨 쉬는 곳이다."
"여기서 검을 드는 자는, 이미 역사의 일부가 된다."
백련문은 그 모든 것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판단하지도, 개입하지도 않은 채.
그러나 가상현실계의 최고 여왕이 되려는 여왕쟁탈전이 시작된 지금,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백우현은 장담했다.
연꽃은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피로 물들 가능성을 안은 채로.
“저게… 뭐야? 저 빛은?”
마침 빛이 하늘위로 솟아 오를때 식사후 산책길에 나섰던 백우현과 유성진은 새벽이 환해질 정도로 빛이 공중에 퍼지는 광경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하연이 아닐까?
"하연이 또 뭔가를 한 모양이군!”
백우현은 하연이라는 이름에 미간을 순간 찌푸렸다. 하연을 처음 볼때 부터 눈엣가시로 여겼던 백련문의 사형인 유성진은 백우현의 표정에 변화가 있자 마자 반사적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 멀리 빛이 비치는 광경을 백우현과 같이 바라보았다.
'저 조그만 계집애의 생명력은 참으로 질기기 그지 없군.'
자신의 속마음이 혹시 들키지나 않았나 유성진은 백우현을 힐끗 바라 보았다.
"오래동안 보이질 않더니 역시 난 놈..아니 계집애..아니 아니 이것도 아니고 하여튼 엄청난 빛을 내 뿜으며 나타나시는 군 "
백우현은 다시 미소를 띄우며 빛이 발하는 곳을 한참 바라보다가 산책길을 재촉해 돌아갔다. 유성진도 백우현을 뒤따라가면서 다시 한번 뒤돌아 보았다. 굳은 표정으로.
하연은 손끝에서 피어오른 은빛 기운을 조용히 응시했다.
기운은 마치 살아 움직이듯 맥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하늘 위 하나의 별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미세하게 흔들렸다.
28성좌 중 첫 별, 각수(角宿)가 반응한 것이 확실했다.
“흐름이 시작되는군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멜기오르가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이건 단순한 내공의 빛이 아닙니다. 별과 연결되는 첫 신호지요.”
하연은 눈을 찌푸렸다.
“별과 연결된다니, 그런 게 어떻게——”
“말로 이해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닙니다.”
멜기오르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 별은 당신의 검기 패턴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제부터 ‘각성의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하연이 반응하기도 전에——
쾅!
몸 내부 심장에서 울리는 듯한 충격.
청각으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내공과 골수에서 울리는 진동.
하연의 무릎이 순간 꺾였다.
“……이게… 별의 소리…?”
멜기오르는 미소도 없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첫 번째 성좌가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하연은 떨리는 숨을 누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부터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 이전 생의 어느 길과도 다르다.'
“자, 제자님! 오늘은 중요한 날이에요!”
가스파르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달려왔다.
하연은 본능적으로 한 발 비켰다.
“가까이 오지 마.”
-여기오자 마자 저 꼰대들은 왜 이리 날 가만히 놔두지 않고 닥달하지?
“에이, 왜요! 오늘은 첫 번째 ‘성좌 시험’이라구요!”
“시험?”
가스파르는 작은 나무 상자를 열어보였다. 그 안에는 별무늬가 새겨진 작은 구슬이 담겨 있었다.
“각성된 성좌의 힘을 완전히 체화하려면, 이 ‘성인구(星印珠)’를 기운으로 녹여야 해요.”
하연은 의심의 눈으로 구슬을 들여다보았다.
“이걸… 먹으라고?”
“아뇨! 기로 해체해서 몸에 스며들게 하는 거예요. 근데——”
가스파르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성인구가 스스로 시험을 보기도 합니다.”
"뭐?"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쨍!
구슬이 번쩍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다음 순간——
하연을 향해 날카로운 별빛이 발사되었다.
“……!”
하연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며 검기를 뽑았다.
파직!
기운이 공중에서 흩어지며 빛의 잔해가 떨어진다.
가스파르는 손뼉을 쳤다.
“좋아요! 별의 직진성을 그대로 사용했네요. 역시 각수는 공격 타입이죠!”
하연의 눈빛이 차갑게 가스파르를 향했다.
“이게 도대체 뭐야?"
“죽지는 않아요! 아마도요!”
“……아마도?”
하연은 숨을 들이쉬며 시선을 공중의 성인구로 옮겼다.
‘그래. 수면계로 회귀하려면 별의 힘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연은 검을 들었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주변 공기가 뚝 끊어진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성인구를 향해 일격을 휘둘렀다.
— 일점천별(一點天別).
빛의 중심을 가르는 미세한 궤적.
그 순간 성인구가 산산이 흩어졌다.
은빛 가루가 기류를 타고 하연의 목 뒤 문양으로 스며들었다.
몸 안에서 청명한 울림이 피어올랐다.
‘……연결됐다.’
하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자신의 기류가 별 하나와 맞닿는 감각.
가스파르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축하해요! 첫 번째 성좌, 완전 각성!”
가스파르의 시험이 끝난 직후,
하연은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발타살이 서 있었다.
'뭐야 이 꼰대는 인상이 참 더럽네'
그는 말없이 손에 든 시간왜곡 장비를 가볍게 눌렀다.
찌잉——
주변의 바람이 멈추고, 떨어지는 나뭇잎이 공중에서 고정되었다.
하연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시간이 멈췄어?”
발타살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걸음을 내딛었다. 멈춰 있는 세계 속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따라와라.”
하연은 따라 나섰다.
'이 분은 말이 짧네.'
발걸음마다 무거운 압박이 느껴졌다.
세계가 그녀의 뒤를 늦게 따라오는 것처럼, 움직임에 딜레이가 생겼다.
“이건… 흐름의 왜곡.”
발타살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첫 번째 별을 얻었다면, 이제 그 별을 지킬 수 있는 ‘찰나’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순간——
발타살의 검이 번쩍였다.
슈욱!
하연이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막아냈으나,
방금까지 검을 뽑는 동작조차 보이지 않았다.
“……언제.”
“지금 네가 느끼지 못한 그 0.1초.
그것이 목숨을 가른다.”
발타살의 검끝이 하연의 목덜미 바로 옆을 스쳤다.
“나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살아남는 감각’을 가르친다.”
하연의 호흡이 깊어졌다.
발타살의 눈빛은 밤처럼 고요했지만, 벼락 같은 압박을 지니고 있었다.
“베어라. 그리고——망설이지 마라.”
그 순간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뭇잎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사각 소리가 났다.
하연은 숨을 고르며 검을 세웠다.
‘……이런 방식은 처음이다.’
동방박사의 세 스승은 각자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길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하연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