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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May 15. 2021

[초보고딩엄마의분리불안극뽁일기52]

기다림의 시작

[2019년 11월 14일]


D-day


소고기 뭇국

낙지젓갈을 넣은

도시락을 싸고

여의도여고로 출발


녀석은 그리 흥분되지도

그리 가라앉지도 않은 얼굴이다


교문 앞까지 승용차가 들어갈 수 없어서

대로변에서 황급히 내리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녀석이 핸드폰을 놓고 가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해놓고 보니

끝나고 만날 일이 막막해졌다


이런...

여전히 어리바리한 모녀다


그래도 끝날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줄 동기 엄마가 있어서

일단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종일 혼자 있다가는

뭘 해도 힘들었을 텐데

얼마나 다행인가


단골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커피도 한잔씩 주문했다


엄마의 초조한 기다림은 잠시 눌러두고

위로와 공감으로 무장한 수다를 떨며

녀석들과 함께 마라톤을 시작한다


무용담을 방불케 하는 고3 엄마들의 입시 이야기는 한번 시작하면 끝이 날 줄을 모른다

특히 예체능 입시는 내신, 실기, 면접, 수능까지

아이도 부모도 쉴 틈 없이 몰아친다

체력 싸움에 멘털 싸움,  뛰어난 재능은 물론이고

게다가 경악할만한 경쟁률을 뚫는 행운까지 요구하는 

어마 무시한 전쟁이다


녀석은 뒤늦게 인문계를 결정했지만

친구들 대부분이 영화전공으로 가기 때문에

나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손에 땀이 나도록 긴장이 되는데도

지금 내 앞에 앉아 폭풍 수다로

이 긴 시간을 달려주는 동지가

오늘따라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수학시험 끝났겠다, 점심시간이네

하면서 긴장된 마음을 함께 나누다 보니

그리 힘들지 않게 마칠 시간이 되었다


그간의 노력을 알기에 부족해도 어쩌겠나 싶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마음이 조금씩 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차피 수시에 대한 기대도 내려놓은 지 오래고

정시까지는 한 달이나 남았으니

녀석과 여행 갈 생각에 갑자기 나는 신이 났다


다시 녀석을 만나러 가는 길에 어렵사리 친구 하나와 연락이 되었고 무사히 픽업에 성공했다


녀석은 제법 덤덤했다

수학, 영어는 노력한 만큼 최대치를 끌어올린 것 같은데

자신 있어하던 국어랑 사탐이 오히려 힘들었나 보다


아쉽지만 녀석의 외로운 싸움의 끝을 위로했다

뭐, 이제 손을 떠났으니 결과 나오면 또 거기서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실전에 임하기 전엔 목표는 높게 잡고

그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노력했다면

결과가 어찌 됐든 후회나 반성보다는

자신이 처한 그 상황에서 열심히 고민하고 궁리해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한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젯밤 녀석에게 두툼한 통장 두 개를 내밀었다

백일 전부터 하루에 만 원씩 넣으며 녀석에게 매일 쓴 통장 편지였다

게으른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도였고

합격하면 스위스행 티켓부터 사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작은 선물이었다

주욱 읽어가던 녀석은 슬쩍 눈물도 훔쳤다

이 선물이 결코 부담이 되지 않길

그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딸을 응원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느껴지길 바란다





친구들과 한바탕 스트레스 풀러 갈 줄 알았던 녀석은

소박하게 엄마와의 데이트를 선택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관인

여의도 cgv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맛난 저녁도 먹고 귀여운 패딩점퍼도 하나 장만했다


찰싹 붙어 있는 녀석에게 오늘은 엄마의 체온이 조금은 위로가 되길

진짜 고생 많았어


온 몸에 힘이 빠진 듯 노곤한 밤이다


글ㆍ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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