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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나의 하루
by 황길환 Oct 11. 2017

감정적인 여자, 이성적인 남자 같은 소리 하네


 연애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3년 차.

이제는 서로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나눴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조금 색다른 서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막연하게 내가 (여자니까) 감정적인 쪽이고 남자 친구가 (남자니까) 이성적인 편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는 어떤 면에서 정반대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를 한 편 본다면, 나는 그가 느끼는 감정의 10% 정도밖에 못 느끼고 영화관을 나오는 식이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이 뭔지는 알겠지만 크게 이입이 되진 않고 그래서인지 영화 내용도 본 후에 거의 즉시 까먹는다. 하지만 그는 영화의 명장면과 명대사가 마음에 깊이 남아서 아주 사소한 장면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어서 나를 놀라게 한다. 음악 역시도 그렇다. 나는 음악보다는 정보 전달 위주의 팟캐스트를 훨씬 많이 듣는데 그는 재즈처럼 분위기를 만드는 음악을 선호한다. 영화나 음악 감상 이외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는 감성적인 여자와 이성적인 남자의 이분법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감정 불능에 빠진 남자들
@Fernando Cobelo

 

 그와 얘기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라는 동안 내 주변에는 나보다 감성적인 남자아이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갈수록 이런 남자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남자아이들은 커가면서 점점 더 남자 다울 것을 강요받는다. 남자들의 서열은 체험해본 적이 없지만, 아마 감성적인 아이들이 자라기에 우리나라 남자들의 세계는 너무 척박하지 않을까. 비단 중고등학교뿐만 아니라 군대, 대학, 회사를 가서도 남자들은 서로의 남성성을 아주 꾸준히도 확인하더라.


 하지만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보살 필만한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면 감정은 점점 안으로 숨기 마련이다. 특히 감정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것이 금지된 상황에서 남자아이들은 점점 감정 표현에 서툴어진다. 결국 어른이 되어서는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고, 마치 남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감정인 것처럼 ‘분노’ 외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불능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자신이 감정 불능 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무뎌진다는 건 더욱 비극적이다.



감성적이길 강요받는 여자들
@Fernando Cobelo


 그렇다면 여자들은? 여자애들도 남자아이들이 감성을 거세당하듯이 이성을 거세당하지는 않을까?

내 경우에 대입해보면 우선 여자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마음껏 웃고, 울고, 화내고, 찡찡거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에 남자처럼 감정 불능이 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반대로 감정 과잉처럼 된달까. 나는 종종 굳이 감정적이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과하게 친절하게 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자동적으로 리액션을 하거나 공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여자의 이성은 남자의 이성보다 저평가받는다. 카리스마 있는 남자는 그냥 유능한 남자, 리더십 있는 남자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카리스마는 기 센 여자로 평가받는 것처럼 말이다. 기 세다는 말을 평생에 걸쳐 들어온 나로서는 이런 말이 칭찬이 아님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성적이란 말은 어떤 현상이나 주제에 대해 자신의 명확한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자신만의 논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성적이란 말보다는 자기주장이 강하다 (이 역시 기쎄다와 마찬가지로 칭찬은 아니다), 고집이 셀 것 같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를 들어왔기 때문에 내가 사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성격이란 것을 나중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냥 내가 성격이 안 좋은 건 줄로만 알았지. 참나.




 우리나라는 참 정상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한다. 2017년에도 아직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말이 종종 들리는 걸 보면, 아마 아직도 많은 감성적인 남자아이와 이성적인 여자아이들이 고통받고 있을 거다. 지금부터라도 어른들이 논리적인 여자아이랑 감성이 풍부한 남자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칭찬해준다면, 조금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특별함을 더욱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개뿔, 우리는 모두 같은 지구인일 뿐이다. 성별이라는 기준만으로 평가되기에는 너무 복잡한 그런 지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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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HCI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입니다. 인공지능과 로봇, 그리고 사람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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