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긴 글을 남기고 싶어서 쓴 글.

생각을 정리하며.

by 백윤호

새벽. 눈을 떴다. 전날 마신 술이 훅 해독됐다.

평소 자던 시간보다 일찍 잤다. 10시. 평소엔 일을 할 시간. 놀 시간. 그러나 어제는 자야되는 시간.

소주를 한 병 급하게 마셨다. 뭔가 취하고 싶었다. 큰 결정을 해야될 때 일부러 빠르게 마신다. 머리를 텅 비우고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새벽에 깨면 금상첨화. 쓰라린 고통 속에 명료해진 생각이다.


1. 사건이 있었다. 팀 내부적으로 심각하다. 누군가에게 쓰다면 쓴, 아프다면 아픈 소릴 해야 한다. 그러나 합리적이어야 한다. 불평할 순 있어도 비논리적이어선 안된다. 칼을 잘 갈아 누군가의 잘못을 쳐내 도려내야 한다.


2. 목표는 명확하다. '잘못'이다. 칼을 잘못 사용하면 뼈, 내장까지 다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해야한다. 썩은 부분을 잘못 도려내면 어설픈 봉합만 된다. 곧 몸 전체로 전염된다. 자그마한 종기가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다.


3. 그렇다고 너무 많이 잘라낼 순 없다. 종기하나 짜자고 마취며 수술을 할 순 없다. 과하다. 과한 도려내기는 몸은 살릴 수 있어도 기능을 살릴 순 없다. 자칫 전체 균형이 무너질 수 있는 일.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이성적인, 그러나 합리적인 한도에서 칼을 벼리고 써야 한다.


4. 고민은 길고 결심은 빠르다. 칼을 갈고 쓰는 일만 남았다. 어느 정도로 써야할지, 쓰게 될지는 명확하다. 그러나 결과를 미리 볼 순 없다. 사람 사이 일은 항상 '맞아 떨어지는' 일이 없으니까. 최선을 다하고 결과만을 겸허하게 기다리면 된다.


5. 생각을 정리한 뒤 불을 켰다. 책상 앞에 앉아 지방을 쓴다. 한자를 '그리면서' 이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형식을 갖춘다는게 효도인가 싶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바치는 긴 글이 낫지 않나. 이젠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는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아니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일지도.


6. 껌 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하루에 한 통을 다 씹을 때도 있다. 매번 어딘가를 갈때면 껌과 커피를 필수로 산다. 심할 때는 껌 없이 돌아다니는 걸 상상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껌을 씹어 입안 가득 향을 맴돌게 한다. 달콤함이 빠진 껌은 장난감이다. 이와 이 사이를 씹으면서 찌꺼기를 제거한다. 이내 '퉤' 뱉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 껌을 '최선을 다해' 사용한 느낌이다. 이 느낌이 좋았다.


7. 일을 하기 위해 사는지, 일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 헛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불필요하게 많은 일을 한다는 생각은 든다. 바쁘다고, 일이 많다고 얘기하는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 아닌가 싶다. 커팅과 휴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 돌아오는 5월, 어디론가 가야겠다. 혼자든, 둘이든, 셋이든 더 많이든. 가서 생각을 정리하고 휴식을 하고 여유를 찾아야 겠다. 친구를 보던지 해야겠다. 마음이 허하고 아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른네 번째 언어- 튜체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