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AND RESPONSE

대화의 본질

by 세인트

10장. CALL AND RESPONSE - 대화의 본질

재즈의 원초적인 유전자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콜 앤 리스폰스(Call and Response)', 즉 주고받기가 있다. 먼저 한 명이 허공을 향해 노동의 고통이나 천국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면(Call), 이어 나머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받아 자신의 숨결로 화답한다.(Response). 이것은 단순한 후렴구의 반복이 아니라 앞선 이의 고통을 내가 대신 짊어지겠다는 약속이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생존의 몸짓이다. 재즈에서 먼저 솔로가 부르고 뒤를 이어 밴드가 응답하는 교차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소통 방식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무수히 많은 말을 쏟아내며 살지만, 정작 진정한 의미의 '응답'을 주고받는 순간은 드물다. 현대인의 대화는 흔히 '동시에 진행되는 두 개의 독백'이라 불린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할 말을 머릿속으로 고르느라 바쁘고,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상대의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은 재즈로 치면 선창자의 테마를 무시하고 자기 악보만 고집스럽게 연주하는 불협화음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의 단절은 말이 없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던진 선율에 반응하려는 의지가 없을 때 발생한다. 진정한 응답은 상대의 말이 향하는 의미의 길을 온전히 따라가 본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공명(resonance)'이어야 가능하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이 털썩 주저앉으며 "오늘 정말 긴 하루였어"라는 한마디. 그것은 시간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단함을 누군가 알아채 주길 바라는 '부름'이다. 이때 "나도 오늘 힘들었어"라며 자신의 고단함으로 대답한다면 그건 박자를 무시한 끼어들기다. 훌륭한 응답자는 자신의 악기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박자를 그대로 받아 안는다. "힘들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데?"라고 되묻기만 해도 된다. 나의 대답이 능숙할 필요도 없다. 그저 상대의 부름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도록 따뜻하게 받아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다시 연주를 이어갈 에너지를 얻게 된다.


유능한 협상가나 리더는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기 전에 상대의 의견을 먼저 '반사'해준다. "당신이 걱정하는 부분이 예산의 효율성이라는 말씀이시죠?"라고 상대의 핵심 테마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연주해 주는 것은, 재즈 연주자가 앞선 솔로의 멜로디를 자신의 솔로 도입부에 녹여내는 것과 같다. 상대는 자신의 부름이 정확히 전달되었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그때부터 비로소 마음의 빗장을 열게 된다. 대화란 결국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소리를 재료 삼아 새로운 화성을 쌓아 올리는 공동의 즉흥 연주이기 때문이다.


사실 '콜 앤 리스폰스'를 완성하는 것은 화려한 응답이 아니라 인내심 있는 '기다림'이다. 상대가 부름을 마칠 때까지 내 소리를 잠시 죽이고, 그 여운이 내 귀를 거쳐 마음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재즈 연주자들이 서로의 눈빛을 살피며 숨을 고르는 그 찰나의 정적은 결코 빈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에 올 응답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숙성의 시간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침묵을 두려워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상대의 부름을 가장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성급한 끼어들기는 리듬을 깨뜨리지만, 진중한 기다림은 대화에 깊은 그루브(Groove)를 만든다.


더 나아가, 이 주고받기는 나 자신과의 대화에서도 유효하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불안이나 슬픔의 부름에 우리는 얼마나 정성껏 응답하고 있는가. 그 감정들을 '나약함'으로 규정해 서둘러 입을 막아버리지는 않았는가. 내 안의 우울이 블루 노트를 던질 때, 그것을 밀어내기보다 "그랬구나, 지금 많이 힘들구나"라고 응답해 주는 것 또한 삶이라는 길고 소중한 곡을 완성하는 중요한 마디다. 나 스스로에게 다정한 응답자가 되어줄 때, 비로소 타인의 부름에도 여유 있게 반응할 수 있는 넓은 화성을 갖게 된다.


살면서 때로는 부르는 자가 되고, 때로는 응답하는 자가 된다. 누군가 나를 향해 작은 신호를 보낼 때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내 목소리를 보태는 것, 그리고 내가 외로울 때 누군가 나에게 응답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 이 신뢰의 주고받기가 반복될 때 우리 삶이라는 곡은 비로소 풍성한 오케스트라로 거듭난다. 혼자서는 절대 낼 수 없는 화음이 서로의 부름과 응답 사이에서 피어나는 순간, 비로소 소통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고독한 개인이 타인과 연결되어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내는 기적의 순간이다.


오늘 내가 마주할 수많은 대화 속에서, 상대가 던지는 작은 부름 하나를 놓치지 말자. 거창한 위로나 정답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상대의 박자에 맞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거나, 상대의 말 한마디를 내 목소리로 다시 확인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의 그 정성 어린 응답 덕분에, 지루하게 반복되던 누군가의 하루가 멋진 재즈처럼 기억될 것이다. 인생은 혼자 쓰는 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부르고 응답하며 함께 써 내려가는 악보 없는 연가(戀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나를 향해 아주 작은 신호를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만의 따뜻한 리스폰스를 준비해 보자. 그 작은 주고받기가 모여 결국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인생의 교향곡이 완성될 테니.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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