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문제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여 해결방법을 얘기하거나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고서는 변화나 발전을 일으켰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고서 지식이나 이론을 주장하여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집단 행동은 하는데, 해결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변화는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는 회피하지 않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한 대응하는 방법을 찾기 마련인데, 이는 코로나 사태나 의료정책이나 마찬가지이다. 당면한 문제를 넘어가는 것보다 골치아픈 일들을 회피하는 태도에서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겉보기에 좋게 봉합한다고 해서 현실에 남아있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가면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 문제는 학문적인 토론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기 대구 시기 이후, 정부에서 3T 방식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대부분의 학문적인 비판이 사라지다시피 했는데, 질병관리청은 예방접종 도입 이후에는 최소한의 기준도 지키지 않고 언론을 통해 프레임을 만들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는데도, 제대로 비판이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오미크론 이후에 인구집단의 공포심이 낮아지고, 병원에서 마스크를 벗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무엇보다 학문적인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이 상황을 벗어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질병관리청을 포함한 방역당국은 예방접종 도입 이후에는 행동에서 보건학적 관점을 완전히 버렸다. 지금도 언론을 통해 식중독, 폐렴, 백일해 등 각종 감염병 관련 뉴스들이 도배를 하고 있는데, 제약회사의 이익과 권력에 방역장사를 하는 것 외에 하는 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와 같이 대학과 병원들에 각종 예산을 뿌리면서 넘어갈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코로나도 마치 상황을 적절히 관리했던 것처럼 보이게 하여 넘어간 이후에, 감염병마다 적당한 기준을 만들어서 계속 활용하려 하는 것 같지만, 급성기 감염 유행이 그렇게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급성기 질병의 초기에는 의사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회복된 이후에는 환자가 스스로 알아서 하듯이, 사람들도 방법을 알아버린 이후에는 공포심이 생기지도 않는데, 그런 행동을 지속하다가는 무슨 일이 언제터질지 모른다. 사건이 터진 이후에, 그래도 저런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반 시민들이 알아주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집단으로 하는 일들은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를 잘 해야 한다. 특히 과거에는 효용이 있었으나 지금은 쓰임이 사라지고 부작용만 양산하는 것을 없애는 일도 잘 해야 한다. 감염 유행은 상황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제약 회사 이익만 없었으면 벌써 오래전에 사라졌을 일인데, 지금은 정치적으로는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학문적으로만 비판이 나오면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무너진 것을 바로세우는 일이 그냥 되지는 않는다. 행정기관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지, 학문적으로는 자유로운 얘기들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의사는 법적인 면허를 부여하고, 적절한 교육수련제도를 통해 양성하는 것이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고 인정받는다. 그러나 법적인 면허를 부여받는 이상, 여러가지 측면에서 법이나 규정을 통해 통제하게 되는데, 진료시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이런 일은 필요하다. 병상 등의 자원에 대해서도 진료권별로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가 필요하며, 개별 의원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마약성 진통제 처방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의사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통해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방향으로 해야 하며, 수술방 CCTV 설치와 같이 감시와 통제를 해도 달라질 것도 없고,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 요즘처럼 불필요한 의료소송이 많이 일어나면 국가가 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의료소송이 나타나지 않도록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법적인 면허를 부여받은 이후에 교육수련제도와 자율규제를 통해 진료 수준은 높일 수 있어도, 사람의 욕망은 집단에서 통제할 수 없다. 법이나 제도를 통해 의료에 대한 투자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은 무분별한 이권 추구를 막기 위한 것인데, 이는 진료시의 자율성 보장과도 관련이 있다. 병원의 이익을 위해 진료 내용이 영향을 받고, 코로나처럼 국가 규정이 이상해도 영향을 받는다. 요즘은 서울 대형병원들을 비판하면서 국가 정책에 대해 정치 논쟁이 벌어져 엉망이 되기도 한다. 병상 등의 자원 통제나 의사들에 대한 법적 처벌과 같은 일에 의사 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낼 필요가 있고, 이것이 결국은 진료시의 자율성 보장에도 중요하다. 이후에 외국과 같이, 일차의료에서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환자 문제를 기반으로 여러가지 일들에 참여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코로나 시기부터 언론은 정부나 일부 전문가 집단의 관점만을 반영해서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번에도 교수, 전공의, 의사협회 간의 싸움을 노골적으로 보도하기도, 환자들의 얘기를 전하기도 하지만, 철저하게 이번 정책을 둘러싼 권력을 가진 집단 간의 손익만을 보여주고 있고, 그 이면에서 나타나는 움직임들은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현재도 복귀한 전공의들이 있고,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수련병원들이 있으나 보도되는 것은 그저 일부 대형병원 교수들의 발언 뿐이다. 언론은 의료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거 같기는 하다. 어쨌거나 이런 방식으로 의료 문제가 정치적으로 쓰이게 되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막아 사회에 막대한 피해만 남기게 된다.
나의 관점에서는 2000명을 주장했던 정부나, 이를 반대하면서도 직접적인 대안을 얘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문제를 피해가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학생 정원은 확정되었고 정부도, 서울 대형병원 교수집단들도 병상 제한 등의 제도 변화는 얘기할 생각이 없다. 나에게는 이런 걸 의료개혁이라고 얘기하는 정부나, 저기에 반대한다고 서울 대형병원들이 파업, 사직 운운하는 것이 그저 자신들이 주도권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병상 제한 등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힘들 것으로 보이는데, 저 대단한 사람들을 어찌 봐야할지 모르겠다.
전공의나 학생들이나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세상 일이 그리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면서도 의견을 얘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