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다시 서울에서>를 보고

출입국 외국인 변호사의 소고

by 백수웅변호사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사무실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는 걸 한참 바라보다가, 아무 이유 없이 영상을 틀었다. 다시 서울에서. 요즘 전세계적으로 회자된다는 인도 영화였다.


처음 장면에서부터 공기가 다르다. 낯선 언어, 어딘가 불안정한 표정, 그리고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센바는 그렇게 한국에 도착한다. 가장 믿었던 남자친구의 소개, 호텔에서 일할 수 있다는 약속. 그 모든 것이 지나치게 쉽게 이어진다.


하지만 사건을 다루는 사람의 눈에는, 그 ‘쉬움’이 가장 먼저 걸린다.


정상적인 취업 비자 절차라면 그렇게 단순하게 진행될 수 없다. 초청 과정, 근로 조건, 체류 자격. 하나라도 어긋나면 입국 자체가 어려워진다. 센바의 입국은 이미 그 지점에서 설명되지 않는 공백을 안고 있었다. 허위 초청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럼에도 영화 속 센바는 그 사실을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외면한 채 서울의 거리를 걷는다. 낯선 도시의 불빛은 유난히 밝고, 사람들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 속에서 그녀는 점점 더 작아진다.


약속했던 호텔 일자리는 흐지부지 사라지고, 대신 전혀 다른 형태의 노동이 이어진다. 소개받은 일, 단기 아르바이트, 그리고 결국 요양이 필요한 노인을 돌보는 일까지. 그 흐름은 자연스럽지만, 현실의 법 체계 위에서는 하나하나가 위반으로 쌓인다.


외국인이 요양보호 업무를 수행하려면 일정한 자격과 교육이 필요하고, 체류 자격 역시 해당 직종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센바에게는 그 어떤 준비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일이 필요하다’는 이유 하나로 선택된 자리였다.


나는 그 장면에서 실제 기록 속 한 문장을 떠올렸다.
‘생계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

그 문장은 늘 변명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센바는 무너지는 대신, 묘하게 버텨낸다. 현실과는 다르게, 그녀는 계속해서 작은 희망을 만들어간다. 그려지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코리안 드림’이 가능한 장소다.


물론 현실에서 그녀가 마주할 풍경은 사뭇 다르다. 불법 취업, 자격 외 활동, 허위 초청 의심. 사건이 실제였다면 수사와 별개로 출입국 당국의 조치가 뒤따랐을 것이다. 보호소 수용, 그리고 강제퇴거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지나치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어쩌면 다소 무책임한 서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 영화는 현실을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품고 온 희망을 보여주려는 이야기였다.

우리에게는 타인이 바라보는 ‘한국’이라는 시선을 비춘다.

센바가 바라보는 한국.

그녀에게 이곳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장소다.

속고, 상처받고, 무너질 듯 흔들리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아마 처음 이곳에 올 때 품었던 기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지점에서 오래 멈춰 서게 된다.


우리가 다루는 사건 속 외국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돌아갈 수 없는 사정,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끝내 남겨둔 희망.

그 모든 것이 뒤엉켜 결국 ‘위반’이라는 결과로 드러난다.

영화 속 센바는 법적으로 여러 번 경계를 넘는다.

하지만 그 경계는 처음부터 또렷했던 것이 아니라,
서서히,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흐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 사실이 오래 남는다.

서울은 누군가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의 도시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걸고 도착한 희망의 장소다.

영화를 끄고 나서도 한동안 장면들이 떠올랐다.
어딘가 어설프고, 때로는 비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


법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나는 여전히 정확함을 우선에 둔다.
그러나 가끔은 그 정확함 바깥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곳에 우리가 놓치고 있던 시작이 있고,

그 시작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더 나은 결과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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