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나오
항암이라는 거친 강을 건너면서 글을 붙잡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록을 남기기 위한 수단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도 아니었고, 문장이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써 내려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글 속에는 내가 숨겨 온 감정들이 숨어 있었다. 억지로 담담한 척했던 날의 분노가 문장 끝에서 튀어나왔고, 가족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한 애정이 단어 사이에 젖어 있었다. 세상 앞에서 강한 척했던 나의 연약함, 그러나 그 연약함을 안고도 버티는 용기가 글을 통해 또렷이 드러났다.
알게 된 건, 내가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아플수록 더 솔직해지고, 울면서도 끝까지 쓰는 힘이 나에게 있었다. 글은 나를 무너뜨리는 대신, 가장 약한 부분을 꺼내어 단단하게 다지는 도구가 되고 있었다.
또 하나의 발견은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아픔을 견디는 내 이야기인데, 이상하게도 글을 쓰고 나면 누군가에게 잘 버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따라왔다. 나와 비슷하게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 아직 시작도 못한 사람들,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손을 건네고 싶었다.
글은 나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조금 더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일이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아프고, 두렵고, 때때로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기록하고 표현하며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자 하는 사람.
글을 쓰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