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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치료를 시작한 뒤 처음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내 안에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금방이라도 책 한 권이 완성될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단어 하나가 나오지 않았다. 통증이 심한 날은 눈을 감고 있는 시간조차 버거웠고, 구토로 밤을 지새운 다음 날에는 글을 쓸 힘이 없었다. 그저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소진되었다.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쓴 글을 다시 읽었을 때였다. 솔직함을 담으려 쓴 문장이 오히려 지나치게 감정적인 울음처럼 느껴졌고, 이 글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흔들리는 글을 누가 읽고 싶어 할까?”라는 회의가 밀려왔다. 그 순간, 글쓰기는 나를 지탱하는 도구가 아니라 다시 넘어뜨리는 무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며칠 뒤, 병원 대기실에서 한 환우가 남긴 말을 읽게 되었다. “누구의 글이든 지금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된다.” 그 문장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완벽한 문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장이 필요한 거라고. 삶을 버티며 적어내는 글이라면, 다듬어지지 않아도 의미가 된다.
그래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여전히 문장이 흔들리고 감정은 제멋대로 튀어나오지만, 그것 역시 내가 지나고 있는 삶의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덕분에, 나는 왜 글을 쓰는지 다시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살아가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