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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암댁 Mar 12. 2023

부암댁의 생각_34. 씨앗


어제 방치되어있는 밭에 다녀왔다. 땅욕심을 냈지만, 경험도 없는 내게 먼 곳의 밭은…그저 옆 밭에 피해를 주지 않게 한다는 목표와 생산의 재미보다 흙을 만지며 깨닫는 것에 대해 의의를 두기로


밭을 놀리느니 아무 씨앗이든 아무 모종이든 갖다 심으면 될것 같지만, 자주 가지 못하는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작물을 심는 것도 아닌것 같고, 아는 것이 병이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심는 것도 아닌것 같아 그리 되었다. 연초에 이런 기준으로 무엇을 심을까 씨앗은 어디서 구하나 하다가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3년전 집 옥상에서 화분에다 심어보고 싶던 몇가지를 심었다. 10종 잎채소, 래디쉬, 고수, 루꼴라, 바질 뭐 그런것들. 그때 처음 본 펠렛팅된 루꼴라 씨앗. 씨앗에 뭐 이런걸 해놨지? 싶어서 물에 불려 벗겨야하나? 이거 심어도 되는건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새나 벌레가 먹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살균처리도 되어있고.. 때론 발아에 도움되게 영양제를 섞기도 하고 그런것 같았다. 그리고 뭣보다 어린잎일땐 먹지 말라고… 흠흠


매일 아침 물을 들고 올라가 물을 줬다. 땅위로 반쯤 빠알간 색이 보이는 래디쉬는 키우는 보람이 있었고, 잎채소들도 지들끼리 복닥복닥 화분를 채웠다. 모종으로 심은 바질은 타들어가서 결국 따먹기보단 꽃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했고, 문제의 루꼴라는 잎을 몇개 따먹지 못하고 꽃이 올라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심어놓고 죽어라 안나오던 고수와 오크라는 실패한줄 알았는데 다 때가 되니 싹이 나고 꽃이 폈다. 먹는 것들의 꽃이 이렇게 예쁘다는 것을 알았던 한해였다.


그렇게 소소한 재미가 있던 옥상텃밭였는데, 새로이사오신분이 화분옆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했다며 온 흙에 바퀴벌레 약을 3통을 뿌려 버렸다고 하신 그 이후로 여러 곤란한 일들이 많아 더 할 수가 없어졌다. 그러나 그 덕분에(?) 다른 곳의 다른 작물들을 보러다녀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그렇게 여기저기 심고 키우는 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씨앗을 조금씩 알아갔다. 루꼴라 씨앗처럼 코팅된 씨앗이 정말 많다는 것도, 많은 농가들이 씨앗을 싹 틔우는 것이 아니라 모종을 사서 심는다는 것도, 그 씨앗과 모종이 많은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걸 또 유지하기 위해 F1종자(우수한 형질이 유전되지 않는) 보급한다는 사실도, 종자를 개량하는데 별 희안한 방법을 동원한다는 사실도, 그 종자를 키우는데도 또 별별 것을 뿌린다는 사실도….그밖에도 등등..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먹는 것에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적자면 정말 deep 빡치는 일들이 많지만 여기까지…


‘먹는거 가지고 장난치지 말자….’.


내 발길은 저절로 그렇게 희안한 방법들 사이로 뚝심있게 씨앗을 받아 땅에 심고, 땅의 힘으로 살 수 있게 작물을 키워 자연스러운 모양과 맛과 향의 작물을 수확하여 또 다음을 위해 갈무리를 하고 씨앗을 받는 분들을 따라갔다. 인간의 개입이 덜된 자연의 적응을 통해 이어지는 토종씨앗을 지키는 분들, 땅의 힘으로 작물을 키워내기 위해 자연재배 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의 이야기에는 자연의 신비로움, 자연의 강인함을 느꼈던 이야기가 가득했다. 위로는 토마토가 나고 아래로는 감자가 달리는 그런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논리적이고 상식적인데 경이로운 이야기들 말이다.


옹골찬 맛, 땅의 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향, 고군분투한 자연의 적응을 색과 모양으로 또 다양한 맛과 향으로 알려주는 토종씨앗과 자연스러운 재배에 대해서 알았는데, 내 우찌 ‘아무거나’ 할 수 있겠노…


씨앗을 구하는 것, 그 씨앗을 키우기 위해 자연을 이해해야하는 것, 내 상황에 맞는 작부 계획..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음에 대해 생각하다 올해는 많은 것을 놓치고 말았지만, 조금 더 이해가 깊어지면 행동에 자신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언젠가는 씨앗부터 식탁까지 자연스러움으로 가득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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