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ost
피아노를 샀다.
누구 하나, 악기 하나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집 안에 피아노가 놓여 있으면
언젠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우리 집 피아노는
그저 ‘무늬만 피아노’로 자리만 지켰다.
아무도 건반 앞에 앉지 않았고,
나는 그걸 볼 때마다 괜히 마음만 급했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학원을 다녀와 피아노 의자에 앉는 모습을 보면
그리 기특했다.
건반을 누르는 조그만 손가락이 어쩜 그리 야무지게 움직이는지.
우리 가족 중에서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나오다니!
나의 꿈을 아이가 대신해주는 것 같아 기쁘고 대견했다.
대리만족이라는 말이 이렇게 와닿을 줄이야.
학원에서 연주곡을 나간단다.
고맙게도 막내는 나의 신청곡 '캐논변주곡'을 처음으로 쳤다.
좋아하던 곡이라 그런지
아이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캐논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다음 곡은 신랑의 신청곡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인생의 회전목마'였다.
너무 느리고 분위기가 가라앉는 음악이라 난 별로라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하나의 연주곡을 완벽하게 배우기까지 약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는 잘 안된다고, 어렵다고 오리 입이 된다.
그런데 연주곡이 끝나면 세상 그렇게 밝은 표정이 된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영상을 가족과 함께 보며 박수를 받는다.
작은언니가 신청한 곡은 'Summer'였다.
여느 때처럼 연습을 하던 막내가 말했다.
막내: 피아노 배운 곡은 쉬워.
나: 그럼 안 배운 곡은?
막내: 안 배웠을 때는 어려워.
나: 그럼 셋별아 지금 배우는 summer는 어떨까?
막내: 어려워.
나: 지금은 어렵지?
처음이고 배우는 중이니까
근데 곧 저 곡도 어떻게 된다?
막내: 잘 하
아니 못하게 돼.
아이와 대화는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셋별아 엄마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 배우는 summer도
곧 쉬운 곡이 될 거야.
캐논도, 하울도 처음엔 어려웠지만
지금은 악보 없이도 치잖아.
처음 배우는 건 다 어렵지만
끝까지 어려운 건 없어.
그러니 힘들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이 곡도 차근차근해보자.
나는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없다고,
하고 싶으면 내가 하지 아이들에게는 안 시킬 거라고 했다.
피아노는 내 욕심이었다.
아이들 누구 하나 피아노 얘기는 하지도 않았다.
나는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 중 누군가는…
나는 막내가 피아노로 큰 무언가를 이루길 바라는 게 아니다.
다만, 연주곡 하나를 끝까지 연습해 자기 손으로 완성해 냈다는 그 감각,
‘아, 내가 해냈구나’ 하고 스스로 느끼는 그 순간을 아이 마음속에 하나씩 쌓아가면 좋겠다.
처음엔 악보를 보며 당황하고,
손가락이 잘 따라가지 않아 답답해하고,
때로는 울컥해서 피아노 뚜껑을 덮고 싶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 지나 다시 건반 앞에 앉아
조금씩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
처음엔 절대 못 칠 줄 알았던 부분을
자기 손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경험.
그 작은 ‘되네?’의 순간.
그걸 아이가 삶에서 계속 경험했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이 와도 처음엔 당연히 어렵다는 걸 알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무심코 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
피아노에서 배운 그 감각이
아이의 일상과 공부와 관계에도
작은 용기처럼 스며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피아노로 얻는 성취가
음악적 재능보다도,
아이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은 어려운 ‘Summer’가
막내의 손끝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나는 조용히,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