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렇게 엄마가 된다.

세 살 엄마 회고

by 불가사리

한국에서 출산 후 4개월 접종을 마친 아이를 품에 안고 러시아로 돌아왔다. 2023년 1월, 한 겨울의 모스크바는 햇살이 비치지 않는 잿빛의 하늘이었다. 하얀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면 나은데, 아침이 되어도 밤처럼 어두컴컴한 날씨다. 남편은 출근하고 종일 나 홀로 아이를 돌보는 날이 이어지니 마음에 우울감이 드리운다. 품에서 잠이 든 아이를 안고 창 밖을 본다. 14층에서 내려다보는 바닥이 아찔하다. ‘그냥 이대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럼 좀 편해질까. 모든 게 끝이 날까?’ 모기장도, 안전을 위한 장치도 하나 없는 창문을 열었다가 불어오는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이는 평화롭게 눈을 감고 있다. 아이를 안고 투신했다는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묵직한 돌멩이 같은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서 더 짙어지고 무거워지면 그렇게 되는 걸까.

밤늦게 퇴근한 남편을 붙들고 말했다. “여보, 나 아무래도 우울증 같아. 창 밖으로 떨어지면 편안해질까. 아무래도 난 육아가 적성이 아닌가 봐.” 이렇게 어두운 사람은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며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남편은 밤 수유는 본인이 맡을 테니 당분간 내게 거실에서 자라고 했다. 아이를 위해 가져온 놀이 매트 위에 토퍼를 깔고, 그날 밤 처음으로 아이와 떨어져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예전에는 머리만 대면 쉽게 잠이 들고, 한번 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자던 나였는데 수시로 깼다. 단유를 하고 이제 분유를 먹는 아이는 밤에도 제법 길게 자기 시작했는데, 나는 두 시간 간격으로 눈을 떴다. 유령처럼 안 방으로 들어가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코에 손을 대어 숨을 쉬는 걸 확인했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 작은 심장이 콩콩 뛰는 것이 느껴졌다. 콩콩 거리는 작은 가슴에 맞대어 나의 가슴을 대어 본다. 그리고 한 번 숨을 참았다가 후- 내뱉는다. 아이는 살아있고 나는 살아내야만 했다. 눈앞에서 돌봄을 기다리는 작은 사람 앞에서 정리되지 못한 나의 마음과 감정이 부수적으로 느껴졌다. 정돈되지 않은 상태, 아이와 함께 널 부러진 집안 곳곳이 지금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갑갑했다. 무엇이든 버리는 것이 청소의 첫 번째 단계라면, 나의 인생에서 아이는 놓아 버릴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존재. 나는 이렇게 영원히 정리되지 않는 삶이 지속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이가 잠들어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밤에는 이유식을 만들고 끝없이 불안한 마음을 일기장에 쏟아냈다.

어느 주말, 침대에서 잠이 든 아이와 함께 그 옆의 침대에서 나 또한 깜박 잠이 들었다. 아이가 ‘애앵’ 하는 잠꼬대를 듣고 거실에 있던 남편이 방으로 달려와보니, 내가 내 배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단다. 무의식의 세계에서도 나의 귀는 아이의 소리를 듣고, 자동 반사적으로 아이가 곁에 없어도 손을 토닥거린다. 남편은 “자기, 이제 엄마가 다 되었나 봐. 왠지 짠하더라.”라고 했다. 나의 몸은 이미 엄마가 되었는데, 머리와 가슴은 여전히 엄마도, 이전의 나도 아닌 상태로 삐걱거리고 있었다.

아이가 8개월이 되었을 때, 러시아의 긴 연휴가 찾아왔다. 좀처럼 휴가나 반차를 낼 수 없는 남편은 연휴 기간에 본인이 아이를 돌볼 테니, 어디든 홀로 다녀오라고 했다. 떠나기 전 날까지 망설이다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으로 가면서도,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도 홈캠을 열어 아이를 살폈다. 혹시나 만약에 아이가 잘못된다면 나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상했다. 아이를 돌보면서는 아이가 없던 지난날,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던 자유로운 영혼인 내가 그리웠다. 그러나 아이와 점점 멀어지는 지금은 아이가 그립다. 걱정인가. 아이가 아닌 내게 분리불안이 찾아왔다.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이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로 여행지를 정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해서야 이 도시가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촬영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였는데 왜 그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까.

비포선라이즈의 도시, 비엔나


호텔 방에 누웠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낯설다. 샤워를 하다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샤워기 물을 잠시 껐다. 쫓기지 않고 음식을 꼭꼭 제대로 씹어본 것도 오랜만이다. 누가 깨우지 않은 아침의 늦잠도, 샤워 후 젖은 머리를 바짝 말려본 것도, 한쪽이 아닌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걷는 것도, 식지 않은 따뜻한 커피의 향을 맡고 마셔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40년의 자유가 없어진 건 고작 8개월에 불과한데, 아이의 삶과 연결되어 있던 8개월이 80년의 시간처럼 더 깊고 진하게 느껴진다. 참 이상하다.

2박 3일 내내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거리를 걷던 중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이 음악을 듣던 음반가게를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다. 꿈만 같았다. “한국인이지?” 하고 묻던 주인 할머니가 캐스 블룸의 음반을 꺼내 LP플레이어에 올렸다. 헤드셋 너머로 'Come here'가 흘러나온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상하게 눈물이 쏟아졌다. 할머니가 티슈를 건네며 말했다. “다시 꼭 또 와요. 다음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머니 눈에는 내가 헤어진 사람처럼 보였을까. 음악을 들으며 나는 이전의 나를 떠나보냈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그냥 지나갔다. 그리고 나무의 나이테처럼 내 안에 남아있다. 지난 모든 시절도 감정도 내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음반 가게에서 나와 옷가게에서 아이의 가디건을 샀다. ‘2y’ 두 살에게 꼭 맞는 사이즈라는 태그, 하트 모양의 자개단추가 달린 옷은 8개월인 아이가 입기에는 아직 컸다. 첫 해에는 팔을 세번 접어 입던 옷이 이듬해에는 두 번, 지금은 아이에게 꼭 맞는 옷이 되었다. "엄마, 나는 이 하트 단추가 좋아." 또랑거리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날의 눈물을 떠올린다. 2025년 9월, 아이는 세 살이 되었다. 나도 무사히 3년을 살아냈다. 여전히 집안도, 내 삶도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가득이다. 살짝 흐린 눈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엄마가 된다.


앞으로도 같이 잘 살아보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의 새해는 이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