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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Aug 07. 2017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뉴스룸>의 경제 정책 토론을 보고

시장이냐 정부냐의 논쟁

몇 달 전 한참 대선이 한창일 때였다. 뉴스를 보는데 문재인 캠프와 안철수 캠프의 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교수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안철수 캠프의 정책 기조는 ‘민간에 맡기고 규제를 풀어주자’이고 문재인 캠프의 정책 기조는 ‘정부의 개입으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야 한다’였다. 두 교수의 논쟁은 경제학자들의 해묵은 논쟁을 떠올리게 했다. 다큐멘터리 <커맨딩 하이츠>의 주제가 될 정도로 경제학사에서 중요한, 100년을 넘게 지속되어온 논쟁이다.


논쟁의 주제 자체는 경제학도로써 새로울 게 없었다. 다만 이 논쟁을 보면서 새로웠던 점은 나의 생각이었다. 

원래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진보’적인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항상 시장 경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시장에 맡겨야 해결된다’는 주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두 교수가 열심히 토론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이전까지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정말 그렇게 단순한 걸까? 일자리 문제를 꼭 정부 주도로 창출해야 하는 걸까? 경제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을 활성화시키는 길은 아닐까? 정부가 커졌을 때의 비효율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통제되고 일관된 사회일수록 창의성이 죽는다는 건 사실이다. 창의적은 결과물은 계획되지 않은 여유나 일에서 거리를 둘 때 나온다. 프로젝트를 할 때도 잠시 쉬면서 담배 한대를 핀다거나 아니면 샤워를 하면서 새로운 방법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즉흥적인 시도나 실수들이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치 재즈 음악처럼 말이다. 


그래서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는 스스로 혁신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기업가정신,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의지나 동기 부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 주도 하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따라갈 수 없느냐? 


잘 모르겠다. 혁신적인 변화(예를 들면 아이폰의 등장)는 불확실성이 크고 아무도 혁신의 방향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빠른 방향 전환, 창의성, 고객 중심, Lean한 기업들이 성공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통제된 계획, 정부 주도 투자 등이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비록 그 혁신의 최초는 아니었지만 대신 갤럭시를 만들어냈다. 갤럭시가 카피캣이라고 비웃는 사람이 많지만 여전히 갤럭시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다. 미국 외에 어떤 다른 나라도 삼성전자 수준의 기업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단순히 이룬 성과만 놓고 봤을 때는 굉장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우리의 전략이 우리가 수십 년간 해왔던 것처럼 미국이나 유럽이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길을 빠르게 따라잡는 것이라면 승산이 있을지 모른다. 따라잡기는 방향 설정보다는 속도와 실행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연 따라잡기 전략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통할 수 있을까?



단순화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복잡성

이 글에서 시장과 정부 중에 어떤 방식이 맞느냐 하는 걸 논의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주제를 고민하면서,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복잡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조금만 깊게 생각해봐도 경제 성장이 단순히 시장이냐 정부냐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해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복잡하고 다면적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경제학이 설명하려고 하는 ‘인간 사회’는 더욱 그렇다.


세상은 흑백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느 쪽이 완전히 옳고 다른 쪽이 완전히 그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가지고 있는 입장과 반대된다고 해서 그걸 한 카테고리로 묶어서 편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인간은 머릿속에서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사실과 개념의 일부분을 뽑아서 범주화하고, 키워드를 만들고, 프레임을 씌운다. 그 프레임은 강력한 평가의 기준이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 뇌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고 세상에 정보는 너무나 많으니까.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최대한 단순화시킨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이 풀리지 않고 남아있는 이유는, 각각의 상황과 각각의 관점에서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한 관점과 딱 떨어지는 답으로 풀어내려고 하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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