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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May 12. 2020

왜 남들의 인정을 그렇게 받고 싶은 걸까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부터 한국형 방역모델까지.. 외신 반응 따는 한국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언론사의 국제부 기자들이 꼭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외신 동향 점검이다. 업계 용어로는 외신 반응 따기라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이 4강 진출을 하고 전국민이 거리 응원을 했을 때도, 평창 겨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도, 올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를 잘 했을 때도 그랬다. 기자들은 외국의 주요 언론 기사를 살펴보고 한국을 칭찬하는 내용을 기사화 한다.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봉준호 감독과 손흥민

BTS의 인기,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 메이저리그 류현진 선수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 선수의 선전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의 눈에 그들은 한국의 대표선수다. 우리는 이들의 성공을 우리 일처럼 기뻐하고 이들에 대한 비판을 우리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2020년은 한국인들에겐 엄청난 해다. 2월 한국 영화 ‘기생충’이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고 봉준호 감독은 세계 최고의 영화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그 직후 국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면서 좋은 평판에 금이 가는 듯 했으나 한국은 신속한 대처와 모두의 협력으로 보란 듯이 위기에서 벗어났다.



신천지 교회 예배가 있었던 2월 16일 이후 3월 5일까지 20일이 채 안돼는 시간 동안 한국은 14만5000명을 검사했다. 이는 이 때까지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의 검사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회적 거리를 둬야 한다며 강제로 가게와 음식점들의 문을 닫는 봉쇄령을 내렸지만 한국은 공식적인 봉쇄령도 없이 코로나바이러스의 불길을 잡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던 4월 15일에는 30년 만의 최고 투표율로 국회의원 선거까지 치렀다. 요즘엔 한국 프로야구가 관중 없이 개막해 스포츠에 목말라하고 있는 미국에도 중계가 되면서 화제에 오르고 있다.


이렇게 한국이 요즘 미국과 유럽에선 꿈도 못 꾸는 선거에 스포츠 이벤트까지 성공적으로 이뤄내는 걸 보고 서구에선 부러움은 물론 질투까지 느꼈던 듯 하다. 한국에 대한 칭찬 릴레이 와중에 한국이 개인들의 프라이버시를 희생해 가면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국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말 잘 듣는’ 유교적인 문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미국 시사월간지 '애틀랜틱'의 기사 '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캡처


하지만 미국의 시사월간지 ‘애틀랜틱’의 기사(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에 따르면 이런 반응은 인종차별적일 뿐 아니라 한국의 노력을 단순한 문화적인 배경덕분으로 폄하하는 일이다.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를 잘 할 수 있었던 건 과거의 경험에서 배웠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2002년의 사스, 2009년의 신종플루, 2015년의 메르스를 겪으면서 과거의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4월 초 한국에 관한 스페셜 리포트에서 한국이 강도 높은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면서 ‘Loosening Up’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의역을 하자면 이제 한국이 몸이 풀렸다는 얘기다. 지금까지는 바짝 긴장하고 열심히 살아왔다면 이제는 긴장을 풀고 힘도 빼고 조금 자유스럽게 살 수 있게 됐다는 말일 거다.


지금까지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착실하게 경제를 발전시켜온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이젠 한국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영어 사전에도 나오는 재벌(chaebol) 중심의 강력하지만 조금은 경직된 경제 체제에서 스타트업들이 싹을 틔우는 경제로 바뀌어가고 있다. 


제조업뿐이 모르던 나라가 봉준호 감독과 BTS로 대표되는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실제로 2018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가전제품보다 음악, TV드라마, 영화 등의 문화상품을 더 많이 수출했다.


미국과 영국의 권위 있는 매체들이 이런 심층적인 분석기사까지 싣는 걸 보니 이제는 과거의 한국에 대한 1차원적인 관심이나 칭찬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느낌이다. 한국인으로 기분이 좋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기자 시절 외신 반응 기사를 찾으면서 마음 속으로 물었던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잘 했으면 됐지 왜 남들의 인정을 그렇게 받고 싶은 걸까’라는 의문이다.




물론 인정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에 하나다. 그리고 인정 욕구가 우리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일본의 식민지 시절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으니. 


이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국제 사회에서 항상 ‘나 잘 했어?’라고 묻고 제발 나 좀 봐 달라고 외치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봐달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올랐는데도 여전히 쓸데 없이 남들의 의견을 묻고 다니는 건 아닐까.


이젠 칭찬도 많이 받고 인정도 많이 받았으니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우리의 현재 상황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코로나 때문이건 아니건 가뜩이나 경제 상황과 전망은 아주 좋지 않다. 남들의 관심과 인정을 구하는 대신 조금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 <40세에 은퇴하다> 작가


인터비즈 박소영 김재형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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