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58
공중 목욕탕에 갔다.
남탕에 들어가니 큰 목소리가 들린다.
상반신 가득 용문신을 한 젊은 사내가 관리인에게 고함을 지른다.
아마도 때를 밀려고 했던 젊은 사내가 서로 말이 어긋나 조금 기다렸던 모양이다.
가만히 말을 들어보니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았을 뿐 딱히 관리인의 잘못도 아닌 듯 한데, 그 문신 사내는 긴 시간 화를 내고 있었다.
결국 젊은 사내는 먼저 욕실에 들어와 때미는 곳에 누웠고 관리인은 팬티만 입은 채 나중에 들어왔다.
벗은 몸을 보니 제법 나이도 들어보인다.
욕실에 들어온 관리인(때밀이)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청추운을 돌려다아오~~~'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 때밀이가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온다.
사실 그 순간 노래를 부를 타임은 아니었다.
젊은 사내, 아마도 건달이나 깡패로 보이는 녀석에게 머퉁이를 먹고 보니 마음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이럴 때 입이나 코로 흥얼거리는 트로트는 꽤나 괜찮은 위로가 되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목욕탕에서 때밀이, 이른바 세신사들은 주로 트로트를 많이 흥얼거렸던 것 같다.
때밀이라는 직업이 갖는 사회적 평가가 못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돈들지 않고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 어떤 즉흥적인 위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럴 때 그 늘어지는 가락이며 회한을 담은 노랫말은 사람의 내면을 달래는 기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발라드나 댄스를 흥얼거리는 것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트로트가 삶의 허무나 패배를 담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사람은 때로 허무나 패배의식 같은 걸로 허무나 패배를 견뎌내기도 하는 것이다.
젊은 한 때, 포크송이나 팝송을 들으며 트로트 같은 노래를 다소 우습게 보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주 오래 전의 트로트를 듣다 보면 그 가사나 창법이 당시의 삶 혹은 보편적인 삶의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아주 잘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속된 말로 뜨기 위해 너무 조잡한 가사나 음률로 스스로를 무너뜨리지만 않는다면, 트로트는 아주 좋은 노래 장르일 수도 있겠다.
#트로트#세신사#때밀이#인생#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