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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업번역가 Sep 12. 2023

쿠킹 클래스에서 깨달음을 얻다

떠나는 직장인 | 치앙마이 여행기

언제나 관심은 있었지만 기회가 없었던 쿠킹 클래스. 집을 떠나 혼자 살 때도 주변인 중 요리가 취미인 친구가 있다거나, 집주인이 셰프라던가 해서 늘 먹을 복만큼은 넘치는 나였다. 그만큼 내가 직접 무언가를 요리해 본 일은 손에 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킹 클래스처럼 준비가 다 되어 있는 곳이라면 나도 멋진 요리야 뚝딱 만들 수 있을 거란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고, 언제나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과연 나는 멋진 태국 요리를 완성했을까?

치앙마이에는 여러 쿠킹 클래스가 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에서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된다. 유명한 곳으로 마마노이 쿠킹 클래스, 그랜마즈 쿠킹 클래스가 있는데 이런 곳들은 대부분 넓은 부지에서 소팀을 나눠 진행되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쿠킹 클래스를 찾는 여행자도 걱정 없이 방문할 수 있다. 나는 일주일 전, 한국에서 치앙마이로 출발하기 전에 그랜마즈 쿠킹 클래스를 예약했다. 오전반/오후반/종일반이 있는데 관광객들이 단연 많이 하는 건 시장 투어가 포함된 오전반이다.


익숙한 게 좋은 거라고, 해외여행에서 투어&액티비티를 찾을 땐 늘 마이리얼트립을 찾게 된다. 이전 싱가포르 여행에서도 빠르게 예약 확정이 되어 잘 썼던 터라 이번에도 이곳에서 그랜마즈 쿠킹 클래스를 예약했다. - 가장 저렴하기도 했다! 환율에 따라 가격 변동이 좀 있기는 한데, 내가 구입할 당시는 38,000원 정도였다. - 시장 구경에다가 음료수 제공, 요리 세 가지를 만들고 추가 요리까지 하나 더 주는데 이 정도라면 너무 괜찮은 가격이어서 치앙마이에 대한 사랑이 또 한 번 샘솟았다. 저렴하게 해보고 싶었던 걸 할 수 있는 곳이라니,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담. 치앙마이는 천국이 맞다.

아침, 바우처에 픽업 시간이 8시 30분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올드타운에 숙박한 나는 딱 8시 30분에 맞추어 기사님이 호텔 앞으로 데리러 와주셨다. 호텔이 골목에서 좀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차를 세우고 손수 호텔까지 걸어와서 날 맞아주셔서 거기서부터 살짝 감동. 그리고 기사님은 과묵했다. 이후로 한 마디도 안 해봄. 


몇 군데 호텔을 돌아 사람을 채우고 시장에 내리자 오늘 수업을 해 줄 선생님이 나와서 식재료를 하나하나 구경시켜 주었다. 엄청 시끄러운 중국인 무리가 같은 차에 타서 살짝 걱정했는데 그랜마즈 쿠킹 클래스는 과연 그 규모 값을 하는지 중국어 수업이 따로 있어서 그들과 엮일 일은 없었다. 식재료 설명 타임이 끝나면 시장을 둘러보며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식재료를 샀고, 이외에도 과일이나 코코넛 주스를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요리를 해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식재료까지 사서 갈 각오는 서지 않았던 나는 그냥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고양이 발견함. 귀여움. 치앙마이에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의 일상에 쏙 들어와 있는 고양이들이 많다. 이들을 치우려고 하지 않는 치앙마이 사람들의 모습에서 부처의 가르침이 느껴진다.

클래스에 도착한 후에도 그날 사용할 식재료들 탐험이 이어진다. 영어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못 알아 들어울 정도로 전문적이거나 어려운 단어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이 질색팔색 하는 '고수'는 아예 '고수'라고 설명해 주시기도 해서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레몬그라스부터 버터플라이피까지 다양한 식재료를 보여주지만 계속 풀만 보다 보니 감흥이 살짝 떨어질 때 즈음 닭장이 나타난다. 막 낳은 달걀의 따끈함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곳 닭장에는 전부 암탉밖에 없어서 유정란은 아니라고. 그래서 그랜마즈 쿠킹 클래스 체험을 할 땐 비건식으로도 선택이 가능하다.


그랜마즈 쿠킹 클래스가 너무 기업형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만큼 부지가 어마어마하게 넓어서 나랑 같이 수업을 듣는 6~8명 정도의 인원을 제외하면 사실 다른 사람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수업을 듣는 공간도 서로 널찍하게 떨어져 있고, 밥을 먹는 공간도 다 달라서 정말 딱 소수 인원이 즐겁게 요리를 만들고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은 덥지도 않은지 저 넓은 곳을 마구 뛰어다니더라.

식재료 탐험까지 끝나면 잠시 쉬다가 드디어 각자의 스테이션에 서서 요리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한다. 앞치마도 있고 멋진 칼도 있고 뭔가 두근거리기 시작했는데 저 절구가 내게 육체적 고통을 통한 수행의 깨달음을 줄지는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오전반에서 만드는 요리는 총 세 가지. 수프, 커리, 팟타이. 그리고 요리를 만드는 동안 마실 차를 고를 수 있다. 차 한 잔과 물은 무료고 맥주 등을 먹게 된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내가 고른 건 Hot&Soour soup 똠얌꿍과, 치앙마이의 음식이라는 Kao Soi 카오 소이, 그리고 태국에서 빠질 수 없는 새우 팟타이였다. 제가 팟타이를 만든다고요?

요리는 우선 모여서 선생님의 시범을 본 후, 제자리로 돌아가 조리를 시작하면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에 만든 건 카오 소이에 들어갈 커리 페이스트인데, 이건 재료를 다 하나하나 자른 후 절구에 넣어서 빻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나의 '어쩌면 쿠킹 클래스 정도라면 나도 요리 잘할지도 몰라'라는 자신감이 꺾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아, 나는 다 준비해 준 요리도 못하는구나'라는 가르침이 얼얼한 근육통과 함께 찾아온다. 칼질도 어렵고, 절구로 빻는 것도 힘겨웠다. 다른 사람들은 슥슥 잘라 열심히 빻는데 나는 자르는 것도, 빻는 것도 모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제일 힘든 걸 먼저 하는 모양인지, 커리 페이스트를 만든 후 본격적으로 똠얌꿍 만들기를 시작했다. 사실 별 건 없고 슥슥 잘라 냄비에 넣은 후 선생님이 부어주는 대로 물 넣고 양념 넣고 끓이는 건데 뭐가 이렇게 힘든지. 오전이었지만 30도가 넘는 치앙마이의 날씨에 혼자서 칼질도 못하고 있으니 땀이 뻘뻘 났다. 시범을 보인 선생님이 스테이션으로 돌아가서 해보라 했는데 호텔로 돌아가도 되겠냐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더듬더듬 남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똠얌이 내 앞에 있었다. 먹는 것도 낯선 음식이었던 것이, 내 손에서 - 선생님의 도움이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 탄생한 것이다. 평생 상상도 못 했던 태국 요리가 나의 일상에 갑자기 안착한 순간이었다. 신기하게도 재미있었다. 나의 식재료들은 제대로 잘리지도 않았고 나는 똠얌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만든 똠얌은 너무나도 맛있었다. 아, 그래서 요리를 '하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이 있다고 하는가 보다.

선생님은 나 같은 학생은 익숙한 모양인지, 마지막에 카오 소이를 만들다 레몬 그라스를 똑 끊어버린 날 위해 자신이 만든 카오 소이를 가져다줬다. 잘 만든 요리 사진을 원한다면 이걸 남겨도 된다며. 선생님이 만든 카오 소이가 훌륭하다고 해서 내가 만든 것처럼 올리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반대로 모처럼 참여했는데 잘 만든 요리 사진 하나는 남기고 싶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느껴져서 감사했다. 그랜마즈 쿠킹 클래스는 이런 부분이 즐거웠다. 내가 너무 못해도 그대로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요리는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비록 우당탕탕이긴 했지만 내 옆의 7살 스페인 여자아이가 나만큼 우당탕탕이라서 수준이 잘 맞아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며 만들다 보니 금세 헤어질 시간이 찾아왔다. 내가 젓가락으로 먹으니 자기도 젓가락으로 먹겠다고 해서 '무이 비엔' 한 마디 해 주니까 너무 좋아함. 귀여웠음. 혼자 한 달 살기를 하러 왔다는 한국인 친구도 만났다. 어떤 결심으로 오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이렇게 치앙마이를 즐기는 그 모습 역시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다들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달랐지만 직접 만든 요리는 그게 어떤 모양이든 일단 앞에 두면 서로를 향해 미소 짓게 하는 힘을 가졌더라. 요리에는 '나누는 즐거움' 역시 있으니까, 그렇고 말고.


수업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오면 1시~2시 정도 된다. 기절함. 싸 온 망고 밥과 카오 소이는 그날 저녁밥으로도 잘 먹었다. 나는 태국 요리를 멋지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쿠킹 클래스의 도움이라면 맛있게 만들 수는 있는 모양이다. 꽤 식은 후에 먹었는데도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내가 공들여 만든 요리다 보니 아무리 낯설어도 어떻게든 시도해 보게 된다. 쿠킹 클래스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망고 밥을 먹지 않았을 테지. 홀로 치앙마이에 와서 혼자 낯선 경험을 하는 그 순간들이 언젠가 힘들 때 나를 지탱하는 추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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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가 넓어 다른 반과 겹치지 않고 소수끼리 수업이 가능하다.

음식을 싸주는 것부터 픽업-드롭까지 그간의 노하우로 능숙하게 대응해 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요리가 크게 어렵지 않고 아이들이 놀 거리가 있어 아이와 함께 참여하기에도 괜찮다.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라면 참관인으로 해서 부모와 함께 요리하도록 하자)

넓은 농장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곳곳에 사진 찍을만한 포인트도 많고 편히 쉴 만한 장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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