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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업번역가 Sep 09. 2020

회사가 다시 나를 부를 때

직장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쓸 때, 난 스타트업의 마케터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작았고 마케터는 나 혼자였기에 기획, 전략, 광고, 대고객 메시지 발송도 혼자 했다. 직원마다 생각하는 브랜딩 방향도 달랐고 소통을 위한 정해진 브랜드 메시지도 없었다. 톤 앤 매너는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 맨땅에 헤딩하듯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울분에 차 스타트업 절대 가지 마라!라는 글을 쓰는 대신 부업으로 먹고사는 이야기를 쓴 이유는, 그때의 시간이 힘들지만 즐거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칼퇴를 하기도 했고.


생소한 영역을 맡을 땐 겁이 나기도 했지만, 배우면 될 일이었다. 혼자서는 만져보지 못할 데이터를 가지고 다음 전략을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얼마 안 되는 광고비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으려고 머리를 굴리면서 새로운 공부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할까? 를 매일 고민하면서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 뜨였다.


이 회사와의 만남은 어느 날의 카톡으로 시작됐다. 영화 업계의 단기 계약을 정규직 계약으로 바꿀지 고민하던 때, 첫 회사의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며 회사가 분리됐고,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 처음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의 내 소감은 : 솔직히 기가 막혔다.




나를 가졌을 때, 태몽 속에서 엄마는 일을 했다. 남들처럼 창문을 열었더니 거대한 용이나 독수리가 품 안에 와 안겼다든가, 언덕을 올랐더니 큼지막한 복숭아가 열린 나무가 있었다든가 하는 꿈이 아니었다. 엄마는 묵묵히 일했다. 늘 이 태몽이 대기만성하게 될 태몽이려니 했다. 일을 하면 보상을 받으니까, 그렇게 일하는 꿈이라면 분명 시간이 걸려도 무언가를 이루고 평탄하게 살 팔자려니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냥 일복 터진 꿈이었나 보다. 이 험난한 세상에 일복이라도 쥐고 나온 것이 어딘가 싶다만, 한꺼번에 세 개의 선택지가 발아래 펼쳐지니 기가 막히고 정신이 없었다.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 분명했는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가 남으리란 건 분명했다.


일 년 전만 해도 백수였는데 한꺼번에 세 개의 직업을 두고 고민하는 처지가 될 줄이야. 남들은 내 나이에 이성의 구애를 받는다는데 나를 원하는 건 일뿐이구나. 얼떨떨한 기분이 좀 진정되고 나니 이 모든 사태가 있게 한 최초의 질문이 떠올랐다. 첫 회사를 그만두게 만든 그 질문.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


영화는 힘들지만 좋은 영화에 이름을 올리는 건 인생에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번역은 이제 막 발을 붙였을 뿐인데도 좋은 기회를 많이 잡아서 여기서 그만두기엔 너무 아쉽다. 새 회사는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기대된다. 솔직히 인생에서 내가 창업하지 않은 회사의 처음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되겠는가. 


혼란스러웠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고를 예정이었는데 전부 하고 싶은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넷 만들어 하나는 놀고 셋은 일을 시키고 싶을 정도였다. 결국 나는 그동안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았던 과거에 선을 긋고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을 할지 선택하기 전에 우선 어떤 소득을 벌지를 정해야 했다. 기타 소득 또는 사업소득을 받는 프리랜서를 계속할 것인가. 근로소득을 받는 직장인으로 돌아갈 것인가.


경력 6개월의 초보 번역가는 궁금했다. 번역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사실 내 눈앞에는 좋은 롤모델이 몇 있었다. 나보다 약 일 년 정도 먼저 번역가의 길에 올라 다수의 작품을 번역하고 이제는 예비 번역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 업계의 베테랑 번역가로 번역 에이전시나 벤더사를 차려 번역가와 작품을 관리하는 사람 등 꾸준히 번역을 하는 선배들 모두가 내게 번역가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당장 나 자신을 보면 과연 그들처럼 될 수 있을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아카데미의 수업 첫날,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어느 정도의 경력과 실력을 갖춘 번역가는 떠나버린다.' 다른 말로는 '허리급'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건 직장인과 영상 번역가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직장인에게는 3/6/9병이 있어 3년 차에 한 번씩 찐한 자유의 유혹을 느끼지 않는가. 비슷하게 영상 번역가 역시 업계를 어느 정도 파악한 3개월 차가 되면 이 길을 계속할지 그만둘지를 정하게 되는 시기가 온다. 그렇게 1년이 지나면 남아있는 번역가는 한 줌 정도다.


벌써 함께 일한 번역가 중 몇 명은 번역의 길을 진지하게 재고하는 중이었고, 이직 제의를 받은 내게 '번역 안 해도 되겠네'라는 축하의 말을 건넨 사람도 있었다. 프리랜서 번역가의 삶은 불안정한 데다 벌이가 시원찮았으니 이건 축하가 맞았다. 여기에 일도 재미없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업계를 떠났을 거다. 하지만 축하를 받으며 냉큼 번역을 그만두고 회사를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이미 내 마음속에는 어떻게든 번역을 손 놓고 싶지 않다는 결정은 내려져 있었던 모양이다.


번역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주변의 번역가를 다시 돌아봤다. 다들 번역을 시작한 나이도 달랐고, 번역을 하기 전에 지나온 길도 달랐다. 그리고 번역을 계속하면서 넓혀가는 영역도 달랐다. 시작하기에 너무 늦거나 이른 때도 없는 일,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일, 그게 바로 영상 번역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번역을 그만 둘 지 말지를 고민할 게 아니라, 좀 더 길게 봐도 되지 않을까?




회사는 다르다. 사회의 통념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30대를 넘긴 내게 있어 회사라는 곳은 입사나 이직을 할 때 나이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100세 시대인데 뭐,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지만,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입사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둘지라도,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거라면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번역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업계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동안에는 회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열심히 경험해 보고 싶었다.


동시에 앞으로도 영상 번역가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번역의 길에 살짝 한 발을 걸쳐두기로 했다. 어느 날 찾아온 세 개의 선택지 고르기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번역은 부업으로, 본업은 부업을 병행할 수 있는 곳으로. 사실 두 회사 모두 번역을 병행할 수 있는 곳이어서 여기서 또 한 번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는 것에 마음이 끌려 스타트업으로 향했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은 절대 아닌 것 같은데, 일을 고를 때면 꼭 이런 선택을 하고 만다.


그렇게 6개월 만에 프리랜서 번역가는 부업 번역가가 됐다.


프리랜서에게는 한 번쯤 이런 순간이 온다. 떠나온 회사, 떠나온 경력이 나를 부를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면, 욕심을 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어떤 길로 걸어갈지는 정할 수 있다. 그것이 두 갈래 길에 전부 올라타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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