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의 현실적 이름인 "아싸"를 나의 색깔로 포용해 주자
오타쿠라는 말은 좋아하는 한 때 차별과 멸시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 스티브 잡스 같이 완벽주의적, 편집증적인 성격의 천재들이 주목을 받으며, 좋아하는 일에 심취하는 성향의 (또한 그 열정에 남들은 이룰 수 없는 결과를 얻기도 하는) 사람을 “덕후”라는 표현으로 띄워주는 풍토가 생겼습니다. 성공한 덕후라는 말도 함께 생겨났습니다. 20대 초 저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무언가에 순수하게 매진할 수 있고 당당하게 좋아하는 걸 밝힐 수 있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동경했고 지향했습니다. 하기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이상은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봤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상에 대한 집착이나 열의가 남들보다 유독 강했습니다. 일이 행복해야 한다는 순수한 신념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덕업일치를 꿈꿉니다. 제가 그랬고,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평범한 직장인의 삶과는 다른 나만의 삶을 개척할 동력으로 삼겠노라 스스로에게 맹약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에 깊이 빠져드는 성향은 중학교 때부터 관심이 생겼던 “서브컬처”로 향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주류 사회에서 배척되는 하위문화라는 점이 남들과는 다른 삶의 모델을 추구하는 어린 시절의 감성을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20대 초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 사회의 마니악한 문화를 소비하는 “덕질”로 점철되었습니다. 단순히 만화나 애니를 보고 재밌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곡을 연주하는 커버밴드를 하고 게임과 애니 속 캐릭터 옷을 입는 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등 2차 창작에 특히 심취했습니다.
저의 덕후로서의 업력은 화려합니다. 홍대에서 가장 큰 라이브홀에서 공연을 두 번이나 하고 대학내일 신문에 이색 취미인으로 취재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대학 막 학기에는 웹툰 산업이 붐이었습니다. 덕력을 높게 인정받아 엔터테인먼트 IP 유통 기업에 졸업 전부터 입사, 졸업 후엔 신규 오픈 웹툰 플랫폼 초기 멤버로 들어갈 수 있었죠. 이때 중국의 게임과 웹툰 플랫폼을 조사하며 대륙의 옥션 타오바오 직구에 눈을 떴고, 이를 계기로 수입판매 쇼핑몰을 창업했어요. 중저가의 마니악한 패션 아이템을 국내로 수입하고 판매하여 연 1억 매출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일상과 일상이 시너지를 이루는 사람. 덕업일치의 아이콘. 성공한 덕후. 남들 앞에 자신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던 말이었습니다.
덕업일치의 이상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꿈의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하면서였습니다. 서울대 졸업장이 대기업 입사권을 보장하는 시대는 먼 옛날의 것이 되었기에, 학점도 낮고 남들 다 하는 스펙 준비를 하지도 않은 저는 대기업 면접관에게 큰 인상을 줄 수 없었습니다. 인생을 파도로 보면, 진폭이 너무 들쭉날쭉해 표준 분포 안에 들지 않는, 말하자면 기댓값이 확실한 인재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몇 개월에 걸친 대기업 취준에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남들은 부러워할 법한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제게는 학교 인맥이 없었습니다. 석사 입학이나 컨설팅사 입사 등 남들 가는 길로 가려던 뜻이 없고 노력도 안 했기에, 저라는 사람과 구태여 친해지고 성공적인 미래를 위한 네트워크에 넣을 이유가 없었던 거죠. 이런 이유로 학교에서 저는 “아싸”(아웃사이더)였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아싸가 된 겁니다. 한국사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부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학교 밖 커뮤니티에 안전하고 행복하게 소속될 거란 생각도 착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동경하고 20대가 되어서야 일원이 된 한국사회의 서브컬처는 양날의 검과도 같았습니다. 저와 같이 부모님 또는 주류 사회 이해관계자의 비난 어린 시선을 견디며 살아온 개인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마이너한 커뮤니티는 연대가 끈끈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그들의 민감함을 건드리는 일을 한다면 하루아침에 매장당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류의 사람들에게 내가 해 온 일이 없어 인상과 신뢰를 줄 수 없었다면, 비주류의 세상에서는 그토록 열정을 쌓아 온 취미 생활이 작은 말이나 행동 하나로도 뒤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편견과 핍박에 상처 입은 개인들은 SNS상 말 한마디에도 날카롭고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불평등적 사고, 취향의 무시와 강요, 주류사회로의 커밍아웃 등 트리거는 너무도 많았습니다. 이 중 어디 하나에서라도 실수를 하는 대로, 실제 잘못 여부랑 상관없이 몰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덕업일치의 현실적 이름은 아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보통 사람은 일을 통한 경제생산과 덕질의 대상인 좋아하는 것의 소비를 등가 교환합니다. 하나를 위해 하나를 희생하는 겁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를 추구하겠다는 건 일에 초점이 맞춰진 주류, 덕질에 더 방점이 있는 비주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모델인 겁니다. 사이드잡과 N잡이 트렌드가 된 현재는 덜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가지 사냥터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사람이, 사냥꾼 무리 양쪽에 토끼를 한 마리씩 가져다주는 것만으로 양쪽 모두에서 안정적인 소속을 누릴 수 있을까요? 토끼를 한 마리밖에 못 잡거나 어쩌다 한쪽에 두 마리를 잡아다 주는 순간 배신자가 됩니다. 한 마리도 못 잡으면 제일 먼저 비웃음의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차별을 면하겠다고 어중간하게 주류 행세를 하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둘 다 놓치는 꼴을 낳을 수 있습니다. 덕질과 일 양쪽 세계에서 사랑받겠다는 로맨틱한 이상을 내려놓고, 때론 아싸가 되는 외로움과 배척감에 의연하게 설 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