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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긍정 Aug 09. 2019

티끌모아 여행

로컬푸드가 가져다준 행복 



퇴근길 캄캄해진 골목길을 걸으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랑하는 우리 뽀영공주 어디신가?” 엄마 목소리엔 생기가 배어 있었다. 퇴근하고 자취방 가는 중인데 엄마는 뭐해? 하고 물었을 때 엄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엄마는 이모랑 하우스에서 일하지!”


엄마와 이모는 3년 전부터 투잡을 시작했다. 16년째 운영한 식당 일 외에 부업으로 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게 된 계기는 여름 한철 장사인 가게는 여름 외에는 한가로웠기 때문이었고, 농협에서 지역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로컬푸드 마트를 활성화하면서였다. 로컬푸드는 수확한 농산물을 딱히 내놓고 팔만한 곳이 없었던 농민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소비자와 접점을 이어준 지역 마트였다. 엄마와 이모는 계절마다 바뀌는 농산물을 로컬푸드에 내다 팔았다. 봄이면 냉이와 달래를 여름이면 상추, 방울토마토 가을이면 무와 배추 그리고 겨울이면 감자와 대추를 팔았다. 내가 전화했을 때 둘은 가게에 저녁 손님을 받고 다음 날 판매할 대파를 가지러 하우스에 갔던 참이었다.


“손님 받았으면 좀 쉬지” 내 말에 엄마는 날이 따듯해 대파가 계속 자란다며 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녀들의 가내 수공업은 자정까지 계속될 것이었다.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유는 주말 본가에서 쉴 때마다 보던 풍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졸린 눈을 하고선 파를 다듬을 때도 있었고, 오늘은 더이상 못하겠다며 드러누운 엄마에게 빨리 일어나라며 재촉하는 이모도 있었다. 아침엔 새벽같이 일어나 영양제를 먹고 둘이 마주 앉아 포장하는 모습이 선명했다.


자가용이 없던 몇 년 전에는 집에서 7km 떨어진 옆동네 농협에 야채를 갔다 내기 위해 삼촌 차를 빌려 탔다. 그마저도 삼촌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둘은 하루에 다섯 번만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그녀들은 마치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악착같이 일했다. 시급으로 치면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리만큼 단가는 저렴했다. 대게 야채는 개당 1000원대였고 비싸면 2000원꼴이었다. 옆 마트에 비해 지나치리만큼 싼 것들도 있었는데 농업인들끼리 재고를 남기고 싶지 않아 가격 경쟁이 붙는 것이 이유였다. 


오빠와 나는 종종 천 원짜리 팔아서 언제 돈 버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모와 엄마는 무슨 소리냐며 집을 어지른다는 오빠의 잔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매일 밤 야채가 가득한 빠께스를 집안으로 가져왔다. 대게 하루 두 번 꼴로 로컬푸드에서 문자를 보내주었다. 당일 팔린 금액을 문자에 찍어주었는데, 이모는 많이 팔린 날은 내게 팔린 금액을 읊어주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날은 대게 5만 원대였다. 일당으로 치면 터무니없이 저렴한 금액이지만 그녀들은 가만 앉아 돈 버는 것처럼 쏠쏠해했다.


야채를 갔다 내러 읍내까지 나가기 어려웠던 둘은 1년 만에 자가용을 하나 샀다. 그리고 지난 3월엔 생애 처음 해외 가족 여행을 떠났다. 끈질기게 야채를 내다 판 돈이 어느새 모여 네 식구가 4박 5일 동안 태국에서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금액이 된 것이었다.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에서 그녀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처음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탄 엄마는 창가 속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의 바다에 빠졌어!”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둘 쨋날 묵은 리조트 야외 수영장에선 어릴 때 배웠던 개 수영을 선보이며 그녀들은 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살면서 놀아 본 시간보다 일한 시간이 더 긴 그녀들은 먼 남쪽 나라까지 와서 돈 쓰는 걸 아까워했다. 더위를 식히러 들어간 카페에서도 됐다며 손사래를 쳤고, 피로를 풀기 위해 예약한 마사지샵에서도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으면서 마사지는 싫다며 얼굴을 찌푸려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20층 높이의 사성급 호텔의 문을 열었을 때 그녀들은 방이 너무 좋다며 살면서 이렇게 좋은 호사를 처음 누려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처럼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몇 번의 호사를 누려본 나는 미안한 마음과 뿌듯한 마음이 교차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앞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기로 마음먹었다는 이모는 다음 여행지를 두 개나 골랐다. 국내는 독도, 해외는 사이판이란다. 그녀들의 가르침을 경험으로 배운 나는 과연 티끌을 모아 그녀들이 준 선물 비스름한 걸 만들 수 있을까. 오늘도 퇴근길 수화기 너머 생기발랄한 그녀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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