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따비 Mar 27. 2017

13. 오늘도 관리되는 여자

기록과 관리

나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어느덧 스마트폰이 나를 '관리'하고 있다.


의도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런 관계가 됐다. 스스로를 관리하는 도구로써 스마트폰이 제격이라고, 그 탓을 돌려본다. 지금 말하는 관리의 의미는 좁혀둘 필요가 있겠다. '스스로의 기록을 통한 관리'이다.



# 그곳에 기록하게 된 것들



현재 폰에 설치된 기록용 앱이 몇 개 있다. 아이폰에 내장된 메모 앱 그리고 일기, 할 일 리스트, 가계부, 여성들만의 필수 앱, 물 마시기 앱... 각각의 목적에 따라 나의 하루, 시간, 주기 그 밖의 것들을 틈틈이 기록하고 있다. 다이어리를 쓰고는 있지만 사실상 내 다이어리는 많은 기능을 여기에 빼앗겼다. 심지어 용도별로 생각했으면 여러 개로 나눴어야 했는데(메모장, 다이어리, 가계부 등) 이제는 단 하나의 단말기 속에 편리하게 넣어둔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의 이모저모를 손쉽게 기록할 수 있게 도었다.


스마트폰 버전 기록과 관련하여 시시콜콜한 경험들은 있다. 이를테면 그동안 일기 앱을 몇 번이나 바꿨는지 모른다. 더없이 심플한 디자인인가 분위기 있는 배경이 깔려 있는가, 글씨체가 단일한가 다양한가, 사진 첨부가 용이한가 아니면 사진 기능 자체가 거추장스러운가, 전체적인 인터페이스는 어떠한가 등등. 일기 앱을 대하는 내 마음이 유독 갈대 같더라니, 끝내 지금은 폴더 안에 묵혀두고만 있다. 마음만큼은 일기를 꾸준히 쓰고는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던 탓에 애먼 앱만 바꿔왔던 게 아닌가 한다. 아니면 난 앱보다 다이어리에 끄적이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스마트폰으로 쓴 일기는 관리는 쉽지만 글쎄, 내가 일기에서 원하는 감성, 느낌이 충족되지 않는 것 같다.



# 앱 설치가 반이다


어쨌든 나열해놓고 보니 나는 꽤 기록을 즐겨하는 사람이다.(혹은 기록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앱의 유무는 최소한 나의 의지와 관심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기록을 하면 보이지 않던 나의 하루와 습관들, 자칫 스쳐 지나갈 뻔했던 찰나의 감정들이 보인다. 기록이 하루 이틀 모이면 모일수록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참 좋은 게 기록이지만, 또 이건 상당한 성실함을 요하는 것이어서 귀차니즘이 올라올 땐 치명적이다. 각종 다양한 앱들은 그 일의 무게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고, 이용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애를 쓴다. 심플에서 화려함까지 다양한 인터페이스와 다른 앱은 생각지 못했던 기발한 기능들을 장착하고서. 나의 하루 중 어떤 부분을 기록하고 싶거나 습관을 개선하려 한다면 앱스토어에 무엇이든 검색해봐도 좋다. 지금은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웬만한 관리 앱들이 차고 넘친다.


기록의 귀차니즘을 살짝 넘기고 나면, 기록은 어떤 면에서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그렇고, 기록을 하면서 저절로 스스로를 감시/관리하게 되니 이를 잘 마쳤을 때의 뿌듯함도 있다. 요새 그 소소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대표적인 것이 물 마시기 앱이다. 몇 달 전 인바디 측정 후 '수분 부족'이라는 결과에 각성하여 바로 앱을 깔았다. 하루 2.5L 마시기를 거의 매일 꾸준히 달성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이 앱 덕분이었다. 정해놓은 시간마다 물소리를 내어 물마시기를 권하고, 이용자가 나태해질까봐 '물 마시기의 효과' 메시지로 꾸준히 자극해준다. 하루 목표치를 달성하면 팡파르가 울리며 격려도 해준다. 별 것 아니지만 뚜렷한 목표와 이를 달성했을 때의 기쁨을 옆에서 부지런히 챙겨준다.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생각도 못했을 기능이다. 



나는 꽤 효과적으로 관리의 대상이 된 셈이다. 그 과정도 그리 고되지 않을뿐더러, 어떤 앱들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할 수 있도록 미션 과정을 놀이 형태로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서는 의지는 있어도 사소하고도 안타까운 이유로(대표적으로 귀차니즘) 꾸준히 해내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것들이 많다. 해야지, 해야지 말뿐인 채 1년이 2년이 되고 결국 '하지 않기'가 습관이 되어버린 것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에 비유한다면, 오늘날 스마트폰 유저들에겐 '앱 설치가 반'이 아닐까.



# 관리시스템이 +1 추가되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새로운 기록 앱을 설치한 덕분이다. 식단 관리 앱인데,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려고 검색해봤다가 나도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아 우연찮게 설치하게 됐다. 매 끼와 간식을 뭘 먹었는지 기록하는 아주 심플한 기능을 갖추고 있어 군더더기 없고 기본에 충실한 게 딱 마음에 들었다. 재미있게도 내가 먼저 관심이 있지도 않았지만 앱을 보고 호기심과 욕구가 생겨 실천까지 다다른 경우다. 이런저런 앱들은 자꾸 뭘 해보고 싶게 만든다. 오늘 하루의 식단을 적어보면서 꾸준히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습관이 형성될 모양새다.



작가의 이전글 12. 심심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