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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수 May 01. 2024

넛지와 윤리적 디자인, 디자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넛지의 기본 원리,
인간 행동의 부드러운 유도


'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또는 ‘주위를 환기시키다’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입니다. 사람들의 행동 결정과 반응을 연구하는 행동 과학 분야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디자이너가 만든 작은 요소 하나가 우리를 살짝 건드리는 팔꿈치와 같이, 일상에서 우리의 결정을 부드럽게 유도할 수 있는 거죠.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H. 탈러와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이 공동 저술한 《넛지》에서는 “겉으로 보기에 사소한 요소들이라도 사람들의 행동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국제공항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에 파리 이미지를 부착하여 소변 튐을 80% 이상 줄인 사례는 넛지의 효과를 잘 보여줍니다.


온라인 쇼핑몰의 자동 결제 시스템도 넛지의 한 예입니다. 고객이 계좌번호를 등록하고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결제되도록 설정함으로써, 사용자가 실수할 가능성을 높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스템 디자인은 쇼핑몰에 상당한 이득을 가져다줍니다. 또한, 스와이프swipe 제스처만으로 구매가 가능한 결제 시스템은 사용성을 높이며 소비자들이 더 쉽게 구매를 결정하도록 합니다.


공공 디자인에서도 좋은 넛지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로 바닥의 안내 유도선이 그 중 하나입니다.


넛지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사용자가 지정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선택되는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입니다. 리처드 탈러는 이러한 디폴트 옵션을 설정하는 주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넛지가 슬러지(부정적 넛지)나 악의적인 넛지로 변질되어 사람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을 경계하며, 넛지를 선한 목적으로 사용할 것을 촉구합니다. 넛지는 사람들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지만, 그것이 부정적으로 사용될 위험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넛지를 통한 앱 체류 시간 확보, 
그리고 나타나게 되는 결과는? 

최근 사용하고 있는 앱에서 인상 깊은 넛지를 경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방식은 기업의 이윤을 높이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사람들의 건전한 소비 생활이나 투자 생활을 고려했을 때는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식 투자에 큰 관심이 없음에도 올해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업의 주식을 몇 개 구입했는데요. 예를 들어, 나이키, 핀터레스트, 해외 생활에 유용했던 아마존 등입니다. 그리고 이 주식들을 구매한 후에는 거의 쳐다보지 않습니다. 금액의 변동에 집착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해당 앱의 홈 화면에 투자 금액과 시세 변동률이 첫 화면에 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또는 떨어졌는지, 변화의 수치를 매번 앱을 켤 때마다 확인시킵니다. 주식을 투자한 사람들이 이런 하루하루의 증감률 차이를 보면 대부분 해당 탭을 클릭하여 현재의 주식 현황을 살피고, 주식을 추가로 사거나 팔지 고민하게 될 수 밖에 없죠. 이는 주식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만드는 상당한 효과(?)가 있습니다.


앱을 키고 홈 화면을 보는 순간 저 빨간색 또는 파랑색으로 표시될 퍼센트에 주목하게 되고 머릿속으로 한 번이라도 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생각에 상당한 간섭이 이뤄지는 셈이죠.


기업 입장에서는 좋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것이 자사 서비스의 활용을 증진시키는 발판을 마련해 주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주식 투자자들에게 '단기적인 초점'을 갖게 하며, '장기적인 관점'을 잃게 만듭니다. 결국 이는 '충동적 거래 결정'을 초래할 수 있는 거죠. 지속적인 시세 확인은 투자 변화를 빠르게 확인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마저  '투자금에 대한 생각'을 집요하게 유발합니다. 


홈 화면에서 투자 금액과 변동률을 보는 것이 디폴트 값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사용자가 이를 조정하여 가릴 수 있다면, 저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정을 아무리 해보아도 현재 보유한 주식 금액과 변동률을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고객센터에 문의했으나 '없앨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해당 앱에서는 홈 화면에서 계좌에 들어 있는 금액은 숨길 수 있지만, 투자 금액과 변동률은 숨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매번 앱을 켤 때마다 이를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 해당 기업이 접근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시각 장애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디폴트 설정은 기업의 이윤 추구와 동시에 사용자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 유도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사용자가 조절하여 투자 모아보기를 보이지 않게 하거나 금액 변동률을 가릴 수 있게 되어있다면, 나는 아마 이 글을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자인에도 윤리가 필요합니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구글에서 '디자인 윤리가' 및 '제품 철학자'라는 새로운 직함을 도입하면서 기술 산업이 인간의 정신과 잠재력을 보다 의식적이고 윤리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Gmail 알림이 수억 명의 사용자의 집중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많은 이메일 알림이 업무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무한 스크롤의 SNS 피드가 수없이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만드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특히 13세에서 17세 사이의 청소년들의 집중력을 크게 저하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632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모바일 화면 노출 시간이 증가할수록 주의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많은 길거리 사고의 주요 원인이 스마트폰 사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사용자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성경 이야기에서 아담이 뱀의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었던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D55ctBYF3AY

“가장 깊은 인간의 가치를 그려볼 때, 기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그의 질문에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슬롯머신처럼 무한 스크롤에 빠지기 전에 이런 간섭 어구가 한 번 등장한다면? 혹은 스크롤을 내리는 데 한 손가락이 아니라 두 손가락을 쓴다면? 위에 예시들은 웃음을 위해 재밌게 만들어놓은 것들이지만 충분한 생각의 여지를 줍니다.


수많은 SNS 들이 고객을 이목을 잡아 끌고자 노력합니다.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고객에게 한 번이라도 더 브랜드를 떠올리도록 만듭니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방식이 두 가지 주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자동 시스템으로, 일상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익숙한 상황에서 거의 본능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합니다. 이 시스템은 경험과 개인의 편향에 기반한 판단을 내립니다. 두 번째는 숙고 시스템으로, 논리적이고 의식적인 사고 과정을 포함하며, 신중한 판단과 분석을 기반으로 결정을 내립니다. 이는 많은 노력과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자동 시스템은 개인의 편향이나 경험에 의해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바람직한 넛지는 사람들이 숙고 시스템을 통해 더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강제나 명령과 달리,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끕니다. 


결과적으로 넛지는 사용자가 삶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리거나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때, 기업의 이윤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아래와 같은 생각을 토대로 말이죠.


"우리가 돈과 숫자에 집착하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삶에서 더 중요한 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 할 것인가?" 



*2023.12.20 일 발행한 MSV 뉴스레터의 글을 일부 재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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