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원래 말소리가 작은 사람이었다.
그건 성격이기도 했고,
살아가며 몸으로 배운 방식이기도 했다.
집 안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늘 먼저 선택을 받았다.
말이 빠른 사람들은 자기 몫을 챙겼고,
조용한 아이는 그 틈을 피해
자기 자리를 스스로 찾아야 했다.
엄마는 일찍 그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말을 아끼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고,
눈에 띄지 않으면
괜한 일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조용함은
엄마에게 가장 먼저 몸에 밴
안전한 선택이었다.
학교에서도 엄마는 비슷했다.
손을 번쩍 들고 나서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부르면 빠르게 대답했고,
부탁을 받으면 빠지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저 아이는 참 얌전해.”
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그 말 속에
기대와 책임이 함께 들어 있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조용한 아이는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불려갔다.
청소를 할 때도,
심부름을 보낼 때도,
어른들 사이의 애매한 일을 맡길 때도
엄마는 늘 빠지지 않았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가장 쉬운 선택이라는 것도
그때 이미 배워버렸다.
화가 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속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법을
엄마는 배운 적이 없었다.
울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참아도 하루는 지나간다는 걸
조용한 아이는
몸으로 먼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의 조용함은
약함이 아니었다.
소리 없이 버티는 방법이었고,
스스로를 다치지 않게 지키는 기술이었다.
소리를 낮추는 대신
몸을 더 움직였고,
말을 아끼는 대신
자기 몫보다 조금 더 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상황을 살피는 쪽을 택했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보다
남의 말을 먼저 들어주었다.
사람들은 그걸
착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안다.
그건 엄마가
오래전부터 익혀온
생존 방식이었다는 걸.
엄마는
조용해서 살아남았고,
조용해서 버텼고,
조용해서 오래 갔다.
그 조용함이 없었다면
엄마는 그 많은 시간을
지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가 늘 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이유를.
그건 성격이 아니라
엄마가 세상을 건너온 방식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