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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Oct 06. 2021

할머니가 날보고 ‘오빠’라니 이거 참

여행자의 나라 미얀마 그 일상의 얼굴, 첫 번째 - 미얀마에 부는 한류

"Do you know Rain? 비, Rain?”

10여 년 전 출장 중 홍콩을 거쳐 마카오로 넘어갔을 때의 일이다. 마중 나온 20대 중반의 현지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질문을 했다.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분명 '비'를 아느냐고 묻는 거였다. 지금이야 전 세계적으로 BTS(방탄소년단)가 대세라지만 10여 년 전에는 Rain(비)가 한류의 대세 중 대세였다.
나는 빈약한 영어실력을 감춰보겠다는 생각에 "Yes(예스)"하며 얼버무렸다. 나의 단순한 이 'Yes' 한 마디가 후에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그때부터 반 흥분 상태로 나를 따라다니며 엄청난 영어 질문을 쏟아냈다. 그렇잖아도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나는 반나절 넘게 영어 고문을 톡톡히 당해야 했다.

그녀는 '비'의 열성팬이었다. 오전에 고객 픽업차 공항 나갔다가 마침 입국하는 '비'를 직접 보았다며 흥분했다. 그런 흥분 상태에서 나의 '예스' 한 마디를 비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 그녀는 들뜬상태로 연신 비를 아는 한국사람이라 반갑고,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하여튼 우리는 영어 고문으로 귀 고생은 좀 했지만 일정 내내 ‘비’ 덕분에 최상의 가이드로 보상을 받았다. 나는 그때 말로만 듣던 한류의 힘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늦게나마 '비'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미얀마 방송에서 한국 말이
미얀마에 가면 별 존재감 없이 살던 보통 사람도 한국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나 또한 미얀마 가기 전에는 이 말에 반신반의했다. 실제 한국에 대한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내 경험상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은 단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여행자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낭쉐(Nyaungshwe)의 북쪽 작은 도시 따웅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 작은 소도시 한복판에서 우리말을 들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의 소도시쯤 되는 곳에서 어설픈 "코리아루 묘 바(한국사람입니다)"라는 말에 "안녕하세요"하며 반겨주는 미얀마 아줌마들을 보는 기분은 정말 묘하고 짜릿했다.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렇듯 미얀마 한류는 다른 동남아 국가와는 차원이 달랐다.

▲ 미얀마에 가면 라면이 아니라 ‘라연’: 양곤 시내에서 발견한 한국 라면 짝퉁

미얀마 한류의 중심에는 바로 한국 드라마가 있다. 밤 문화가 별로 없는 미얀마에서 텔레비전 시청은 그들에게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미얀마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다. 믿기지 않지만 어떤 드라마의 시청률은 90% 가까이 나왔다고 한다. 실제 대부분 식당이나 술집에서는 축구 아니면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었다. 대부분 한국 드라마는 더빙하지 않고, 자막을 입혀서 내보낸다. 이런 이유로 많은 미얀마인들은 "안녕하세요?", "오빠", "사랑해요" 등 간단한 한국말을 할 수 있다. 미얀마에 가면 못 알아들을 거로 생각하고 괜히 욕하지 마시라. 의외로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현지 가이드 말에 의하면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2001년에 방영한 송혜교, 원빈, 송승헌 주연의 <가을동화>에서부터라고 한다. 그 이후 미얀마에서 한국 드라마는 다른 모든 프로그램을 제치고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고,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미얀마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한국인들과 많은 부분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얀마 사람에게는 '가족 중심의 문화'와 '정(情)의 문화'와 같이 우리와 통하는 정서가 있다. 한국 드라마에 깊이 공감하며 빠질 수 있는 이유다.
                                                                             

▲ 달라 지역에서 만난 미얀마 아주머니들: 한국사람이라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안녕하세요?’하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한국 드라마에 빠진 시어머니와 며느리
양곤의 밤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선 꼭 한 번 들러야 한다는 19번가(세꼬랑) 꼬치 골목에 갔을 때 일이다. 그곳에서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진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만나게 되었다. 테이블에 앉아 미얀마 맥주에 꼬치구이로 여행자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젊은 여인이 나타나 어설픈 우리말로 “한국사람? 한국에서 왔어요?”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를 데리고 나왔다. 자기 시어머니인데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해 지금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며 한국사람들이 왔다고 하니 꼭 만나보고 싶다는 거였다. 우리는 흔쾌히 허락했다. 시어머니는 소녀처럼 수줍은 미소로 연신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등 간단한 한국어를 외치며 우리를 반겼다. 괜히 우리가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 미얀마 한류:오전인데도 식당에 앉아 한국 드라마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술집 벽면 TV에는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류 때문에 일부 부작용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예로 미얀마 사람들은 한국인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로 안다. 어떤 음식점에서는 메뉴판에 가격이 버젓이 쓰여 있음에도 턱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 이 가격이 아니고 이렇게 비싸게 받느냐고 따지면 ‘너네 나라는 부자잖아’라는 말로 당연시해버린다.


딱히 부작용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남자 호칭을 ‘오빠'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현지에서 어딜 가나 우리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말은 '안녕하세요?'와 '오빠'라는 말이었다. 젊은 아가씨가 오빠라고 불러주면 고맙겠지만 따웅지 시장 좌판 할머니가 날보고 '오빠'라며 웃으니 '이거 참 난감하네'였다. ‘오빠’가 우리나라 대표 말도 아닌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돌아와 드라마를 눈여겨보니 정말 '오빠'라는 말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또 재미있었던 것은 유부남은 누구나 애인을 두고 살 거라는 편견이 생긴 듯, 내가 유부남임을 밝혔음에도 애인이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한류의 소소한 부작용쯤으로 이해한다.
혹시 드라마 작가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시청률도 좋지만, 우리나라 문화를 오해하게 하는 지나친 막장드라마는 지양해줬으면 한다. 드라마 한 편이 세계 곳곳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창작의 자유까지 침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미얀마에 부는 한류는 현재 진행형
이처럼 미얀마에 부는 한류 바람은 현지 교민에게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양분이 되고, 우리 같은 여행자에게는 어느 곳에 가든 호의를 받게 해주는 윤활유가 된다. 일부 교민은 이런 한류를 사업에 활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기도 했다.
 
양곤에서 <파리지앵>이라는 빵집과 외곽에 <골든파크(Golden park, 한국식 찜질방과 사우나)>라는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박구영 대표는 한류를 사업화에 잘 접목하여 성공한 사람이다. 처음 방문 시 박대표의 초대로 한국식 찜질방 골든파크를 방문했었는데 그 더운 나라 찜질방에 양머리 수건을 쓴 미얀마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국 드라마’ 영향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만달레이에서 한국식당 <코리아 타운> 체인점을 운영하 최정열 대표도 한류를 사업에 잘 접목시켰는데 식당 최고 메뉴는 한국식 치킨이라는 설명이었다. 물론 두 분 다 단순히 한류만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지만, 시대 흐름을 잘 읽어낸 사람들임은 분명했다.  

                                                                                     

▲ 재 미얀마 박구영 대표(2014년):파리지앵과 골든파크를 운영하며 KBS 강연 100℃에도 출현했던 성공한 사람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나 홈플러스쯤 되는 양곤 시내 대형마트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곳 마트 진열대 중앙에 한글이 박혀 있는 짝퉁 라면을 발견한 일이다(맨 위 사진). 분명 컵라면인데 상표에는 영어로 ‘K-MEE’와 바로 옆에 한글로 라면이 아니라 ‘라연’이라 쓰여 있었다. 거기에 ‘연’ 자의 ‘ㅇ’에는 태극문양이 디자인되어 있었다. 딱 봐도 한국 라면 짝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앗! 저것이 한류의 실체다' 친구와 나는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이처럼 미얀마에 부는 한류 바람은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꼭 한 번, 여행자가 되어 미얀마로 떠나 보길 권한다. 한국 사람인 당신은 미얀마에서 이미 한류 스타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거 이거 이 땅에서는 별 존재감도 없는데, 정말 미얀마 진출 한 번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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