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무덤 충청도
총선이 끝난 지 십여 일이 지났다. 천지사방에 꽃이 피고 산들은 어느새 초록 옷으로 갈아입었다. 봄놀이하기 딱 좋은 호시절이다. 거리마다 후보들의 붙은 요란한 현수막, SNS를 떠도는 선거 잡담들, 각종 여론 조사 전화 등 시끌벅적하던 선거판이 사라지자 일상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해졌다. 벚꽃이 한바탕 요란하게 피고 지듯 선거판은 이처럼 한 달 정도 피었다 지는 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과 달리 정치권은 선거 후 결과에 따라 더 바빠지고 큰 흐름들이 일렁이고 있다. 그동안 꿈쩍도 않던 집권세력도 약간의 변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역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는 말이 맞긴 맞는가 보다.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라면 선거판의 꽃은 여론조사다. 선거기간 동안 나의 가장 큰 관심사 또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였다. 나뿐 아니라 선거 관심층이면 선거기간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는 초미의 관심사다. 이러한 여론조사는 선거의 큰 재미 요소이며 지지하는 당이나 후보에 대한 관심과 몰입을 더해주는 중요 지표다.
이렇게 선거에서 최고의 재미와 관심을 갖게 하는 여론조사도 충청도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있다. 여론조사기관들도 스스로 충청도를 여론조사의 무덤이라고도 표현하며, 충청도는 일반적으로 보는 표준오차 +-5%를 넘는 경우가 많아 조사 결과가 맞지 않을 수 있어 +-12% 표준오차를 적용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번 선거에서 박 00 후보와 정 00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십니까?”
“다들 훌륭한 분이라고 하대유”
이런 식이니 제대로 여론을 읽어 낼 수 있겠는가?
나는 충청도 사람이다. 충청도 사람들은 위에서처럼 ‘아니다’ ‘안된다’와 같은 부정적인 직접화법은 잘 쓰지 않는다. 이러한 충청도 화법 때문에 외부인들은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함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충청도 사람을 잘 몰라 그러는 것이다. 충청도 사람들이 특히 부정적인 말에 직접화법을 잘 쓰지 않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 때문이다. 충청도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억세지 않은 성정과 순박함이다. 이렇게 유순한 성정이다 보니 상대에게 작은 상처라도 줄까 봐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딱 잘라 말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한다. 어쩔 수 없이 꼭 부정적인 생각을 표현한다 해도 “소용 읎슈” 아니면 “틀렸슈”가 전부다. 이러니 충청도 여론조사가 실제 결과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디서 살아두 짐작이 천리구, 생각이 두 바퀴 반이란 말여. 말 안 하면 속두 읎는 줄 아남?”
웬만해선 잘 안 하는 말이지만 충청도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참고 참다 하는 말이다. 충청도 사람들이 이 정도 말을 하면 깝죽거리지 말고 바로 고개를 숙이거나 피해야 한다. 이 정도면 화가 엄청 많이 난 상태다.
순한 개가 화나면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