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고찰, 미스슬로운

제시카 차스테인의 빼놓을 수 없는 영화

by 제이린 Jayleen
개봉 : 2017년 / 장르 : 드라마 / 주연 : 제시카 차스테인 / 네이버 평점 : 9.32


이 영화의 주연인 제시카 차스테인이라는 배우는 영화 'HELP'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흑인을 시종으로 부리며 재산의 개념으로 생각하던 미국의 그 시절을 그린 이 영화에서 제시카 차스테인은 흑인 도우미도 '사람'으로 온전히 대접한, 개념 있지만 허당끼 많은 백인 역할을 연기했다.

주연이 여러 명 등장하는 영화였지만, 이상하게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만이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이후 그녀가 연기한 여러 작품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녀는 캐릭터의 매력을 100% 끌어올릴 줄 아는 배우였다.


미스슬로운은 편안하게 누워서 뇌를 쉬어가며 볼 수 있는 영화는 확실히 아니다. 그런데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강력해서, 영화가 끝나자마자 다시보기를 눌러 본 몇 안 되는 영화였다.





(영화의 결말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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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히튼-해리스 법안(총기 구매시 신원확인 의무화)의 입법'을 두고, 입법을 시키려는 세력과 제지하려는 세력간의 정치와 로비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 마디로 정치 로비스트인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이 맡은 로비의 전개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승률 100%의 능력있는 로비스트인데, 늘 자신감 넘치고 당차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말빨을 소유하고 있다. (누구든 물러서지 않고 대화의 주도권을 쥐는 그녀를 보며 짜릿할 정도이다.)


그녀는 이기기 위해 부하직원인 에스미의 아픈 개인사를 방송에서 제멋대로 이용하기도 하고, 불법도청을 거리낌 없이 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경력을 자멸시키는 선택까지 해서 결국은 이긴다.






뻔하지 않은 대립구조 영화, 선도 악도 아닌 입체적인 캐릭터


이런 류의 영화, 그러니까 불도저 같은 캐릭터가 누군가와 맞서 싸우는 대립 구조 영화의 카타르시스는 보통 이기는 과정 가운데 짜릿함과 권선징악의 속시원한 결말이다.


이 영화는 그 원칙을 모두 따르지 않는다.

슬로운은 정말 훌륭한 전략가이고 모략가이지만,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론만 생각하는 그녀의 전략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녀의 과정이 올바른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영화가 아니다)


내 임무는 이기는 거고, 난 어떤 수단이든 사용할 책임이 있으니까. (슬로운)
나는 당신이 심지어 그 일(에스미 총격사건)도 계획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에스미)
그럴 수만 있다면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슬로운)
이 바닥을 경험했으면, 이미 지칠 법도 한데... 당신은 어떻게 버티는 거지? (슈미트)
이걸 안 하면 뭘 하라고요? (슬로운)
신념 있는 로비스트는 자신의 승리만을 믿지 않는다. (슈미트)
- 미스슬로운 영화 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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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질문하게 된다. 자기학대 수준으로 일 하고, 동료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저버리면서

슬로운은 뭘 위해 이기려고 하는 걸까?? 그렇게까지 하는 동기가 뭔가?


그가 히튼-해리스 법안의 로비를 수락한 이유는(그녀를 움직이는 힘은) 신념과 도전성이라고 스스로 마지막 발언에서 밝혔다.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일을 해낼 때의 스스로에 대한 확신, 타인의 인정에서 오는 쾌감에 그 일에 도전하는 것이다. 도전성 부분은 납득된다.


그러나 신념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이기기 위해서 어떤 불법적인 비열한 수단도 마다치 않는 그녀가, 자신에게 큰 명예를 가져다줄 일이라도 '그르다고' 판단되면 맡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실제로 그녀는 총기규제가 옳다는 신념에 따라, 거대자본이자 권력과 손잡지 않고 영세세력의 로비를 맡는 도전을 펼친다. 하지만 그런 신념이라면, 수단도 도덕적이어야 했다.


동료의 아픈 개인사를 상의도 없이 생방송에서 떠들어대서 법안 통과의 지지표를 얻어오는 그녀의 수단은 그녀의 신념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기고자 하는 동기는 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성격 때문이었을까, 정말 총기 규제가 되었으면 하는 신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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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까지 일에 몰두하는 것은 완전히 일에 몰입하고 그를 이겨냈을 때 얻는 성취감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일 중독자인 것이다.

그녀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그녀 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진정으로 그녀와 마음을 나누고 진솔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슬로운의 직업, 진짜 이름, 사고방식 등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에스코터(돈을 받고 고객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슬로운의 요구는 잠자리) 포드에게만 진짜 자신의 표정과 감정을 드러내보인다. 가면을 쓰고 살아야만 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 대해 경멸스럽게 보지 않을 수 있는 프라이드는 아마 '신념'이었을 것이다. 옳은 신념에 몰입하고, 과정이 비열할지라도 가치를 지키는 스스로에 대해 존중할 수 있는 마지막 장치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백미인 마지막 의회 장면에서 슬로운은 불법 도청으로 얻은 정치인의 민낯을 공개하며, '쥐같은 자들에게 보상하는 정치 시스템'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날서게 비판한다.

여기서 그녀의 직업 또한 아이러니해 진다. 그녀 스스로 이런 시스템에 기생하여 돈을 버는 기생충이 아니었던가. 쥐같은 자들에게 보상하며 의원들 표를 끌어오는 로비스트의 역할이 딱 그러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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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며 생각해보니, 슬로운은 이미 이 로비를 펼치며 정치권과 자신의 직업에 환멸을 느끼고 자멸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이 불법으로 도청한 내용을 터뜨림으로써, 본인도 최소 5년의 구형을 받아 경력을 '자살'시킨다.) 스스로 폭탄을 던졌으니 다시는 로비스트로 돌아오기 힘들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로비를 하는 과정은 악인인데, 마지막에 가서 보면 타락한 정치권을 갈아 엎으려는 용자가 되고, 그녀의 개인사를 보면 쓸쓸하기 그지 없어 동정이 인다. 그래서 자꾸 그녀를 이해하고 싶어져서 영화를 반복해서 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력이 캐릭터의 설득력을 크게 부여했다.

개인적으로 손꼽는 명장면은 그녀가 의회에서 마지막 발언을 하고 의회를 쑥대밭을 만든 후,

흥분한 군중 속에서 고요히 앉아 있는 슬로운의 울 것 같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한 표정의 클로즈업이다.



그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대사로 리뷰를 마무리한다.


Lobbying is about foresight, about anticipating your opponent's moves, and devising counter measures. The winner walks one step ahead of the opposition. It's about making sure you surprise them, and they don't surprise you.
(로비는 통찰력에 대한 것입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방안을 강구하죠. 승자는 상대보다 한발자국 앞서서 회심의 한방을 상대보다 먼저 날려야 해요. 상대를 놀라게 만들되 상대에게 놀라선 안돼요. (슬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