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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봉씨 Feb 16. 2021

리코타 치즈와 떡국

조금 멀어지니 조금 더 가까워졌다.

#프로젝트조중석

Vol7.


조|아침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를 곁들인 빵

오랜만입니다.


설 연휴, 설 다음날 아침.

특별할 건 없지만 변화는 주고 싶고. 무엇보다 늘 듣던 그 소리들을 또 듣고 싶지도 않은 연휴.

일 때문에 처음 독립을 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내고 있는 동생의 집(=나의 비공식 아지트)으로 자발적 피신을 온 지 이틀째 돠는 날.


업 특성상(!) 연휴가 더 바쁜 동생은 아침에 출근을 하고, 나는 동생이 출근한 빈 집으로 출근(?)을 했다. 빵을 한 조각 굽고, 빵을 굽는 동안 명절 분위기 조금 내고 싶어 냉동 동그랑땡 두 개, 슬라이스 햄도 구웠다. 전날 만들어 냉장고에 차갑게 둔 리코타 치즈를 잘 구워진 빵 위에 곁들여 먹었다.


치즈도 맛있었지만 빵 자체가 맛있어서 기대보다 훨씬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아침을 보냈다.


처음 만들어본 리코타 치즈. 

그동안 레스토랑이나 사서 먹었던 질감보다는 훨씬 묽었지만, 신선한 스프레드 같은 느낌이라 나는 더 입에 맞았다. 뜨거운 빵 위에 차갑고 고소한 치즈, 짭조름한 동그랑땡. 묘하게 맛있었다.



중|점심

만두(해장)라면

오랜만에 만나는 바람에(?) 좀 마셨습니다.


점심은 어제 맥주파티로 놀랐을 속을 위해 해장라면을 끓였다.

엄마표 손만두도 넣고, 다진 마늘도 듬뿍 넣고, 파도 넣고 계란도 넣었다.


나의 냉장고는 아니지만 늘 비슷한 걸 먹고, 또 좋아하고

어디에 뭐쯤은 있겠다는 것을 아는 사람(=가족)의 공간이라서 그런가, 어색하지 않고 편하고. 좋았다.


해외 발령이나 긴 여행 등으로 떨어져 지낸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 우리 둘 모두에게 '진짜 조금 더 떨어져 지내는'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걸 어떻게 느꼈냐고 한다면, 툭툭 하던 말은 그대로 하지만 조금 더 신경 쓰고, 조금 더 배려하고, 상대방의 상황을 조금 더 알아두려고 하는 그런 거. 특히 동생의 대화에 미주알고주알이 더 많아졌다.


(한 캔씩만 하려고 했던 맥주를 두 번이나 더 사 오고, 더 이상 마실 게 없는데 또 가면 다시는 그 편의점을 못 갈 것 같다고 결론짓고 꾹 참고 멈췄다. 다 마신 캔의 총개수는 밝힐 수 없음을 밝힙니다.) 


너가 이렇게 말이 많았구나, 언니가 얘기를 이렇게 잘 들어줬었나.
(동시에) 세상에.



TMI : 나는 우리 가족에서 '미주알고주알'을 담당해오던 '원조'다. (자부심)


기본적으로 대화가 참 많은 가족이기도 했지만 삼 남매 중에서도 유독 일상도 더 잘 공유하고, 부모님께 비밀이 없었던 그야말로 좀 특이 케이스. 그런데 하나 둘 나이를 먹고, 나의 대화 주제는 더 풍부해지는데 부모님의 대화 주제가 너무 단조로워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기승전결혼). 그래서 (중략) 요즘 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친구처럼 지내던 부모님과도 본의 아니게 가족 내 거리두기를 시행 중. 가족간의 대화로 쓰는 시간이 우선순위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는 거리가 멀어져도 멀어지고, 넘어지면 코 닿을 공간에 있을지라도 마음이 멀어지니 더 멀어졌다.


그런데 또 대화가 적었던 동생과는 멀어지니 그동안 대화의 영역에 들여놓지 않았던 삶의 영역을 대화로 공유하기 시작 헸고, 반대로 늘 대화가 끊이지 않았던 부모님과 멀어지니 '우린 대화 잘되지' 속에서 놓친 진짜 대화를 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감사한 건, 그동안 해 온 대화근육이 서로에게 많이 붙어있기 때문에 이 변화를 서로 느끼고 노력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다.


어쩌면 동생과도 부모님과도, 조금 멀어지니 조금 더 가까워지는 중인 것 같다.

아직 다 말로 정리할 수 없는 이 새로운(적어도 미주알고주알 원조에게는 아주 새로운) 경험을 잘해나가서 나의 글로 다시 한번 정리해보는 날이 곧 왔으면.


대화도, 표현도 새롭게 다시 시작해보고 있다.


동생 집으로 오기 전날, 오랜만에 함께했던 저녁식사





리코타 치즈 만들어본 과정
(글이 길어 산만하지만 혹시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1. 우유와 생크림을 2:1 비율로 (나는 우유 1000ml와 생크림 500ml로 맞췄다) 한 냄비에 붓고 약불로 켠다.

2. 소금 2 티스푼을 넣고 2-3회 정도만 저어준다. (소금이 섞일 정도만, 많이 젓지 않는 게 포인트)

3. 약불로 10분 정도 끓여준다.

4. 냄비 벽면에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면 레몬즙 3 티스푼을 넣고 2-3회 저어준다. (레몬즙이 섞일 정도만)



5. 레몬즙을 넣고 15분 정도 약불에 더 끓여준다.

6. 15분 정도가 지나면 맑은 순두부 같이 몽글몽글 우유가 뭉쳐지는 걸 볼 수 있다.

   (나는 너무 약불로 했는지, 레몬즙을 덜 넣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참고한 레시피들 보다는 조금 더 묽었다)

7. 몽글몽글 할 때까지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15분간 식혀준다.



8. 한 김 식힌 몽글몽글 우유를 면보에 담아 유청을 거른다. 

   면보 아래 채반을 놓고 우유를 담은 후 주머니처럼 조여주면 유청이 더 잘 빠진다.



9. 우유 주머니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두면 유청도 잘 빠지고, 더 단단한 질감의 치즈가 된다.

10. 1차로 빠져나온 유청은 버리거나 따로 담아두고 무거운 걸 올린 상태로 하룻밤 냉장보관 한 뒤 먹는다.

    (하루 전날 저녁에 만들어 냉장보관 후 다음날 아침에 먹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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