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동사다

RISD, Yale 거쳐서 홍대에서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by 김보연

Design is to_______.


디자인을 설명하는 말을 찾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처음엔 ‘전달’, ‘해결’, ‘표현’ 같은 단어들을 썼다.

그 말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 부족했다.

그 단어들만으로는 내가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 내가 기대하는 변화,

그리고 수업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순간들을 다 담을 수 없었다.

나는 디자인을 그렇게 좁은 개념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디자인은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옮겨야 살아나는 것이고

누군가의 문제에 닿기 위해선 일단 스스로를 먼저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나는 이 문장을 자주 말하게 되었다.


“디자인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처음엔 단순한 말장난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수업에서 말하고, 과제로 내고, 스스로도 곱씹다 보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문이 열렸다.

학생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질문이 달라졌고, 결과물도 달라졌다.

그 변화는 나에게도 다시 디자인을 배우는 일이었다.

Visual Design Strategy라는 이름의 이 수업은

내가 디자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정확히 담고 있는 수업이다.

매 학기, 다른 전공과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인다.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도 있고, 처음 접하는 이도 있다.

문헌정보학, 심리학, 화학공학, 식품공학...

처음엔 선을 그었던 이들도, 몇 주가 지나면 스스로의 방식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걸 나는 디자인력’이라고 부른다.

재능이 아니라 훈련으로, 감각이 아니라 사고와 실천으로 만들어지는 힘.

디자인이 누구나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결국 이 디자인력’이 훈련 가능하다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업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당신에게 디자인은 어떤 동사인가요?”


학생들은 당황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지나면 수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과 언어를 꺼낸다.

to help, to invite, to induce, to adapt, to enjoy, to weave...

고른 단어를 붙잡고, 그 동사의 의미를 해석하고,

사전을 뒤지고, 어원을 파고들고,

어느새 그 단어가 자신이 되고, 디자인이 된다.

어떤 학생은 to induce를 고르며 넛지 이론(nudge theory)을 이야기했고,

또 어떤 학생은 to weave를 통해 서사와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to infuse를 선택한 학생은 디자인을 감성의 주입으로 설명했다.

이건 단지 단어 놀이가 아니다.

자신이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고민은, 곧 실천의 방향이 된다.


Visual Design Strategy 수업은 ‘정답’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의하는 능력’을 함께 기른다.

학생들은 자기 동사에 맞는 이론을 스스로 찾아간다.

To induce는 행동경제학과 연결되고,

to adapt는 지속가능성과 순환적 사고로,

to enjoy는 감각과 인지, 몸의 지각으로 뻗어나간다.

그 과정은 이론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곧 현실의 사례와 연결되고,

‘내가 디자인한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전환된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이 수업에서는 자주 배우게 된다.

학생들이 꺼낸 동사와 해석, 연결과 실천의 방식들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역을 열어준다.

그래서 이 수업은 매번 다르고,

그래서 나는 매년 이 수업을 다시 연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언어가 디자인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

그건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번역하는 일에 더 가깝다.

생각을 움직임으로 번역하고, 언어를 감각으로 번역하고,

행동을 관계로 바꾸는 일.

그 모든 과정이 이 수업의 핵심이자,

내가 디자인을 계속 배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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