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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BOYOUNG Oct 08. 2019

아낄 수 있는 목록


        

  스마트폰 앱(App)을 켰다. 그간의 지출내역을 슥슥 넘겨보았다. 서울 생활을 시작한 뒤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는데, 나가는 돈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어디에 얼마큼 돈을 쓰고 있는지 흐름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 기록이 벌써 삼 년을 넘어섰다. 앞으로 아껴야 할 게 뭔지 손에 꼽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시 스터디에서 같이 합평하면서 알게 된 동생이었다.


  “형님! 속초 한 번 또 가셔야죠!”


  여전히 유쾌한 그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시도 시지만, 종종 같이 피시방에 가서 게임도 하고, 술도 진탕 마셨다. 당시에 학부 졸업을 앞둔 그는, 취직을 할 것인지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것인지 대학원에 진학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나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았다.

  우리는 서로의 훌쩍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난해 여름, 둘이서 속초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차를 빌려 속초의 해안 도로를 달리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 들려 숙소를 잡았다. 물회를 먹고, 해변을 걸었다. 볕이 들지 않은 해변은 을씨년스러웠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리는 속초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수산물을 둘러보았다. 횟감을 흥정하는 사장님들을 뒤로하고, 닭강정 한 박스와 맥주와 소주를 사서 숙소로 향했다. 이제는 속초하면 대게가 먼저 떠오르는데, 수산 시장에서의 일 때문이다.


  그래도 바다 마을에 왔으니, 해산물은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회는 먹고 싶지 않았다. 수산 시장 수족관마다 대게가 뒤엉켜 쌓여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1kg 당 가격’을 들으며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생각보다, 아니 형편상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가격이었다. 이것저것 해서 십오만 원에서 넉넉하게 먹으면 이십만 원 선이었다. 물론 당시에 나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무리를 했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매달 지갑이 두툼하지 못했으므로,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숙소에 앉아 닭강정에 소맥을 마셨다. 우리는 대게, 대게 노래를 부르며 알근해져갔다. 다음에 올 때는 돈을 많이 벌어서, 원 없이 대게를 먹자고, 서로 다짐했다.

  그리고 최근에 취직을 한 그가, 대게를 먹으러 속초에 가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일 때문에 갈 시간이 없었다.


  “형님, 근데 아...”


  그는 이어서 또라이 같은 직장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내 머릿속에는 대게가 가득 차고 있었다. 수족관에 꽉 차 있던 대게. 그것들이 느릿느릿 내 마음을 헤집고 있었다.


  ‘대게...’




  서울 생활 내내, 나의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월세였다. 그리고 장학재단 이자였다. 차례로 식비, 교통비, 책, 술…… 순서였다. 통장 잔액이 마이너스(-)가 된 건, 서울에서의 일상을 정리하고 뇌수술을 한 2018년 12월부터다.

  그때는 돈도 돈이고 내 삶이 바닥의 바닥으로 침잠하고 있었을 때다. 삶이 무엇인지 죽음은 또 뭔지, 나는 누구인지, 주섬주섬 가슴에 납을 달고 나는 내 마음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삶과 죽음의 깊이는 알 수 없어서, 그 심연 속으로 나는 계속해 내려갔다.


  헤드라이트를 켠 나는, 기어코 그 바닥을 딛고 서겠다는 결의에 찬 감정과 글썽이는 슬픔의 감정 사이에서 매일매일 내 마음속을 수색했다. 그러고 보면 나에 대해, 내 삶에 대해서, 그렇게 끈질기게 고뇌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어디에도 ‘나’는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마다 나는 뚜렷해졌다.


  희귀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늘 익숙하게 맞이했던 일상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한 번쯤 희귀병에 걸려봐야 한다!’, ‘여러분, 나를 돌아보기에는 희귀병 만 한 것도 없어요.’ 이런 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나는 나름대로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희귀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백 퍼센트는 아니어도 적어도 나는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내 삶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실은 내 삶에서 한 번도 나를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었다.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그때서야, 나는 분명해졌다. 그리고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나를 1도 몰랐다. 좀 안다고 생각했던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시인해야만 했다. 또한 새삼스레 깨닫게 된 것도 있었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멀리 있지 않았다.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깊이 잠수하기 위해 가슴에 품었던, 납을 풀어헤쳤다. 한결 가벼워진 나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바라본 세계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나는 ‘나’를, 나아가 ‘가족’과 ‘친구’들 그러니까, 내 곁에 있는 ‘타인’들을 더 아끼게 되었다.


  “힘내고, 우리 조만간 꼭 대게 먹으러 가자.”


  나는 수화기 너머, 한숨을 내쉬던 그에게 말했다. 그와 마음 놓고 대게를 먹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지금도 나는 그에게 대게를 사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속초에서, 그간 서로 못 다 나눈 이야기보따리를 밤새 풀어놓고 싶었다. 허심탄회한 여행을 가고 싶었다.


  꼭 대게가 아니라도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서로를 아낄 수 있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통화를 마쳤다. 가계부를 마저 보았다. 아낄 수 있는 목록에는 내가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JUNGBOYOUNG 소속 직업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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