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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e Island Nov 25. 2023

꽃이었구나!

Ep.8 여자꼰대와 크리스마스 쇼핑하기

내 친구 박힌 키위(뉴질랜드 사람들이 자기를 부르는 이름) Julie와 나 굴러온 키위가 크리스마스 쇼핑을 갔다. 쇼핑몰마다 대목을 바라보고 온갖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우리를 기다린다. 당연코 빠질 수 없는 산타 할아버지와의 포토존도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Julie 가 자기는 나중에 알바로 산타 포토존에서 산타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웃었다. 그래~담배 냄새가 손에 베인 젊은 청년 산타보다는 꽃향기 푹신한 아줌마 산타가 아이들에게 더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하얀 코튼 수염으로  분장하고 빨간 산타옷 입으면 그저 자애로운 선물 가져다주는 산타인걸~아이들은 산타를 왜 믿는 것일까? 실화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른의 마음에서 묻고 싶어 진다. 동심의 환상과 추억을 깨고 싶지 않아서 침묵하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물어볼 거라고 했더니  친구가 "너네 집에 어렸을 때 굴뚝 없어지~"묻는다 "그래 없었다" 하하하

친구 딸은 9살이 될 때까지 아이슬란드에서 산타가 추워서 빨간 코가 된 루돌프를 데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찾아온다고...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 선물만 놓고 가지 마시고 이집저집 굴뚝 타느라 배고플지 모르니. 벽난로 옆에 쿠키와 우유 그리고 고맙다는 손 편지를 아주 예쁘게 만들어 놓고 잠을 잔다. 많은 아이들이 뉴질랜드에서는 한 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어서 안심할 것 같다. 불을 안 때어도 되는 날씨니 적어도 벽난로가 뜨겁지 않기에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안전히 택배 기사처럼 선물을 놓고 가시리라 믿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예전에 산타 할아버지를 더 세밀하게 분석했다면 그 누구보다 택배 사업에 먼저  뛰어들었을 터인데~ 쯧쯧 

Wish, Hope 그리고 Dreams 이런 아주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처럼 멋진 단어들은 사람들을 살려주는 말들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Dreams come true!" 얼마나 살 맛나게 하는 말들인가 싶다. 미래의 현실로 나타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설레는 말 한마디로 가슴에서 사과꽃의 향기가 내뿜어진다. 울면 안 되지 산타 할아버지 선물 안 주신대.. 음률까지 입혀서 주입된 크리스마스 선물에 담긴 바램들... 아이들을 바르게 살게 만든 이 에너지만으로도 산타 할아버지의 역할은 대단하다. 그 공로를 인정했기에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묻고 싶었던 "산타를 진짜 믿니?" 질문도 없는 기억으로 삼았다.

박힌 키위는 인당 $20을 정해 놓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자기의 budget에서  아주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 크리스마스 바겐세일과  마케터들의 1+1 유혹에도 절대 굴함 없이... 작은 수첩에 적힌 목록을 지워간다. 흐트러짐 없이 자기 식대로 하는 여자 꼰대 julie.

굴러온 키위는 budget을 잊어버리는 합리적인 생각을 한다. 커피 마시러 카페 안 가기 일주일 하면... ××&% 그것으로 + - × ÷ 그리하여 박힌 키위랑은 다른 수학 연산에 빠지고 지갑은 가벼워지고  다리만 아프다. 박힌 키위처럼 그냥 쉬운 더하기 빼기의 산수만 배울 것을 미적분 방정식까지 왜 배웠을까 싶다. 제각기 다른 방식의 숫자 놀음에서  이 지구가  돌고 또 돌고 있다. 누군가 지구 자전의 방향을 반대로 돌린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실로 궁금하다. 내가 Julie가 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여자 꼰대 Julie
Julie는 이제 다이아몬드가 되려 한다.


Julie앞에 서면 나는 왜 작은 소리로 말끝을 흐리곤 했던지... 그럭저럭 잘하던 영어도 고구마가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 배운 미국식 발음에 익숙했던 나는 julie의 yesterday를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 그녀의 발음은 '이스터다이'처럼 들렸고, 우리는 불통의 어려움을 겪었다. 신기한 것은 같은 직장동료인 필리핀 친구는 우리의 대화를 다 알아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Julie 가 영어를 못해서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니었다. Julie는 나의 문화를 나는 julie의 문화를 다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같은 기억의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 지금은 불통이 아닌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언어를 배우는 건 그 문화를 얼마나 많이 경험하느냐의  관건이다라고 나는 느낀다. 내가 다른 문화에서 와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julie가 많이 경험하고 우리의 K드라마, 김치까지 좋아하게 되니, 어순이 달라져서 말하는 나도 혀가 꼬이는, 다급할 때  나오는 나의 콩글리쉬를 듣고도 찰떡같이 이해를 한다. 고마운 친구~

4년 정도 크리스마스 쇼핑을 함께 하면서 나는 전형적 영국인의 피가 흐르는 julie에게 있는 꼰대 기질을 보게 되었다. 아무리 실속 있는 쇼핑에 대해 설명을 해도 그녀는 "나도 알아... 하지만 그래도 난 이런 게 좋아. 너도 바꾸지 마." 알면서 바꾸지 못하는 것들은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만... 나까지 꼰대가 되라는 건 뭐람~


Julie는 5년 전쯤 그녀보다 200배 더 꼰대인 꼰대킹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남편과 헤어졌다.

꼰대킹은 Gp(General Practitioners, 뉴질랜드에서 home doctor를 GP라고 부른다. 몸의 어느 부분이 아픈 던 지 무조건 GP를 먼저 만나야 한다)였다. 의사들은 어느 곳에서나 중요한 위치에 있고 수입도 좋다. Julie도 남 부럽지 않게 살았더랬다. 예쁜 셋 딸들을 낳고 육아와 병원일을 돕느라,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을 때에는 꼰대킹이 이끄는 데로 뭐든 했다.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은 인어비늘  파티복도 입어야 했고, 더워서 가고 싶지 않은 지중해 여행도 남편이 비행기표 샀으니 가야 했다. 10여 년을 매해 같은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꼰대 킹의 루틴에 자기의 삶이

묻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은 자신들의 20%의 인생을 채우기 위한 특별한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이 드라마틱한 사건의 발단이 된 사람도 그 사건에 연루되는 사람도 그 인연을 잘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밖을 보기에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 사건은  폭탄처럼 터졌다.

Julie의 보물 중 첫째 딸이 꼰대킹과 맞선 것이었다.

수많은 갈등을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강요당하는 꼰대킹의 압박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큰 딸내미가 종교의 자유, 주거의 자유, 경제적 자유, 가치관의 자유를 강하게 주장하며... 자유선언을 했고 더 이상 참고 있지 않게 다고 했다. 이 사건의 끝에서 둘 사이의 아프고 뜯기는 상처의 얼룩은 컸다. 그 상처의 흔적이 아직도 커다란 흉터가 되어 julie는 많이 아파했다.

이 사건의 결말은 흩어짐이었다. 자유의 물결이 julie의 가정에 휘몰아쳤고, 스위트피 향의 julie의 정원에서 꼰대킹만이  혼자서 오후의 티를 마시고 있었다.

어려운 결정을 한 julie도 막내가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가면서 완벽한 솔로가 되어 자기의 악기로 연주를 하며 지내게 되었다. 모든 것을 포기했기에 다시 일을 시작했고 아담한 작은방에서  꼰대킹의 지시를 받지 않으며 늦잠을 즐겼다. 30여 년을 꼰대킹의 온실에서 지내왔기에 julie는 온실밖 세상에서 많이 깎이고 부서지고 그래야 했다. 그 온실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를 닮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삶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친척 친구들이 다시 스위트피의 온실로 돌아가라고 충고했지만 julie는 용기를 내어서 혹독하고  차가운 바람에 맞섰다. 이러한 여정 끝에서 나는 julie를 만났다.


우리의 크리스마스 쇼핑이 엔딩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꼰대 Julie 답지 않게 보석들로 반짝이는 주얼리 샵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얼마 남지 않은 첫딸래미 결혼식 반지를 미리 보나 싶었다... 설마 사위에게 꼰대짓 하려는 건 아니겠지 ~

" 나 저거 살 거다" 그녀의 검지 끝을 보니 , 영롱한 무지갯빛의 너무 반짝여서 눈이 호강인 꽃모양을 한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내 눈빛의 많은 질문들을 감지하곤 "나를 위해서야, 이 반지를 보면서 많이 깎여야만 비로써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보물이 됨을 기억하고 싶어"


변화는 너무 가혹하다.

도자기 가마 속 1250도 의 온도. 그것의 뜨거운 비밀이 있듯이, 변화하는 곳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그것은 잔잔히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칼날의 번쩍임 같아서 때론 아플 수도 있다. 단단히 여미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11월의 끝자락. 12월은 크리스마스와 연말 파티로 어떻게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아쉬움에 가득 차 13월이라는 꿈의 달을 만들어주고 싶다.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번 해에 못했던 미루고 미룬 고달픈 일들도 더 이상 내년의 숙제거리가 안되게 말끔히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자기 합리화의 굴레 속에서 헤매는 나에게 만약 13월이 선물로 주워진데도, 아마도 14월이 생기길 간절히 기도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도 내년엔 julie처럼 우윳빛 선 고운 달 항아리 백자가  되고싶다


작약 Peony : 작약의 꽃말은 "수줍음"  초여름 여인네들의 마음을 흔드는 꽃이다. 목단(모란/ 함박꽃) 꽃과 아주 비슷하다. 작약이 풀에서 나는 꽃이라면 목단은 나무에서 피는 꽃이다.
목단의 꽃말은 부귀, 영화, 화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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