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ichard B Nov 07. 2024

12_또 한 번 날아보기 위하여

두 번째 항공사에서 비행을 시작했다. 또다시 날아보기 위한 투쟁을 위해

땅에 붙어사는 이들 중에는 땅만 보고 사는 사람만 있는가 하면 가보지 못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매 순간 그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고 그 동경하던 미지의 세계를 탐하기 위해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택했고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항공사에서 재도약을 시작했다.


과연 설레는 일인지 더욱 큰 부담을 날개삼아 허공에서의 헛발질을 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방법은 하나뿐. 벼랑 끝에서 몸을 던져보는 수밖에.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편이다.

가진 것이 많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것이 많았더라면 그것들을 방패 삼고 울타리 삼아 조금 더 안락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살던 곳을 쉽사리 뜨지 않았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탓에 서른 하고도 몇 살 더 먹은 지금까지 동분서주,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 방랑하는 유랑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한 때에는 이런 방랑자의 삶을 정말이지 끝내고 싶었다. 

때론 이런 삶을 끝내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목숨이라도 끊고 싶었다. 


누구나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허름하나마 '우리'라는 공동 존재의 울타리 안에서 아웅다웅하는 삶을 꿈꾸기도 했었고, 형제지간 부모지간 '가족;이라는 존재들과의 테두리 안에서 잦은 왕래, 모두 함께의 순간을 추억에 새기는 장면들도 상상으로나마 연출해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이룩하기 불가능함을 알았기에 이내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 허름하나마 나를 에워싼 울타리라던가 피와 살을 나눈 존재들과의 아웅다웅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줄이야. 


어쨌거나 이룩이 불가능함을 인지한 지 오래 인터라 언젠가부터 오롯한 나의 길을 닦고 나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며 나의 거처가 될만한 곳, 세상의 모진풍파로부터 바람막이가 되어줄 만한 곳, 스스로와 세상의 경계에서 나만의 울타리를 쳐놓고 나를 위한 어떠한 삶을 살기 위한 장(場)을 마련하기 위해 여전히 바쁜 척을 해왔다.


어떤 울타리를 어떻게 마련을 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어느 토지에 첫 삽을 떠야 조금 더 오래 안정된 울타리를 뿌리내리고 조금이나마 덜 흔들리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물음에 대한 정답이라던가 희미한 실마리는 아직 찾지 못했다.


지금 이직해 온 회사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회사인 만큼 조금 오래 붙어있어 볼까 생각도 했다가 현실의 삶에 지쳐 무미건조해져 버린 나는 그게 또 무슨 소용이야 하며 생각하는 것 조차를 거부해버리고 만다.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하게 된다면, 단지 연인이 아닌 어떠한 대상에 대한 오롯한 사랑을 다시 하게 된다면 삶에 대한 의미가 단지 생존이 아닌 누군가와 나를 위한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의 유의미함을 느끼고 더욱 가열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일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항상 벼랑 끝에 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껏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한시도 마음 편하게 하루를 보낸 적이 없는 것 같다.


잠을 잘 때에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이라던가 지나간 불안한 과거에 대한 잡념으로 깊은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룬 적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러한 습관은 서른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언젠가부터 날아보리라는 진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유명인사가 된다거나 피붙이들의 무한한 애정을 받을만한 성공한 위인이 된다는 생각들이 꿈이었다. 그러다 나를 위한 꿈을 꾸기보다는 남들을 만족시키고 그들로부터 애정과 관심이라는 갈증을 해갈하기 위한 수단으로 꿈을 꾼다는 것이 서러워 그냥 내가 날아보자라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목표로 취업준비를 시작했더랬다.


역시나 내 인생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지독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하다.

코로나가 터지고 그로 인해 반쯤 무너져있던 내 인생은 지하 밑바닥까지 내동댕이 쳐지게 됐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목표했던 승무원을 서른이 넘어 이루게 되었고 요술처럼 마법처럼 바뀔 것 같다 짐작했던 삶은 여전히 지하 밑바닥 언저리였고 좀처럼 지상으로 날아오르지 못했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비싼 생활비 때문에 일주일에 대부분의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면서 사람들과의 약속은 있지도 않은 비행 스케줄 핑계를 대며 사람들 틈에서 멀어져야 했고, 이따금 한국에 들어가 고향집에 가도 큰 환영이나 환대는 받지 못했다.


그러면서 목표를 이루었다, 내가 원하던 이상향에 접근해 간다는 희망적인 모습으로부터 다시금 멀어지게 되었고 또 그냥 한동안을 살았다. 


그러다 또 그저 그런 우스운 삶에 환멸이 나 한 번쯤 더 높이 날아보자, 멀리 뻗어보자는 생각으로 이직을 시도했고 업계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항공사로 들어왔다. 이때에도 가족이라는 존재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았다. 새 회사가 있는 홍콩으로 오기 전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가족이라는 존재들과는 영영 결별을 고하게 됐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가족 중 그 누구로부터 연락 한통을 받은 일이 없다.


항상 이렇게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지는 심정으로 세상에 몸을 던져왔고 그러다 한 번씩 얻어걸린 도움닫기로 가뭄에 싹 나듯 한 번씩 원하는 목표를 이루게 된다. 목표를 이루었다는 어떠한 성취감, 그 달콤함은 얼마 채 가지 못한다. 이래저래 쌓아놓은 것이 없는 밑바닥 인생이라 언제나부터 0, 또는 마이너스부터 시작을 해야 하기에 언제나처럼 남들보다 뒤처진 곳에서 닿지 않는 바닥을 허공 도움닫기 삼아 살아가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본다.



이번에는 제법 진지하게 재도약에 대한 의미를 다지며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를테면 요가 명상수업을 들으며 매일 지쳐있는 나의 정신세계와 마음을 조금 더 양지바른 곳으로 끌어올리기 내지는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을 만들기 같은 남들이 보았을 때 시덥잖고 어쭙잖은 것들이 목표이긴 했지만 나에게는 그 또한 재도약을 위한 디딤돌이다.


그러나 안다.

여전히 한동안은 과거의 불안함과 거칠었던 칠흑 같은 기억들에 삼켜지고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어설프고 어정쩡하게 제대로 주지도 받지도 못하고 어물쩡거리다 끝내고 말 것이라는 것을.


언젠간 마치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적어 내려 가는 한 페이지에는 둘 중하나라도 어느 정도 해냈다는 말을 담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부디.

작가의 이전글 11_먹먹함과 막막함의 기로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