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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웃기다

100일 글쓰기 36일 차

by 뵤뵤




2025년 11월 10일 월요일

날씨: 맑음

제목: 우리 엄마는 웃기다


우리 엄마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갑자기 '시간부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시간을 펑펑 써도 쫓기는 마음 없이 느긋하게 사는 부자. 하긴 엄마는 항상 바쁘니까 이해된다. 바빠서 동동거리다 자주 깜빡하고 자주 잊어버리니까. 나는 이미 적응돼서 우리 엄마는 원래 깜빡쟁이구나 하고 여길 정도니 말이다. 엄마가 깜빡했던 일은 정말이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물을 자주 마셔야 건강에 좋다고 잔소리하면서 이 삼일에 한번 꼴로 등굣길에 텀블러를 챙겨주는 걸 깜빡하고, 아빠가 출장 가는 날짜를 깜빡하고, 정수기 점검 오는 날을 깜빡하고, 샀던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깜빡해서 또 사고.


바로 어제만 해도 그렇다. 주말에 일하러 갔다가 퇴근한 아빠가 건조기 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번에 아빠가 흰색 빨래와 색깔 빨래를 구분해서 넣어야 한다고 했던 말을 엄마가 고새 까먹은 거다. 한꺼번에 많은 빨래를 돌려야 하니까 건조기가 버거웠나 보다. 결국 빨래가 다 마르는 데 5시간이나 걸렸다.


아빠의 잔소리 폭탄에 엄마는 개미 같은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한두 번이 아니라서 그런지 나는 이제 웃기다. 웃겨서 웃음이 막 나왔다. 아빠는 꾸중하는 외할머니 같았고 엄마는 혼나는 딸 같았다.


그치만 우리 엄마가 절대 까먹지 않는 게 있다. 매일 나를 꼭 끌어안고 사랑한다 말해주기. 엄마는 내가 아가일 때부터 자주 안고 자주 뽀뽀해 준다.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사랑스럽다고 해준다.


"OO는 아빠, 엄마의 뭐지?"

"보! 물!"


난 이상하게 엄마가 해주는 뽀뽀랑 포옹이 지겹지 않다. 엄마 품 속에서 나는 냄새는 매일 맡아도 질리지 않는다. 엄마는 섬유유연제 향일뿐이라고 하지만 나한텐 특별하다. 내 옷과 엄마 옷이 같은 섬유유연제를 쓴다지만 나는 엄마 옷에서 나는 냄새가 더 포근하다.


하나 더, 우리 엄마가 깜빡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나한테 미안하다 사과하기. 내가 숙제에 집중을 못 하고 딴짓을 하거나, 늦게 잘 때 엄마는 무서워진다. 우리 엄마는 원래 둥글둥글한 사람인데 잠을 잘 못 자고 스트레스받을 때는 엄청 뾰족해진다.


요즘은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를 한다는데 그래서 좀 더 자주 무서워지는 것 같다. 어느 날 이런 속마음을 솔직히 얘기했더니 엄마가 나를 꼭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해줬다. 글쓰기보다 나랑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해줬다. 그래서 퐁당퐁당 건너뛰어도 괜찮다고 했다. 나한테는 할 일 미루지 말고 꾸준히 하라고 했는데, 엄마는 어겨도 정말 괜찮은 걸까? 나야 뭐, 엄마가 화 안 내고 나랑 오래 재미나게 얘기할 수 있다면 더 좋지만.


시간부자가 되고 싶다는 엄마의 소원은 엄마만큼이나 엉뚱하다. 엄만 항상 이런 식으로 생뚱맞고 재미있는 말을 툭툭 던져서 내 배꼽을 잡게 만든다. 어떤 날은 엄마가 식욕이 가난해지고 싶다고 했다. 세상엔 맛있는 게 너무 많은데 맛있는 건 대부분 건강에 좋지 않아서 문제라고 말했다. 차라리 식욕이 사라져서 어떤 음식을 봐도 안 먹고 싶다면 좋겠단다.


엄마는 항상 딱 한 입을 남겨놓고 "아, 나 배불러. 그만 먹을래."라고 한다. 새 모이만큼 남겨놓고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아빠랑 나는 어이가 없다. 엄만 정말 웃긴 사람이 맞다.


난 엄마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먹고 싶은 걸 먹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엄마의 식욕을 돈을 받고 팔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욕이 너무 없어서 잘 못 먹는 사람들에게 엄마의 식욕을 나눠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고기, 해산물, 채소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식욕이 없던 사람이라도 우리 엄마처럼만 먹을 수 있다면 무지 건강해질 텐데.


딴 얘기지만 뉴스가 끝나고 광고로 나오던 아프리카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은 세상이 온다면 좋겠다.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하다니, 나 역시 엄마를 닮아 생뚱맞다. 인정한다.


어느 날, 엄마가 책 읽고 글 쓰는 이유 중 하나가 나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이미 모범을 보여주고 있어서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나를 바르게 키워주셨다. 둘째, 내 선택을 존중해 준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셋째, 최대한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한테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내 말을 듣고 엄마는 눈가가 빨개지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엄청 감동이라며 고마워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뿌듯하고 행복해졌다.


엄마는 자주 깜빡거려서 미안해하지만 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누가 뭐래도 나한테는 엄마가 이 세상 최고라고. 그냥 엄마가 안 힘들고 매일매일 웃었으면 좋겠다. 나랑 오래오래 건강하게 백오십 살까지 산다면 좋겠다. 이건 큰 소원이고, 작은 소원도 있다. 엄마랑 같은 침대에서 함께 꼭 붙어 자는거다. 다 컸다고 내 방에서 자라고 하시지만 내 마음은 아직 애기다. 엄마 냄새 맡으면서 잠드는 게 오늘의 소원이다.


월요일은 다른 날보다 몇 배는 더 피곤하다. 이게 어른들이 말한 월요병인가 보다. 이제 이만 쓰고 자야겠다.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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