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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뵤뵤리나 Dec 18. 2024

제주살이 부가세는 '뷰'가세

오션뷰와 마운틴뷰 프리미엄에 대하여

한강이 보이는 34층은
쓸데없이 뷰가세가 세

-사이먼 도미닉 <06076> 가사 中-


한강은 보이지 않지만 사방이 바다요,

34층 펜트하우스는 아직이지만 백록담을 딛고 선다면 해발 1,850m다.

제주살이를 포기하고 육지로 귀환하는 많은 외지인이 혀를 내두른다는 비싼 물가는

천혜의 자연에 지불하는 응당한 부가세일지도.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은 유통에 취약하다.

육지에서 공수되는 각종 공산품과 제주에서 작황이 어려운 식재료들이 선박과 항공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육로로 들어올 길이 없으니 유류비와 포장비가 덧붙여져 비용은 속절없이 오른다.

그에 비례해 제주 추가 배송비 결제를 누르는 내 한숨도 쌓일 수밖에.


명절마다 방문하는 육지 친정에서 선택 장애를 일으키는 각양각색 외식 메뉴에 한 번 놀라고, 금액 대비 푸짐한 양을 자랑하는 가성비에 두 번 놀라고.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면 한동안 애써 외면했던 고물가의 벽에 이마를 어이쿠 부딪힌다. 현실 자각 타임에 속이 쓰려온다.


제주 올레길 7코스 '범섬'


이럴 땐 겔포스보다 특효약인 해안가 올레길 7코스를 걷는다.

오션뷰잖아. 호텔 객실도 오션뷰는 추가 금액이 붙고, 같은 아파트라도 오션뷰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차면 한라산을 직접 오르지 않아도 한눈에 오롯이 담을 수 있는 고근산에 오른다.

마운틴뷰잖아. 한라산뷰는 일부러 비행기값과 숙박비를 지불하고 와야 볼 수 있는 절경이다. 체력과 의지만 있다면야 집에서 자다가 뛰쳐나와도 볼 수 있는 거리에 산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그 체력과 의지가 부족해서 정작 백록담을 밟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조금 부끄럽다.)     


고근산에서 바라본 한라산 전경



소확행의 의미를 농도 짙게 체감한다. 이제나저제나 목이 빠지라 고대했던 배송은 쿠팡 로켓을 타고 한시름 놓았고, 마켓컬리와 로켓프레쉬는 가능하긴 할까 의심했는데 올해 도입됐다. 역시나 수요자의 간절함은 공급을 부추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입도한 엄마들이 무인양품, 이케아, 코스트코가 없다, 해외 브랜드 가전제품 대리점은 제주시에 밀집돼 있는 탓에 A/S 받는데 한 세월이다 등등 불평불만을 성토대회인 양 털어놓으면 이에 질세라 속으로 아껴뒀던 그간의 설움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올여름, 엘리베이터 옆에 붙여졌던 컬리 홍보물.  두 눈을 의심했다.
라떼는 말이지요. 임신했을 때 그토록 당기던 서브웨이를 못 먹어서 서러웠어요. '미생'이라는 tvn드라마 애청자였는데, PPL이었는지 틀 때마다 서브웨이가 나오는 거예요. 맞아요. 그때 당시에 서브웨이 제주점이 없었어요.
아기 돌 때는 또 어쨌게요. 이유식을 손수 다 다져서 만들어 먹였는데 육지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이유식도 배달된다고. 우리 집까지 배달하는 곳이 없어서 그런 걸 우째요.
하루는 떡볶이가 간절했는데, 인근에 떡볶이 집이 없어서 아기 띠 맨 채로 택시 타고 가서 포장해 왔어요. 떡볶이 값보다 택시비가 더 나왔답니다.

흐흐흑, 지금 흘리는 거 눈물이냐고요? 그러게요. 왜 눈물이 나올까요.


고작 제주에 몇 년 더 일찍 살았다고 유세 떠는 거 같아 속으로만 시끄럽게 떠드는 나지만, 근래 서귀포의 변화는 상전벽해 급이 아닐 수 없다.

서브웨이가 1개도 아니고 2호점이 문을 열고 모던하우스도 생겼으니 말이다. 게다가 코스트코 개점도 2026년 확정이라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완공된 마트에 발을 디뎌야만 실감이 날까.


프랜차이즈가 하나씩 생길 때마다 앞으로 더해질 일상의 윤택함에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너도 나도 오픈 소식을 알리는 현수막을 찍어 맘 카페에 올리고서 들썩이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귀여운 연대감마저 느껴진다. 육지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면 '이제야'라는 시큰둥한 반응이지만 말이다.

본디 늘 곁에 두고는 소중함을 모르지만, 불편을 겪어봐야 감사함을 깨닫는다.





새로운 환경과 문화 속에 적응하다 보니 자각하지 못하던 제 이면과 편견을 마주한 시간이었어요.
인식과 내면이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제주살이 워킹맘 멘탈 사수 생존기』매거진에서 발행한 '요망진 육지 것'이 되어보았습니다 라는 글에 위와 같은 답글을 남겼더랬다.


고상하게 '이면과 편견을 마주한 시간'이라 썼지만, 실상은 속이 문드러져 가던 시간이었다.

고통의 시간이 '자아 인식과 내면'이 성장하는 시간으로 승화하기까지, 자연이 준 기운이 컸다고 말하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심각한 고민을 '그까짓 것 별거 아냐. 그냥 단순하게 여기렴.' 군말 없이 넉넉한 품으로 고민의 무게를 덜어준 광활한 한라산과 제주 바다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외골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친 마음에 제주 자연이 처방 약을 바르고 나면 타향살이의 외로움도, 괴로움도 희석되었다.

고교 시절, 수능 빈출 문제라 영혼 없이 달달 외우기만 했던 송강 정철님의 <관동별곡> 속 유유자적(편안하고 여유롭게 삶을 즐기는 상태)과 안분지족(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의 메시지가 내 가슴을 관통한다.


그러므로 제주의 자연에게 이제 와 낯간지럽게 고백해 본다.

고마워. 사랑해.



하트 모양 구름에 내 사랑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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