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 입사해서 내가 몸 담은 조직은 회사의 문학 브랜드를 마케팅하는 '문학 마케팅팀'이었다.
한 달에 적게는 대여섯 권에서 많게는 열 권 이상 쏟아져 나오는 신간을 팀장 1명, 팀원 2명이 담당했다.
이미 느낌이 왔겠지만, 적은 인원에 많은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전에 일했던 직장에서도 충분히 겪어서 나름 악명 높은 (입사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에서의 1년은 다른 곳에서 3년 경력으로 쳐준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는 곳이었...) 회사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큰 타격이 없었다.
아무튼 이곳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담당 책들의 마케팅 및 홍보, 두 번째는 신규 기획 및 저자 관리였다.
새로운 책을 기획하는 일이나 저자 관리는 보통 편집자가 하는 경우가 많다. 마케터에게 신규 기획 업무까지 주어지는 곳은 별로 없다고 알고 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업무 간 경계를 허무는 것을 지향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독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마케터들만이 할 수 있는 기획이 있다고 믿었다. 기획 업무를 하고 싶었던 내게는 기회 요소라고 느껴졌다.
대형 출판사에서 오랜 시간 일하다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곳으로 온 팀장님은 한눈에 봐도 베테랑이었다. 그분이 일을 잘한다는 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파주에 날아오는 뜨내기 철새들도 알았다. 그녀는 거의 모든 업무 프로세스에 있어서 내게 좋은 스승이자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물론 모든 직장 생활이 그런 것처럼... 이런저런 부정적인 경험들도 있었지만, 일만 봤을 때는 원 없이 즐겼던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신나게 하면서 궁금했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는 '예전에 내가 투고했던 기획서와 원고들은 누가 어떻게 검토하나?' 하는 것.
우리 회사에서는 내가 했다.
SNS 계정 관리를 담당했기 때문에 우리 브랜드의 메일로 들어오는 투고는 보통 내가 가장 먼저 봤다.
나는 매일 같이 도착하는 수많은 투고 메일들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아... 그래서 그때 그 기획서가 까였구나.
이런 식으로 투고 메일을 보내면 읽을 마음이 싹 사라지네.
혹은
와 이건 좀 괜찮아 보이는데, 팀장님께 보고해볼까?
요즘엔 글 잘 쓰고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정말 많다.
등등
더불어 함께 일하던 능력 있는 편집자들과 우리 팀장님의 신규 도서 기획안을 보면서 '잘 쓴 기획서'가 어떤 것인지 빠르게 배워갔다. 그렇게 나는 어엿한 파주의 출판 노동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에서는 이런 외침이 들려왔다.
"내 거 쓰고 싶다."
"내 거 기획하고 싶다."
"내 책 팔고 싶다."
그렇다. 한 번 자유를 맛본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브랜드 포스트에 영혼을 갈아 글을 쓰면서,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아이템을 고민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내 생각을 했다. 내 거. 내 거. 내 거. 내 거. 나도 내 거.
으휴, 그러니 어쩌겠나.
퇴사해야지.
밖으로 나와서 내 일 해야지.
누구 말처럼 나는 회사 체질이 아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퇴사하는 날, 동료들의 진심이 담긴 롤링페이퍼를 받았다.
그곳엔 내가 지금까지 들은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 적혀있었다.
“제 친구 중에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누구냐면,
적극적으로 자기 행복을 찾아가는 애예요. 지금 라오스에서 커피숍을 하고 있죠…
별 씨를 보면서 그 친구 같은 기상을 느꼈어요.
어디를 가든 잘 지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 거기가 어디든 좋아서 거기 있을 것 같은 느낌.
언젠가 어디서 김별 이름을 발견하면 인사할게요.
잘 지내요, 안녕.”
지금도 길을 잃은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이 글을 꺼내어 다시 읽는다.
적극적으로 내 행복을 찾자.
어디든 내가 좋아하는 곳에 있자.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