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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시 Sep 22. 2016

이 해병대 사내는 어쩌다 ‘생리대’ 만들 생각을 했을까

저소득층 청소년 위한 1+1 생리대 사업을 진행 중인 업드림코리아 이지웅 대표 인터뷰


창피한 게 죽기보다 더 싫었던 열 네 살, 우리 반에는 정혜(가명)라는 아이가 있었다. 평소에는 그 누구도 정혜에게 말을 걸거나 그 애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정혜가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시기가 있었다. 정혜의 생리를 반 아이들 모두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매달 ‘그날’이 되면 정혜의 교복 치마엔 생리혈이 묻어 있었다. 진한 피 냄새도 풍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정혜는 생리대를 착용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던 것이다. 가난한 편부 가장 아래 자란 정혜에게 누구도 생리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생리대를 사 달라고 할 형편도 아니었다. 그 애 주변엔 도움을 줄 만한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흐른 지금, 이 땅에 ‘정혜’같은 사연을 가진 아이들은 자취를 감췄을까.



지난 5월 국내 생리대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유한킴벌리가 가격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여론은 삽시간에 들끓었다.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과 휴지를 사용한다는 사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여성들은 그간 아무에게도 말 하지 못했던 청소년기의 아픈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깔창 생리대’로 상징되는 오늘날의 ‘정혜’들이 모처럼 사회의 관심을 받았다. 


소셜벤처 '업드림코리아' 이지웅(28) 대표

이 때 페이스북에 혜성처럼 나타난 사나이. 그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마음 놓고 쓸 수 있게 가격이 저렴하고 질 좋은 생리대를 직접 만들겠다고 했다. 윈드서핑 선수, 해병대 ROTC(학생군사교육단) 장교 출신인 이지웅(28) ‘업드림코리아’ 대표가 그 주인공. 삶의 궤적으로 미뤄보아 생리대를 구경해 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이 건장한 청년이 ‘금남의 제품’을 만들어보겠다고 한 이유가 뭘까. 



생리대가 가장 힘들다니…


“작년에 봉사모임을 하다가 우연찮게 취약계층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제일 힘든게 뭐냐고 물었더니 학업도, 돈 문제도 아닌 생리대를 꼽는 거에요. 저는 그때만 해도 생리가 한번 ‘빵’하면 끝나는 건줄 알았거든요. 제 주변 남자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을 거에요. 근데 얘기를 들어보니 생리대가 많이 필요한데다 가격도 비싸더라고요. 생리대는 생필품인데 이 아이들은 쉽게 살 수 없다는게 문제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우리나라 가임여성(15~49세) 인구는 초경을 경험하는 11~14세 청소년을 포함해 1,300만 여 명. 이 여성들이 하루에 6장씩 6일 간 생리대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시중에 판매되는 36개입 중형 생리대 평균 가격인 9,424원을 매달 지출해야 한다. 


매달 만 원의 고정 지출은 누군가에겐 푼돈일지 모르지만 저소득층 청소년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다. 2015년 기준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여자 청소년(12~19세)은 15만 8,355명. 가난하다고 해서 생리 현상이 이들만 피해갈리 만무한데, 기초생활보호자 지원 물품에 생리대는 빠져 있다. 그래서 이들 15만 청소년들에게 생리는 불편함을 넘어 두려움의 대상인 셈이다. 


이 대표는 이 ‘두려움’에 깊이 공감했고, 그래서 저렴한 생리대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한국의 생리대 제조 공장. 그러나 이들이 요구하는 생산 원가가 높았고, 이 대표가 염두에 둔 수준의 저렴한 가격을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 그렇게 이 대표의 도전이 허무하게 끝나나 싶던 때 ‘깔창 생리대’ 기사가 터졌다. 



아무도 안 하니까 내가 한다


“올 초에 ‘깔창 생리대’가 논란이 됐었잖아요. 기사를 보는데 사람들이 댓글로 싸우고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어른들이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키보드 두드리며 싸울 줄만 알지 어느 누구도 해결하려고 하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하자. 다시 한번 해보자.’ 결심했죠.”


깔창 생리대 파문 후 서울시와 성남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실제 서울시는 지난 6월부터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청소년들에게 생리대 지원 신청을 받았다. 그런데 이를 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힘겨루기를 벌였다. 


서울시를 포함, 지자체가 하려는 사업은 복지부의 승인이 필요한데, 복지부는 이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달 30억원 규모의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 사업에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한 정부가 사업 중복을 이유로 지자체에 브레이크를 건 것. 서울시는 배송 문의전화가 폭주한다며 생리대 배송을 강행한 반면 다른 지자체들은 사업을 잠정 중단시킨 상태다. 



이와 동시에 지자체의 생리대 지원 사업에 대한 찬반 논쟁이 가열됐다. ‘하루빨리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업을 해야한다’는 찬성론과 ‘복지 포퓰리즘의 하나일 뿐’이라는 반대론이 맞붙었다. 어른들이 이렇게 지리멸렬한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이 땅의 수많은 ‘정혜’들은 여전히 생리 날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었다.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생리대 지원 사업을 해야겠다 마음 먹은 이 대표는 사업구조 재편을 시작했다. 본인이 운영하던 ‘업드림코리아’라는 봉사단체와 캄보디아 아이들을 돕는 소셜벤처 ‘딜럽’을 합해 이달 법인 '업드림코리아’를 만들었다.


캄보디아 아이들의 그림으로 옷 만드는 소셜벤처 '딜럽'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기사 클릭


“딜럽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중국 무역회사 본부장님이 계세요. 그 분에게 우연히 중국 공장에 대한 얘기를 들었어요. 알아보니 미국에 수출할 정도의 품질을 갖춘 제조공장이 중국에도 많더라고요. 단가를 맞출 수 있겠다 싶어 미국 식약청(FDA) 승인을 받은 공장을 선택해 사업을 진행 중이에요.” 


이 대표의 첫 구상은 저가형 생리대를 만들어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형태였다. 원가 50원 짜리 시제품이 나온 날 그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사업을 소개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게시글은 생각지 못하게 큰 화제가 됐고, ‘좋아요’ 5만 1,000개∙공유 5,000건∙댓글 4,700여 개를 받으며 사업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지웅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글 전문 (자료: 페이스북 Jiwoong Lee)


“글을 올려놓고 여자친구랑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친구신청이 엄청나게 들어와있더라고요. 처음엔 휴대폰이 고장난 줄 알았어요(웃음). 제 글이 화제가 돼서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 ‘(저소득층이 아닌) 우리도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사실 저가형 제품을 돈을 받고 팔 수는 없거든요. 소비자는 눈높이가 훨씬 높으니까. 그렇다면 좋은 생리대를 유료로 팔되,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취약계층에게 되돌려주는 형태로 바꾸는 게 낫겠다 싶었죠.” 


이 대표가 염두에 두고 있는 비즈니스 구조는 ‘1+1’. 소비자가 두 개를 사면 그 중 하나는 저소득층에게 무상으로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달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을 만큼 품질력을 갖춘 2차 시제품을 내놨다. SNS 댓글 공모를 통해 생리대 이름도 ‘산들산들’로 정해놨다. 올 11월 중에 완성된 제품을 내놔 크라우드 펀딩 및 주문자 모집을 진행, 내년 초엔 ‘산들산들’을 소비자와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배송한다는 계획이다. 


“중형 생리대 뿐 아니라 오버나이트, 팬티라이너와 탐폰 등도 시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보통 무료로 보급되는 생리대는 중형이 대부분이거든요. 공짜로 받는 거니까 중형 생리대만 쓸 수 있다는 건 잘못됐다고 봐요. 가난이 아이들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언제든 자신에게 필요한 제품을 편하게 쓸 수 있게 다양한 제품군을 만드는 게 목표에요.”



남들이 안할 때 하는 게 용기다


모두가 ‘깔창 생리대’에 분노하지만 이 대표처럼 곧장 행동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 그에게 원래 용감하고 도전적인 성격인지 물었다. 자신은 예전엔 ’졸보’ 같은 성격이었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요즘 가끔 강연을 나가는데 꼭 그런 얘기를 해줘요. ‘용기는 겁나지 않는게 아니라 겁이 나도 하는 것’이라고. 막상 여행도 가기 전엔 겁나는데 가보면 별게 아니잖아요. 저도 겁은 나죠. 그런데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하는 것, 그게 용기가 아닐까요?” / 김현주 기자 joo@bzup.kr



소셜벤처 '딜럽'과 이지웅 대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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