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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시 Oct 17. 2016

암 극복해 얻은 새 삶…서울대∙회계사 스펙 떼고 창업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비플러스’(BPLUS) 박기범 대표 인터뷰

서울대 출신에 국내 1위 회계법인 회계사. 통장에는 매달 넉넉하게 먹고살 만한 돈이 들어왔고,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100일이 갓 지난 첫 아들이 있었다. 이처럼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던 남자에게 어느 날 불운이 찾아왔다. 젊은 나이엔 흔치 않게 설암(舌癌) 판정을 갑작스레 받은 것. 그러나 남자는 좌절하지 않고 그 불운을 발판 삼아 ‘새로운 가치’에 눈을 떴다.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비플러스’(BPLUS)의 박기범(38∙사진) 대표의 이야기다.


박기범 '비플러스' 대표


“처음엔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억울함, 인생에 대해 아쉬움이 컸어요. 내 나이가 이제 겨우 서른셋인데 왜 이런 병이 생겼나 싶었고. 마냥 두려웠죠.”


박 대표가 설암 판정을 받은 것은 회계법인에서 5년차 회계사로 일하던 지난 2011년 여름. 당시 시중 은행을 대상으로 회계 자문일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시작된 입안 통증을 단순한 혓바늘로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우연히 찾은 이비인후과. 그러나 그곳에서 박 대표는 ‘설암 2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판정을 받았다. 당장 수술을 해야만 한다는 의사의 말은 “사형선고처럼 들렸다”고 한다.


“바로 업무를 다 중단하고 휴직계를 쓴 뒤 수술부터 받았어요. 수술이 끝난 뒤엔 몇 달 동안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설암이 전이도 빠르고 수술이 잘 되더라도 말을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살려달라는 기도만 했어요. 이제 막 100일 된 아이도 있는데 살려만 주면 지금보다 더 의미 있게 살아가겠다고 기도했죠.”



박 대표는 암세포가 있는 혀 일부를 잘라낸 뒤 팔 피부를 이식해 재건하는 수술을 받았다. 치료 초기엔 “예후가 좋지 않다”는 말도 나왔지만 다행히도 수술과 재활 모두 잘 진행됐다. 예전처럼 아주 자연스럽진 못하지만 말도 하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일 년간의 회복기를 거친 박 대표는 그러나 회계사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진 않았다. 기도한 대로 두 번째 삶을 얻었으니 ‘더 의미 있게 살아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나 자신뿐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다.


“제가 성인군자나 위인은 아니지만 (수술에서 회복한 뒤) 나름의 사명감을 느끼게 됐어요. ‘세컨드 라이프’가 주어졌으니 무엇을 해야 사회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게 됐죠. 나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이 맞닿을 수 있는, 그런 지점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내 행동으로 사회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고 싶었다는 박 대표. 고민을 거듭하던 중 회계법인에 근무하며 우연히 알게 된 ‘마이크로크레딧’(micro credit·무담보 소액신용대출) 운동이 떠올랐다. 


“당시 제 업무가 주로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관련된 글을 많이 읽어봤어요. 그러면서 ‘그라민은행’ 같은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알게 됐죠. 자본에 사회적 의미를 담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란 판단이 들었어요.”


‘그라민은행’ 프로젝트의 창시자 경제학자 무함마드 유누스와 인도 북말라바에 위치한 그라민은행의 모습.


1976년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된 ‘그라민은행’ 프로젝트는 경제학자 무함마드 유누스가 시작한 무담보 소액대출 사업이다. 유누스는 당시 기존의 제도권 금융기관과는 거래가 어려운 시골 빈민들에게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는데, 사업 3년만에 500여 가구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고 98%라는 높은 회수율을 달성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이후 그라민은행은 ‘착한 자본주의’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유누스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박 대표는 그라민은행과 같은 ‘사회적 경제’가 금융의 미래라 될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행위를 ‘사회적 경제’(또는 ‘사회적 금융’)라고 부르는데, 이것이야말로 자본과 사회의 상생을 위한 최적의 대안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계사로서의 경력도 살릴 수 있는 일이니 ‘두 번째 삶’을 살아가는 소재로 삼기에도 적합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곳들, 예를 들어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를 위한 금융을 만들겠다고 결심했어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제도권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고,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지도 못하는 업체에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아주 싼 금리로 대출해주는 거죠. 업체는 급한 불을 끌 수 있고 투자자는 이자와 더불어 좋은 곳에 투자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죠.” 


창업 아이디어를 얻은 뒤엔 사회적 금융을 연구하는 ‘한국사회투자’에 들어갔다. 직접 사회적 기업∙소셜벤처를 심사하면서 사회적 경제와 관련 생태계를 공부하기 위해서다. 3년 가까이 실무 경험을 쌓은 박 대표는 올해 3월 본격적인 창업에 돌입했고, 그 결과 소셜벤처∙사회적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비플러스’(BPLUS)가 탄생할 수 있었다.


(소셜벤처∙사회적기업만을 위한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비플러스’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 기사에서 더 자세히 들려드립니다.)


설암 수술을 받은 지 올해로 5년차. 보통 5년 이상이 지나면 재발이 드물기 때문에 완치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철저한 휴식과 건강관리가 필요한 시기다. 그러나 박 대표는 “쉬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창업에 뛰어든 제2의 인생을 제대로 꾸려가려면 직접 몸으로 뛰어야 할 일이 산더미기 때문이다.


“회계법인에 있을 때는 제 ‘스펙’에 취해있었던 것 같아요. 어딜 가든 대접받고 누구든 흔쾌히 절 만나줬죠. 그런데 지금은 맨땅에 부딪히는 것 같아요. 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막상 ‘필드’에 나와보니 힘든 일이 정말 많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틀’ 다 떼고 실력으로만 승부하고 싶다는 박 대표. 그래서 그의 명함엔 ‘회계사’란 문구도 적혀있지 않다.


“결과적으론 스펙과 지위에 기대지 않고 실력으로 가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지금은 타이틀 다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도전하고 있어요. 정말 힘들 땐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결국 저는 ‘비플러스’의 운영자일 뿐이잖아요. 지금의 제 정체성에 집중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길을 찾고 싶어요.” 


기사∙인포그래픽=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 

사진∙영상 촬영 및 편집= 비즈업 백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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