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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시 Nov 30. 2018

스티브J&요니P의 인생에 찌들지 않고 꿈을 이루는 법


패션 브랜드 ‘SJYP’로 세계 진출한 ‘스티브J&요니P’의 성취방법론



런던 유학생 시절 의류 브랜드 ‘스티브J&요니P’ 론칭. 영국 패션위크 데뷔. 한국인 최초로 영국 SPA 브랜드 탑샵(Topshop)과 협업. 셀프리지, 콜레트 등 런던·파리 유명 백화점을 포함해 13개국 진출. 2016년 매출액 240여 억원. 자타공인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10여년만에 일궈 낸, 누가 봐도 화려한 성공이다. 서울 신사동 SJYP 매장에서 만난 정혁서(스티브J·만 41세)와 배승연(요니P·만 40세) 디자이너의 첫인상 역시 강렬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과 탈색한 머리, 진한 아이라인은 이들의 성공 기저에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화려한 성공에는 반드시 대단한 희생과 재능, 거창한 신념이 따라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환상 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담담하게 입을 모은다. “인생에 거창할 것도, 드라마틱할 것도 없었다”고. 그저 “옷이 좋아 디자이너가 됐고, 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냥’ 꾸준히 한 것”뿐이라고. 거창한 마음가짐 없이도 소소한 도전과 성취를 반복하는 것. 성공의 진리란 본래 이토록 시시한 것일지도 모른다.

▼ 스티브J&요니P가 말하는 ‘찌들지 않고 철드는 법’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SJYP의 19SS 컬렉션 쇼 현장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매일 옷 골라 놓고 잠들던 여자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던 남자,
‘꿈’으로 똘똘 뭉치다


‘스티브J’와 ‘요니P’의 디자이너 인생을 논하자면 둘의 만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한성대 패션디자인과의 소문난 캠퍼스 커플이었다. 배승연 씨는 학창시절부터 ‘옷 덕후’로 유명해 망설임 없이 패션학부에 진학했다. 원래 미술을 하고 싶었다던 정혁서 씨는 비보이 댄서, 스케이트 보더 등 다양한 꿈을 쫓다 돌고 돌아 패션 디자인에 정착했다. 개성이 강한 두 사람에게는 딱 한 가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옷 입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다음 날 입을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펼쳐 놓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어요. 대학생 때도 튀는 옷을 많이 입고 다녔죠. 오죽하면 스티브 씨가 창피하니까 다음날 뭘 입을지 미리 알려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거한(?) 옷 입을 땐 엄마 차라도 가지고 나오겠다고요.(웃음)” (배승연)

“어우, 장난 아니었어요.(웃음) 요니P만큼 디자이너가 천직인 사람이 없어요. 전 그냥 멋있고 재밌어 보이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혼자 화구통 메고 그림 그리러 다니고, 비보잉도 하고. 그러다 패션 디자인을 하게 됐거든요. 전 지금도 이렇게 얘기해요. ‘야, 이거는 종합예술이다.’ 패션쇼를 하다보면 옷은 물론이고 음악도, 무대예술도 중요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들어가 있으니까 하고 싶더라고요. 파고 들게 되고요.” (정혁서)


“20년 동안 둘 다 성격이 거의 안 변했어요. 요니 씨는 지금도 대장부처럼 잘하는 스타일이고, 저는 옆에서 잘 받들어서.(웃음)” (정혁서)


막연히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던 각자의 꿈은 두 사람이 만나면서 하나의 확실한 목표로 자리 잡았다.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 디자이너로 성공하는 것.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배 씨와 정 씨는 부부로서, 동업자로서 이 꿈을 잃지 않고 있다.


“하도 오래 만나다보니 사람들이 종종 놀라워 해요. 저희는 이렇게 오래된 줄 몰랐어요. ‘사랑사랑’하는 느낌보다는 동지애가 강했거든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같이 달려나가다 보니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배승연)



도전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함께해서 더 파릇파릇했던 캠퍼스 생활이 끝나고, 현실과 맞닥뜨려야 할 20대 중반. 두 사람에게도 갈림길이 찾아왔다. 학교를 먼저 졸업하고 대기업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순탄히 취직한 배 씨와 달리, 군대 때문에 뒤늦게 취업전선에 뛰어든 정 씨에겐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쳤다. 


“당시 패션 콘테스트에 열심히 참가했었어요. 결과도 좋아 부상으로 대기업에 취업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인사과에서 전화가 왔어요. ‘적록 색약이 있으니 안될 것 같다’고요. 모든 걸 다 잃은 기분이었죠. ‘국내에서는 디자이너 되기 쉽지 않겠구나’ 싶어 부랴부랴 준비해서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때는 보이는 게 옷 밖에 없었거든요. 다른 선택지는 생각도 안 해봤죠.” (정혁서)


지난 10월 18일 서울 남산에서 열린 스티브J&요니P의 SJYP 19 S/S 컬렉션 패션쇼 현장


색을 다루는 디자이너로서 치명적일 수 있는 색약 판정, 이로 인한 취업 좌절. 정 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유학 정보도 변변치 않던 시절, 그는 ‘가면 잘 될거야’하는 막연한 희망만 가지고 런던으로 떠났다. 배 씨 역시 남자친구의 소식을 듣고는 ‘내 브랜드 론칭’이라는 꿈을 잡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함께 유학길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내가 도전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결단력 있게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고요. 실패하더라도 도전 자체가 가치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결과적으론 스티브 씨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세계적 권위의 영국 디자인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 했어요. 그때 들었던 평가가 ‘색감이 좋은 디자이너’였고요.” (배승연)

▼ 도전 끝에 꿈을 평생 직업으로 만든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일에 찌들지 않고 성취하는 법

우여곡절 끝에 런던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두 사람은 2007년 자신들의 영어 이름을 딴 브랜드 'SteveJ & YoniP'를 론칭했다. 시작은 순탄했다. 독특하고 실험적인 의상으로 런던 패션위크에 데뷔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것이다. 영국 언론은 창의적인 한국인 디자이너 커플의 탄생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잠시. 이들은 곧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정작 옷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브랜드를 접을 생각까지 했어요. 독특한 콘셉트 위주로 보여주기식 패션쇼를 하다보니까 판매가 안 됐거든요. 쇼에서 우리의 창의력을 보여줘야겠다고 전전긍긍 하면서 돈을 쓰는데 수입은 없는 거죠. 재정적으로 힘들어지면서 점점 느낀 게, 옷이란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이 입는 것도 중요하다. 옷이랑 같이 나이 먹으면서 철이 든 것 같아요.” (배승연)

단순히 디자인만 고집하던 옷에서 사람들이 입고 싶어하는 옷으로. 거칠고 서툴었던 ‘스티브J&요니P’의브랜드 콘셉트가 점점 무르익어가면서 사업도 탄력을 받았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의류 편집숍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생산·판매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진정한 비즈니스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쇼의 주제는 COLOUR POP이에요. 스타일 자체는 현대적이지만 돋보이는 색상들을 사용했어요. 눈이 즐거우면서 기분 좋은 컬렉션이 될 거예요.” (배승연)


하지만 두 사람은 말한다. 지금의 ‘스티브J&요니P’를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은 사업 감각이 아닌 디자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즉 ‘찌들지 말자’는 마음가짐이었다고.


“’옷을 만들다가 옷에 찌든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주위 디자이너들 보면 판매, 유통 등 너무 많은 걸 생각해야 하다 보니까 찌드는 느낌이 있어요. 저희도 스스로 그게 느껴지는 순간 싫더라고요. 옷이 즐겁고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너무 잘하려고만 하다보면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까.” (정혁서)

“패션쇼도 그렇고, 디자인도 그렇고 항상 사람들의 판단을 받잖아요. 물론 중요한 피드백이지만 거기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 이 일을 오래 못하겠더라고요. 평생 해야 할 일인데. 그래서 안 좋은 얘기를 들으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려는 편이에요. 옷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편해지고 성숙해졌죠.” (배승연)


인생엔 특별한 것도, 낙담할 것도 없다


두 사람이 체감하는 ‘스티브J&요니P’의 성장 곡선은 자잘하지만 꾸준한 계단형이다. 드라마틱한 순간은 없었다. 그저 옷을 직접 짊어지고 해외 수주 박람회를 다니며 조금씩 꾸준히 바이어와 구매대행사를 늘렸다. 영국과 프랑스, 한국의 주요 백화점에도 하나씩 문을 두드리며 브랜드 파워를 키워나갔다. 


“정말 소소했어요. 둘이서 ‘이번에는 1억 원어치 수주를 받아오자’ 같은 허황된 얘기를 나누면서 해외 박람회 나가고. 되지도 않을 일이었는데 사흘째 되면 풀 죽어 있고.(웃음)” (정혁서)

구체적인 꿈을 꾸면서 작게 한 계단씩 쌓아 올렸죠. 런던에서 탑샵 지나면서 ‘여기를 뚫자’, 셀프리지 백화점 앞에 서서 ‘우리 옷 행거 하나에 걸자’ 그런 게 꿈이었거든요. 셀프리지 백화점을 뚫은 건 2년 정도 됐는데요. 1층 큰 윈도우에 SJYP라는 이름으로 옷이 걸렸을 때 정말 기쁘더라고요.” (배승연)


“저희 아이디어의 근원은 ‘대화’같아요. 대화 속에서 다음 컬렉션 주제가 나올 때도 있고, 사업 방향이 나올 수도 있죠. 그게 저희의 성장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배승연)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사업가로서 이룬 많은 성취 가운데 이들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경제적 보상이나 명예, 보람 같은 거창한 말 대신 ‘지금 살아남아 있는 것’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계속 해오던 일이라서. 거창한 건 잘 모르겠고요.(웃음) 가장 성취감을 느끼는 부분은 브랜드가 아직까지는 매년 성장을 해왔다는 거예요. 다루는 카테고리가 넓어진다든지, 직원이 한두명 많아지는 것들이 다 성장이잖아요. 작은 성장을 이어왔고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 ‘아직 우리 브랜드 죽진 않았지?’ 이런 대화를 서로 많이 해요.(웃음)” (정혁서)

“패션쇼가 끝나면 사람들이 거창한 걸 했다고 생각하고 저희도 그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집에 가면 ‘라면이나 먹고 자자’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웃음)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럼에도 결국 우리의 삶은 계속되는 거고, 인생에 굉장히 특별한 것도 없지만 굉장히 낙담할 것도 없다는 거죠. 늘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배승연)


글·인포그래픽= 아홉시 김현주 기자 joo@bzup.kr
사진·영상 촬영/편집= 아홉시 김경범 PD
사진·영상 촬영= 아홉시 백상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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