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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시 May 31. 2016

서울에서 사람냄새 가장 진한 동네, 익선동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골목. ‘여기가 2016년의 서울이 맞나’ 눈 비벼보게 되는 동네. 그런데 그 번잡하기로 유명한 종로 3가역에서 3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 바로 서울 익선동 한옥마을이다. 재개발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서울 한복판에 어떻게 이런 ‘사람냄새’ 진한 동네가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최초 부동산 개발업자의 첫 작품 익선동 한옥마을


서울의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 하면 북촌을 흔히들 떠올린다. 많은 이들이 ‘조선시대’의 정서를 연상하지만 사실 북촌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생겨난 고급 한옥지구다. 당시 서울에 새롭게 터를 마련한 영호남 출신 대부호들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 ‘정세권’이 조성한 ‘두번째’ 작품이다.


북촌마을을 짓기 전 그는 ‘첫’ 사업으로 서민들을 위한 소규모 도시형 주택단지를 택했다. 그때 만들어진 한옥마을이 바로 ‘익선동’이다. 북촌과 익선동은 부유층을 겨냥한 60–70평대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무주택 서민을 위한 30평대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20세기 초 버전’인 셈이다.



폭증하기 시작한 인구 때문에 당시 경성(서울)은 심각한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돈 좀 있다는 조선인들은 너도나도 소규모 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다. 정세권이 이들과 달랐던 건 한 가지. 전통 한옥을 20세기 생활양식에 맞게 개량한 이른바 ‘퓨전한옥’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정씨의 철학이 반영된 익선동엔 10평형~30평형대의 다닥다닥 붙은 작은 한옥들이 다양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ㅡ’자 한옥 외에도 'ㄷ’자, ‘ㅁ’자 구조에 유리문을 단 대청을 갖췄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게도 전기와 수도까지 들어왔다.



‘재개발 바람’ 익선동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지난 2004년 서울시는 익선동 일대 3만 1,125m²(9,400여평)를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했다.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권고한 사항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니 전통미를 살린 호텔 디자인에 신경 써달라’는 것 정도였다. 주민들은 80년 묵은 한옥을 허물고 14층짜리 오피스텔과 관광호텔, 아파트, 상가 등을 짓기로 했다.


익선지구 재개발 계획 조감도(서울시)


불행인지 다행인지 재개발 사업 추진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익선동이 위치한 종로 일대는 한옥과 종묘 등의 문화재 보호를 위해 엄격한 개발제한 규제를 받는다. 익선동 역시 바로 인근에 있는 종묘를 보존하기 위해 다른 상업 지역에 비해 재개발 제한이 컸다. 이를 둘러싼 갈등으로 재개발 조합설립추진위원회 활동은 지지부진했고, 여기에 난개발을 우려한 문화재청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며 지리한 공방이 10년 간 이어졌다.


결국 지난 2014년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자격을 반납하면서 익선동 재개발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지난 5월엔 서울시가 ‘2025 도시환경정비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익선동을 재개발 예정 구역에서 해제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서울시 역사도심재생과 김용민 팀장은 “재개발 구역 해제 후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라며 “익선동에 지구단위계획이 고시되면 계획에 적합한 건축물만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 잊은 익선동, 트렌드의 중심이 되다


재개발을 둘러싼 물고 물리는 공방전은 결과적으로 익선동의 옛 모습을 화석처럼 박제해 놓는 데 도움이 됐다.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익선동은 ‘재개발 예정 구역’이었고, 어차피 허물어버릴 집이니 한옥 주인들은 집 개조나 수리에 돈을 쓰지 않으려 했다. 개발 계획이 무산된 이후 익선동에 남은 건 낡고 허물어진 90년된 한옥 뿐이었다.

 

그렇게 묵은 먼지만 쌓여가던 익선동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건 2014년. 재개발 무산으로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던 동네 분위기에 홀려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흘러 들어온 것이다.


“종로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익선동 골목을 발견했어요. 고향 같은 포근함에 위로를 많이 얻었고 여기서 장사하며 살아보자 마음 먹었죠.” 시골에 있는 가겟방을 그대로 재현한 익선동 ‘거북이슈퍼’ 사장 박지호(29) 씨의 말이다. 이밖에도 익선동은 동네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갤러리, 게스트하우스, 경양식 집 등이 줄지어 들어서는 등 서울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익선동 '거북이슈퍼'의 분위기가 궁금하다면


익선동을 찾는 방문객도 점점 늘고있는 추세다. 익선동에서 만난 한국생활 7년차 폴란드인 마테우스(30) 씨는 “서울이 굉장히 현대적인 도시인데 이곳에 오면 평화로운 옛날 분위기가 나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익선동에 다시 활력이 생긴 지 1년 남짓, 익선동은 서울에서 사람냄새 가장 진한 동네가 됐다.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익선동에도 상업화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재 익선동 골목에는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 중인 한옥만 다섯 채가 넘는다. 최근 들어 시세도 계속 오르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한옥의 위치, 수리 여부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땅값이 오른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행스러운 건 아직까지 익선동에 새로 둥지를 트려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불문율’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점. 익선동에서 두 번째 한옥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 중인 건축사무소 ‘데씨’의 김민진(31) 팀장은 “익선동은 한옥마을이라는 정체성이 커서 그 부분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된다”며 “가게 자체의 분위기도 특색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익선동에 점포를 여는 상인들 스스로 ‘익선동의 원래 모습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공유하고 있다는 소리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법


있는 그대로의 익선동을 지키려는 자구적 노력과 정책이 뒷받침 되고 있긴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자본이 잠식해 들어가는 골목에 원주민들이 떠나면, 그 자리에 남는 건 ‘그저 그런’ 번화가 뿐임을 홍대와 이태원 등이 앞서 보여줬다. 익선동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이미 익선동은 상업화가 시작됐고 앞으로 서울시가 어떤 보존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익선동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며 “상인과 거주민이 공존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이해조정자’로 나서 영업 시간과 데시벨 허용 기준, 음식점 방역 관리 등에 관한 룰을 정하는 등 거주민의 삶을 보호해 줄 안전장치를 제공해야 익선동 보존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김현주 기자 joo@bzu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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