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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시 Jun 21. 2016

한국말에 서툰 그가 한국 창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이민자 가정 출신의 엄친아는 왜 주식을 놓고 박스를 들었나

“’마이박스’는 내…집…같은 서비스를 제…제공…하아 어렵네요.” 


자기 회사 소개부터 버벅댄다. 애드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대본 작성에 들어갔지만 이를 읽는 것마저 쉽지 않다. 이렇게 한국말이 서툴러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싶은데, 그 역시 ‘언어’가 가장 큰 장벽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온디맨드(On-Demand)’ 방식의 물류 보관 서비스 업체 ‘마이박스’의 최성욱(38·사진) 대표. 미국 이민자 가정 출신인 그에게 한국 창업 시장으로의 도전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미국의 잘 나가는 대학 출신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증권시장에서 주식을 만지던 ‘전형적 미국 엘리트’가 한국의 햇볕 안 드는 창고에서 박스를 들게 된 사연을 비즈업이 들여다 봤다.  


1979년생 서울 출신의 최 대표는 유학길에 오른 부모 손에 이끌려 태어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 그는 미국에서 소위 성공한 이민자 가정의 전형적 ‘엄친아’였다. 미국 시카고의 명문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켈로그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첫 직장은 글로벌 기업 IBM에서 컨설턴트로 지냈고,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 시장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트레이더로도 활약했다. 


그런 그가 고국 땅을 다시 밟은 건 나이 서른세살 때인 지난 2011년. 먼저 들어와 있던 아버지가 위독하단 소식에 입국한 것을 계기로 자연스레 한국에 정착했다.  


최 대표가 처음부터 한국 창업 시장의 문을 두드린 건 아니었다. IBM 컨설턴트, CME 트레이더 출신이라는 ‘스펙’ 덕에 국내에서 손꼽히는 증권회사에 쉽사리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모국이 한국이라는 점을 빼놓곤 사실상 미국인이나 마찬가지인 최 대표. 연공서열 구조나 잦은 야근, 야근 뒤 술자리 등 한국 특유의 기업 문화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결국 1년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 대표가 창업의 소재로 삼은 건 바로 ‘물품 보관 서비스’. 미국 시카고의 방 3개 짜리 아파트에서 서울 용산의 원룸으로 이사하던 날, 좁아진 집 때문에 짐 둘 곳이 없어 난감했던 경험 덕에 최 대표는 저장 공간을 대여해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증권 회사에 있을 때도 출장을 많이 다녀 비어 있던 집을 ‘에어비엔비(숙박 공유 서비스)’에 자주 내놨었어요. 손님들이 내 물건들을 만지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그 때도 이런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온디맨드 보관 서비스 ‘마이박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


하지만 당시 한국에 온지 고작 2년. 미국 국적의 그가 한국에서 ‘내 회사’를 만드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당장 한국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보니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기업을 만들 수 있는지 아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해보니 ‘인맥’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더라고요. 저는 한국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학교도 미국에서 나왔으니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창업을 하기 전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기로 결심한다. 교육기술 스타트업 ‘노리(Knowre)’에서 2년간 해외개발 업무를 맡았다. 한국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직접 경험해 보면 창업에 필요한 ‘인맥’을 쌓을 수 있겠다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최 대표는 그곳에서 지금의 ‘마이박스’ 공동 설립자와 멘토를 만날 수 있었다. 스타트업 양성업체 ‘스파크랩’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선정돼 사무공간 및 투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노리’에서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 


한국 스타트업에서의 인큐베이팅 과정 등을 거쳐 최 대표가 ‘마이박스’를 설립한 건 지난해 10월. ‘한국 사장님’이 된 지 여섯 달이 돼 가지만 ‘한국어’는 여전히 그에게 가장 큰 도전 과제다. 


“얼마 전 가벼운 미팅인 줄 알고 혼자 나갔다가 대기업 대표와 하는 회의 자리인 걸 뒤늦게 알게된 적이 있었어요. 제가 사업에 대해 브리핑을 해야 하는데 ‘수익’, ‘매출’, ‘상생’ 같은 단어를 쓰는 게 너무 어려운 거에요. 그때 진땀 깨나 흘렸죠.(웃음)”


언어란 모름지기 해야 느는 법.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겪게 되는 ‘불편한 경험’들을 마다치 않으며 한국어, 그리고 한국 문화의 높은 벽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직원들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도 제가 클라이언트(고객)들을 직접 만나 얘기도 많이 나눠보고 의견도 들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박스 배송도 직접 하죠. 한 달 전에는 40kg짜리 박스를 옮기다가 발에 떨어뜨려 병원에 간 적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사업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실수를 줄이는 과정이니까 괜찮아요.”



미국 주식 시장에서 놀던 소위 잘 나가던 엘리트에서 한국의 ‘파란 박스’ 쟁이가 된 남자. 최 대표에게 ‘한국말이 서툰 사람이 대한민국 창업 시장에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힘들 거라 예상은 했어요. 근데 직접 해보니까 몇백 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영화 ‘마션’을 보면 주인공이 화성에 혼자 남겨지잖아요. 외롭고, 혼자 모든 걸 다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심하고.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계속 생기고. 스타트업 하는 게 꼭 그런 거 같아요. 그럼에도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하다 보면 화성에서 빠져나와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현주 기자 joo@bzu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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