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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시 Jul 11. 2016

"'청소년'도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어요"

분수의 덧셈과 뺄셈을 처음 배우는 초등학교 5학년. 엄마, 아빠가 손 잡고 자면 아기가 생긴다고 믿을만큼 어릴 것 같지만 놀랍게도 요즘 청소년들이 첫 성관계를 경험하는 평균 나이다. 지난 2014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 가운데 성관계 경험자의 평균 첫 경험 시기가 12.8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5.3%. 적지 않은 수의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기 한참 전 성에 눈을 뜬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피임 교육은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성에 관한 이론적인 얘기만 반복하거나 분만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임신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니 성관계를 하면 안 된다’는 식의 네거티브 교육이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 청소년들의 피임 인식도는 세계 최하위 수준에 그친다. 지난 2010년 아-태피임협의회(APCOC)가 아시아·태평양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피임법을 잘 모른다’고 답한 한국 청소년이 74%에 달했다. 부실한 피임 교육의 결과는 피임실천율과 성질환 경험률 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성관계시 피임을 한 경우는 39%에 불과하고, 성경험을 한 청소년 10명 가운데 1명이 성 질환을 앓았다.


왼쪽부터 박진아(25)∙김석중∙성민현 이브 공동대표


이같은 현실을 바꿔보고자 ‘콘돔 사업’에 뛰어든 젊은이들이 있다. 섹슈얼 헬스케어 브랜드 ‘이브’의 박진아(25·사진) 공동대표는 “청소년들이 피임을 비롯해 성에 관련한 다방면의 이슈를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섹슈얼 헬스케어 브랜드 ‘이브’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 참조


“제가 청소년기에 성교육을 잘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성인이 되니 피임법을 잘 몰라 겪은 우여곡절이 많았죠. 콘돔을 쓰게 되는 그 상황까지 콘돔을 어디서 사야하는지,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런 현실 때문에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콘돔을 대중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청소년들에게요.”(박 대표)


그래서 박 공동대표는 지난해 고등학교 동창인 성민현·김석중(25) 공동대표와 함께 ‘전체이용가 콘돔 쇼핑몰’을 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세 젊은이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대적하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거대한 산이었는지를.



‘하늘의 별따기’인 청소년의 콘돔 구매


일반형 콘돔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에서 고시한 청소년 유해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청소년은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아도 합법적으로 콘돔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청소년이 콘돔을 사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다.


“편의점에서는 아직도 청소년들이 콘돔을 사려고 하면 거부하는 일이 많아요.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온라인은 더 하죠. 판매 사이트에 성인 인증창을 달지 않으면 포털에서 아예 검색 광고를 승인해주지 않아요. 저희가 문제를 제기해봤는데 포털 회사 운영방침에 ‘콘돔’이 청소년 유해물건이라고 명시가 돼 있더라고요.”


성인 인증을 하지 않고 '콘돔'을 검색했을 때(왼쪽)와 성인 인증 후 검색했을 때(오른쪽)의 검색결과


실제로 성인인증을 하지 않고 포털 사이트에 콘돔을 검색하면 인증을 한 경우와 전혀 다른 검색 결과가 나타난다. 구매를 할 수 있는 쇼핑몰 목록과 콘돔에 관한 실질적인 정보를 담은 웹페이지는 모두 제외되고 콘돔의 사전적 정보와 학술 자료들이 자리를 메울 뿐이다.


판매 사이트의 홍보를 위해선 ‘전체 이용가 쇼핑몰’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세 젊은이는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를 되찾아주자’는 자신들의 철학을 버리지 않았다.


“저희가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성인 인증창을 달 수가 없죠. 온라인 유통의 핵심인 포털 광고를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브’는 창립 초기부터 ‘프렌치레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콘돔을 배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브 사이트에선 청소년이 신청만하면 매달 무료 콘돔 2개를 우편으로 보내준다. 더 많은 콘돔이 필요한 청소년들에겐 이브 콘돔을 반값에 판매한다. 하지만 성인인증을 하지 않으면 포털에서 ‘이브 콘돔’을 검색해도 쇼핑몰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브의 '프렌치 레터 프로젝트' (자료: 이브 웹사이트)


“아무리 회사 내규라고 하지만 부당하게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막는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포털에선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된 ‘돌출형 콘돔’ 구입을 막기 위함이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이 규제 자체에도 문제가 있어요. 일반형은 되고 돌출형은 안된다고 정해놓은게 청소년의 성기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과학적 근거가 없잖아요. 국제적으로도 이런 사례가 없고. 그래서 청소년유해물건 규제 자체에 대한 행정소송도 고려 중이에요. 그렇게 되면 포털의 콘돔 검색 규제에 대한 근거도 없어지게 되니까.”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대변하고 우리나라의 폐쇄적인 성 문화를 바꿔보고자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스물 다섯 청년들에게 한국 사회의 ‘성(性)벽’은 아직 높기만 하다.


“다들 나이가 어리다보니 궂은 일을 많이 겪었어요. 행사 같은 데 참석하면 저희 나이와 아이템을 보고 다들 성적인 농담을 던지죠. 특히 저는 여자다보니 ‘여관집 딸이냐’는 둥 점잖지 않은 소리를 많이 듣기도 했어요. 아이템이 ‘콘돔’이라서 행정적으로도 항상 문제가 생기죠.”



‘콘돔’ 사업이다보니 가족들의 응원을 받기도 쉽지 않다. 박 대표는 부모님에게 처음부터 창업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님이 제 서랍에 있는 콘돔을 발견하면서 창업한 걸 알게 됐어요. ‘건강하고 안전하게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이라고 설득했지만 ‘왜 하필 콘돔이냐’며 지금도 반대하세요.”


박 공동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콘돔 사업을 지속하게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피임에 대한 ‘여성 주권’이나 생식건강,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 굉장히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현실이 잘못돼있다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마찬가지고요.”


이브 대표들의 성 문화 개선을 위한 캠페인 참여 활동 사진


‘이브’의 최종 목표는 청소년과 여성 뿐 아니라 성 소수자 등 성 담론에서의 약자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이들이 나이 때문에, 사회의 시선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저희도 우스갯소리로 스스로를 '콘돔팔이’라고 하지만 콘돔은 단순한 고무 가공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성적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물건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폐쇄적인 성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죠.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당연한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잘 지켜지고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콘돔이 안전한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나 살 수 있는 물건이길 바라요.” /김현주 기자 joo@bzu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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