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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시 Jul 20. 2016

세상의 모든 직장인이여, ‘건강하게’ 사표를 던져라

직장인 진로 탐색으로 퇴사 준비 돕는 ‘퇴사학교’

지난해 겨울, 한파가 한풀 꺾였던 어느 화요일 아침. 기자는 담담한 마음으로 사직서를 한 자 한 자 써내려갔다. ‘개인적인 사유로 퇴사를 결심하게 됐으며…’, ‘회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등의 쓰나 마나 한 문장 아래 작은 서명도 남겼다. 4개월 동안 앉아있던 내 자리는 작은 종이가방 하나로 단출하게 정리됐다. 입사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빠져나온 순간, ‘지옥을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그렇게 첫 퇴사를 경험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과 ‘광탈’(빛의 속도만큼 채용 과정에서 빨리 탈락)이 난무하고, 청년들의 체감 실업률이 34.2%(지난해 8월 기준, 현대경제연구원 조사결과)에 달하는 시대. 하지만 최근 들어 높은 취업문을 뚫고도 제 발로 ‘조기 퇴사’를 선택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신입사원 이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학교 졸업·중퇴 뒤 취업 경험이 있는 청년(15~29살) 400만명 중 244만4000명(63.3%)이 1년 3개월 만에 사표를 던진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23.6%였던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결과)도 2014년 25.2%, 올해는 27.7%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


직장인을 위한 진로 탐색 강의를 진행하는 ‘퇴사학교’의 장수한(32∙사진) 교장은 이런 조기 퇴사 열풍에 대해 “군대식 조직문화와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가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1960∙70년대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정착된 군대식 사내 문화와 관료주의를 80∙90년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가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것. 실제로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둔 신입사원 중 절반에 가까운 49.1%가 퇴사의 가장 큰 이유로 ‘조직과 업무 적응 실패’를 꼽았다. 


“한국의 조직문화는 50대 남성이 아주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구조에요. 부장 한 명이 ‘금요일 저녁에 회식하자’고 말하면 나머지 99%의 직원들은 군말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거든요.”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지 못하는 이유로 장 교장이 꼽은 것은 '국내 특유의 주입식 교육'.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력을 안 해서 자기 적성을 못 찾은 건 아니잖아요. 성장 과정에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접해봐야 하는데 국가가 요구하는 수능 공부만 해봤으니까 다른 길을 모르는 거죠.”



자기 적성을 찾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직접 만나볼 기회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장 교장은 지난 5월 '퇴사학교'를 설립했다. ‘직장에 들어가는 법’이 아니라 ‘직장에서 잘 나오는 법’을 가르치는 퇴사학교는 사표를 가슴에 품은 직장인들이 퇴사 이후의 삶을 더 현실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온갖 자격증과 토익 점수를 따내느라 수십만원을 들이고,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까지 창작해가며 입사한 이들의 ‘퇴사 기회비용’을 줄여주고 싶다는 것. 그래서 실제 창업 경험이 있는 퇴사자들을 강사로 세우고 있다. 현재는 작가, 여행가, 수제 맥주 전문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약 20여명의 ‘퇴사 선배’들이 매주 2~3회 수업을 진행 중이다.


퇴사학교를 이끌고 있는 장 교장 또한 ‘퇴사 선배’ 중 한 명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에 들어가 ‘기업의 꽃’이라 불리는 전략기획 업무도 맡았던 그는 “회사 생활이 재미가 없어서” 지난해 4월, 입사 4년 반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재미가 없는 일을 계속하고 있자니 공허함만 커지더군요.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그만뒀죠.”


퇴사하고 싶어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의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서 만나보세요.
퇴사학교의 수업 모습 [자료제공: 퇴사학교]


퇴사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퇴사학개론’과 ‘덕업일치’. 퇴사학교의 신입생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할 입문과목인 ‘퇴사학개론’에서는 본인에게 퇴사가 반드시 필요한 일인지 고찰하고 원하는 일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탐색하는데 장 교장이 직접 수업을 진행한다. 


‘덕업일치’는 취미를 직업으로 발전시킨 다양한 분야의 ‘덕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다. 글로벌 경영 컨설턴트를 그만두고 맥주 양조업체 대표로 살아가고 있는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 대기업 동반 퇴사 후 1년간 25개국을 여행한 배준호∙조유진 부부, 좋아하는 책과 술을 접목해 ‘술 파는 서점’을 운영 중인 정인성 책바 대표 등이 함께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공유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이외에도 회사에 다니며 로스쿨∙MBA 등을 다니고 있는 이들의 강연, 전문 창업 멘토와 실전 창업 계획을 세울 수 있는 6주 창업 프로그램 등이 열리고 있다.




전체 학생의 60% 정도는 장 교장과 같은 또래의 30대 직장인들. ‘내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될까’란 질문에 답을 찾고 싶은 입사 3~4년 차들이 수강생의 주축이다. 놀라운 사실은 50대 이상의 임원급 학생들도 약 20%를 차지한다는 것. 연차가 아무리 쌓여도 ‘오너’가 아닌 이상 직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긴 어려운 법. 


“수업에 오신 분들이 서로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 초년생들은 임원급도 퇴사를 고민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40∙50대 직장인들은 신입이 벌써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죠.”



그러나 퇴사학교가 모든 수강생에게 퇴사를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장 교장은 “퇴사학교의 첫 번째 가르침은 퇴사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퇴사를 결정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사학교에서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길을 찾은 뒤 충분히 사전 준비를 하고 퇴사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피고용인’의 삶이 더 나을 것 같은 수강생에게는 애정 어린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제 수업에 왔던 한 신입사원은 ‘퇴사학교가 퇴사 액셀러레이터(가속 페달)인줄 알았는데 강의를 다 듣고 보니 퇴사 브레이크였다’면서 본인은 회사를 계속 다닐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어른들의 꿈을 찾는 학교’를 표방하는 퇴사학교. 장 교장은 “장기적으로는 건강한 퇴사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평생직장’이란 개념도 사라지고 있고, 지금은 업(業)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대잖아요. 더이상 퇴사를 쉬쉬하지 않고 좀 더 건강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갈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해요.”


우리나라 대기업 사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11.7년. 전체 노동자로 대상을 확대하면 그 기간은 5.6년으로 뚝 떨어진다. 한때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란 인기 웹툰의 대사가 슬픈 유행어처럼 회자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한 직장에서 10년 채우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라면 지옥이 무서워 전쟁터에 남아있기보다는 지옥을 ‘살만한 곳’으로 바꾸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저성장∙저소비가 일상이 돼버린 ‘뉴 노멀’(New Normal)의 시대, 취업보다 ‘창직’에 절로 눈이 가는 이유다. / 조가연∙백상진 기자 gyjo@bzu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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