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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Mar 25. 2024

꿈을 이루기 위한 엄마와 딸의 인도네시아 여행

잠 못 이루는 밤

오랫동안 준비했던 여행이 출발 직전으로 다가왔다.

왜 가기로 마음먹었는지, 왜 그곳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했던지라 막상 여행이 다가오니 설레는 마음뒤로 두렵고 무서운 마음도 든다.


영어도 잘 못 하는 내가, 여행 경험도 많지 않은 내가

나 혼자도 아니고 아이랑 같이 가서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에 잠이 오질 않는다.

 


탭 한 번으로 전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글로벌 한 시대에 살고 있고,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사진과 글로 친구도 할 수 있는 세상에 남들도 다 잘 가는 여행인데

왜 이렇게 까지 감성적이냐고 묻는다면...





내게 이번 여행은 참 많은 의미가 있다.

고단했던 20대에 녹초가 되어 몸부림이라곤 칠 수 없는 고시원 침대에 누워, 내가 내게 할 수 있던 소박한 위로는, 길 위를 걷는 배낭여행자들의 여행기들을 읽으며

매일매일 꿈에서, 나도 그곳에서 사막을 걷고 에메랄드 빛 바다에 몸을 던지고, 거짓말 같은 풍경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풍미 좋은 버터를 한입 베어 무는 것.


하지만 꿈에서 깨고 나면 내 삶은 오늘도 내일도 쓰고 텁텁한 나무뿌리를 씹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치열하게 달리는 것 같은데 늘 그 자리에만 있는 것 같은 매일의 반복들에 언젠가 꼭 배낭하나 둘러매고 아프리카 사막에 핀 꽃을 보러 갈 거야.라는 다짐을 했었는데..


오늘의 현실에 치여 무엇을 위해 사는 지도 모르는 채로 하루하루 살다가 착한 남편도 만나고 예쁜 딸도 낳고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내 안에 무언가는 늘 욕구불만인 채로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누구도 채워 줄 수 없는 결핍 하나가 나를 자주 우울하게 했다.




어느 날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장.

"이게 대체 뭐야? 채채야 이게 뭔지 알아?"

라는 나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또박또박 대답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엄마, 얘는 아틀라스 나방이야 인도네시아에 산대, 5일정도 밖에 못 살아서 저렇게 무서운 뱀모양으로 위장해서 사는 거야, 멋있지? 나 저 나방을 직접 보는게 소원이야. 그리고 인도네시아에는 공룡의 후손인 코모도 드래곤도 살아 진짜 멋있지? 가보고 싶어"


그때 뭔가 머릿속이 반짝 하고 스쳤다.

가자, 인도네시아. 엄마도 그런게 소원이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어.

우리 같이 가서 이뤄보자 그 소원.


그렇게 우리는 인도네시아 여행을 준비한다.

곤충과 파충류가 좋은 어린이의 아틀라스 나방과 코모도 드래곤을 만나는 꿈을 이뤄주기 위해.

그리고 매일 밤 꿈꾸었던 핑크비치를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글로벌 한 시대에 어쩌면 이런 여행은 누구에게는 별 것 아닌, 누구나 언제든 갈 수 있는 여행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오늘도 버텨내는 삶을 사는 가족들이 있는 내겐, 여행 자체가 도전이었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여행 전 부모님이랑 통화를 하는데 아빠가 채채에게 말씀하셨다.


"채채야, 비행기 타고 멀리 가는데 기분이 아주 설레고 좋지? 그런데 그렇게 채채가 궁금해하고 보고 싶다고 엄마 아빠가, 비행기 타고 멀리 외국까지 데려가는 건

채채 엄마아빠가 돈이 아주 많아서도 아니고, 채채에게 잘난 척을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채채가 세상에 궁금해하는 것들을 책에서 보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하나라도 직접 보여주고

그걸 보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많은 과정들,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들을 몸소 배우라고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채채도 가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보고 경험하고, 온 마음을 다해서 하루를 보내야 해.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방법으로 세상을 배우는 어린이가 김채채라는 걸 잊으면 안 돼~ 건강하게 잘 다녀와!" 라고..


스피커 폰으로 듣는 내내 눈물이 계속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고된 일을 하며 하루하루 아빠의 삶을 살아내느라 힘들 텐데 내 자식 챙기느라 살뜰히 챙기지도 못하는 딸에게 오늘도 큰 가르침을 주는 아빠..

우리 아빠가 일생을 편안한 삶을 살았다면 아마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가끔 생각한다.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게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라고일으켜준 가족들. 언제나 길 위에서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자 했던 엄마 아빠와의 추억을 되살려서

포기하려다가 다시 도전하고, 남들은 다 '못한다 고생이다' 한 마디씩 거들 때마다 "언니는 할 수 있어, 왜 못 해!"라고 일으켜준 동생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드는 밤.


사실 아이를 위한 여행..이라고 시작했지만

준비하면서 느낀 건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이구나. 아니 도전이구나.

언젠가 신발 타고 온 세상을 누비고 싶다던 이루지 못 한 젊은 날의 꿈에 한 발자국 내밀게 된 기분이라 몹시 떨리고 설렌다.


비록 뗄래야 뗄 수 없는 아니 하나 달고 다닐 여행메이트 (라고 쓰고 "귀찮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혹이라고 읽어본다.)

덕분에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녀온 뒤에 채채도 나도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


23.06.21. 새벽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시인)


엄마와 딸의 3주간의 인도네시아 여행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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