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과잉은 왜 자동으로 지혜를 낳지 않는가

정보의 시대, 기준의 빈곤

by 사고하라

현대사회에서 시대를 설명할 때 자주 호출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정보의 시대라는 표현이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더 빠르게 배우며,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손 안의 기기 하나만으로 뉴스, 통계, 해설, 강의, 전문가 의견, 타인의 경험까지 거의 무한하게 접속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것은 인간의 판단 능력을 크게 확장시킬 조건처럼 보인다. 더 많이 알 수 있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러나 실제 삶의 풍경은 그 기대만큼 단순하지 않다. 정보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인간의 삶이 그만큼 더 명료해지거나 더 지혜로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이 접속하면서 더 쉽게 피로해지고,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더 자주 혼란스러워하며, 더 다양한 의견을 접하면서도 무엇을 믿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흔들린다. 정보 과잉은 왜 자동으로 지혜를 낳지 않는가. 이 질문은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가장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정보와 지혜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보는 사실, 데이터, 주장, 해석, 사례 같은 것들의 축적을 뜻한다. 그것은 외부 세계에 관한 조각들을 제공한다. 반면 지혜는 그 조각들을 단순히 많이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 가려내고, 서로 다른 요소들의 관계를 이해하며, 삶의 맥락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과 가깝다. 다시 말해 정보는 양적으로 늘어날 수 있지만, 지혜는 방향, 질서, 그리고 우선순위를 요구한다. 정보가 많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삶의 중심을 형성해주지는 않는다. 정보는 재료일 수는 있어도, 그 재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결정해 주는 힘 자체는 아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이 둘을 자주 혼동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접하면 자연스럽게 더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정 수준까지는 그것이 사실일 수 있다. 무지보다 앎이 낫고, 닫힌 세계보다 열린 세계가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일정한 지점 이후부터 정보의 증가는 이해의 심화가 아니라 오히려 판단의 분산을 낳기도 한다. 서로 다른 주장들이 동시에 밀려들고, 각기 다른 가치 판단이 충돌하며,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부차적인지 정리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은 더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정작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는 점점 더 놓치게 된다. 정보의 축적이 삶의 정리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오늘날 정보는 단순히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빠른 속도로 소비되도록 조직되어 있다. 정보는 오래 붙들고 사유하도록 주어지기보다, 즉시 반응하고 곧바로 다음 것으로 넘어가도록 배열된다. 이 환경에서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능력보다 빨리 파악한 듯 느끼는 능력이 더 쉽게 강화된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충분히 생각하기 전에 이미 입장을 정하고, 어떤 문제의 복잡성을 견디기 전에 먼저 찬반으로 나누며, 하나의 질문을 오래 붙들기보다 더 강한 자극을 주는 다음 정보로 이동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정보는 판단을 성숙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성급한 해석과 피로한 반응을 반복하게 할 위험이 크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지혜가 자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정교한 사유의 훈련이 필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혜는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멈출 줄 아는 능력과도 연결된다. 무엇을 바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은 조금 더 검토해야 하는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해석이며 무엇이 평가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보 과잉의 시대는 이런 멈춤의 능력을 약화시키기 쉽다. 많은 정보는 인간에게 풍요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급함을 주고, 더 넓은 시야를 열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쉽게 방향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정보를 거부하는 태도가 아니라,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내적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어떤 정보가 나에게 중요한지, 무엇을 삶의 중심에 둘 것인지, 언제 판단을 유예해야 하는지를 묻는 힘이 없다면 정보는 지혜의 자원이 아니라 피로와 혼란의 자원이 되기 쉽다.


결국 정보 과잉이 자동으로 지혜를 낳지 않는 이유는, 지혜가 정보의 많음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질서를 부여하는 기준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지혜는 더 많이 접속하는 능력보다 더 정확히 구별하는 능력과 가깝고, 더 빨리 아는 능력보다 더 늦게 판단할 수 있는 힘과 가깝다. 그래서 정보의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은 정보 자체가 아니라, 그 정보를 해석하고 정리하고 삶 속에 배치할 수 있는 사유의 힘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은 다시 중요해진다. 철학은 정보를 대신해 주는 학문이 아니라, 정보가 넘칠수록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를 묻게 만드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정보가 많아진 시대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커졌다. 정보가 지혜가 되지 못하는 자리에, 기준을 세우는 사유가 다시 요청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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