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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May 17. 2023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1933년)를 읽고...

주인공 기요와 아내 메이, 죽음 앞에서의 두 부부의 관계에 주목하다.


요즘 사회주의학자 알랭 바디우의 <세기>라는 책을 읽고 있다. 공산주의는 물질의 공산화에 이어 성(性)의 공산화를 추구하고 있다. 마르크스를 있게 한 엥겔스의 <가족의 기원>에서 성의 문제, 가족의 문제, 일부다처제의 기원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물질이며, 신은 없다는 사상에서 어떻게 가족을 이해하고, 성을 이해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리 이상적인 사상일지라도, 그것을 현실화할 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몰아내고자 공산주의를 시도했으나, 공산주의도 권력을 잡으면 타락했다. 알랭 바디우는 사회주의 이상사회 건설에 대한 열정과 헌신의 정신을 기리면서, 현대 사회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소설은 친절하지 않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나오는 단편 '은총(Grace)'을 읽으면서 아일랜드 사회의 종교적 분위기를 소개하지 않으며, 단편 '파넬 추모일, 선거사무실에서'에서도 아일랜드의 정치 영웅 파넬과 아일랜드의 정치상황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내용에 당시의 종교와 정치를 추론할 단서를 발견한다.


소설을 읽는 것은 형사가 범인이 저지른 범행의 단서를 찾는 것처럼 스릴이 있다. 인내는 필수적이다.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 작가이다. <인간의 조건>의 배경은 1927년의 중국 상하이이다. 프랑스의 68혁명의 사상적 배경 가운데 3인의 마씨(마오쩌뚱, 마르크스, 마르쿠제)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마오쩌뚱이다. '유럽 사회주의 사상은 중국의 공산주의 사상을 동경하나보다.' 특이하다. 프랑스 작가가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의 연합과 갈등을 배경으로 작품을 쓰다니.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은 영어로는 Men's Fate로 번역되었다. 7부로 되어 있고 300여쪽의 분량이다. 최근 소설의 묘미을 알았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오리무중이지만 완독하기로 결심했다. 여기는 어디인가? '상하이, 광둥, 한커우(우한)' '국민당과 공산당이 어떻게 되었다는 건가?' 어둠을 더듬으며 길을 나가듯이 더듬더둠 읽었다.


배경은 중국 상하이, 1927년 4월 12일이다. 국민당의 장제스가 연합했던 공산당을 토사구팽하여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고 반발하는 공산주의자를 소탕하는 내용이다. 22일간에 일어난 일로 기록되었다. 주인공은 1명 빼도 전부 공산주의자, 국민당의 장제스를 제거하려고 하고 이에 대항하는 사람들이다. 국민당은 소부르조아를 기반으로 하고, 공산당은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차이이다.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공산주의의 성(性)에 대한 이해가 가장 두드러지게 와닿는다. 뜬금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문제가 가장 와 닿는다. 주인공 기요와 부인 메이의 관계, 중국에 온 프랑스 재단의 최고책임자 페랄과 그의 정부 발레리(세르즈 부인)의 에로티시즘을 통하여 사회주의자의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삶의 괴리를 뚜렷히 보았다. 성에 대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보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결국 진실한 사랑은 무엇인가? 이데올로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보다 더 진한 것인가? 이런 질문을 남긴다.

차근차근 <인간의 조건> 소설로 들어가보자. 왜 이리 외국사람들이 중국에 많지? 코민테른, 세계공산당기구 때문인 듯하다. 중국이 외국인에게 치외법권같은 땅을 내어준 것을 '조개(지)'라고 한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을 보면, 바렌 클라피크는 벨기에인, 페랄 회장은 프랑스인, 조지르 교수도 프랑스인, 기요의 부인 메이는 독일인, 기요는 프랑스 아버지와 일본 여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이다. 테러리스트 첸과 그의 조력자 청년 순과 베이만 중국인이다. 경찰서장 쾨니히도 이름이 독일인 같다. 온통 외국인이다. 장제스라는 이름 외에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조건>에 외국인 천지이다. 특이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이 공산주의자(코뮤니스트)인데, 이들의 목적은 국민당에 저항하는 것이다. 국민당의 장제스를 암살하고, 국민당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경찰서나 배에서 무기를 탈환해서 무장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역사적 배경이나 판세를 중계보도하기 보다는 등장인물 개인의 심리묘사, 개인의 결단, 등장인물의 인간적인 처지, 실존적 고뇌 등을 다룬다.


첸은 중국인으로 테러리스트이다. 무기중개인을 살해하는 소설의 첫 장면을 통하여 무기가 국민당에 가지 않도록 막으며, 공산당 혁명세력이 무기를 확보하려고 한다. 이 암살로 인하여 죽음의 망령이 그를 따라다니는 듯하다. 이데올로기보다는 사람까지 죽였고, 자신도 죽음을 직면해서 살아간다. 장제스를 암살하려는 첫번째 시도는 실패했고, 폭탄을 품고 차로 뛰어드는 방법을 선택해서 실행한다. 장제스의 차로 추정되는 차는 폭발되었고, 첸은 빈사상태에 빠지다가 권총으로 자살한다. 그러나 장제스는 그 차에 타고 있지 않았다.

첸의 장제스 암살이 실패한 사건 때문에 코뮤니스트 수배 명령이 내렸다. 러시아에서 온 혁명가 카토프, 프랑스인 교수 지조르와 일본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기요는 수배를 당하고 마침내 잡혀서 죽게 된다. 카토프와 기요는 기차에 실려 끌려가면서, 기요는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고, 카토프는 2명 분의 청산가리를 젊은 두 청년에게 주고, 자신은 더 잔인하고 힘든 죽음을 선택한다. 그 죽음은 기차의 보일러실에 던져져 불타 죽는 것이다. 두 청년이 보일러실에 던져저 불타 죽는 것을 두려워하자, 2명 분의 청산가리를 그들에게 양보했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앙드레 말로는 사랑보다는 에로티시즘을 자세히 묘사했다. 클라피크가 도박을 하고 고급 창녀를 불러서 상대하는 장면, 무기를 확보하려고 한커우로 떠나려고 기요가 아내 메이와 작별인사하는 장면에서 메이가 남편 친구 의사가 하도 요구해서 성관계를 하고 왔다고 하자 남편 기요는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아내 메이에게 정내미가 떨어진다. 사회주의에서 성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막상 기요는 메이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한 것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주인공 기요도 그런 감정에 당황해 하는 듯하다.


한편 프랑스 자본가 페랄은 정부 발레리와 세 번 잠자리를 같이 한다. 어느 날 페랄이 발레리(세르즈 부인)를 찾아간다. 그러나 바람맞았다. 다른 젊은 영국인까지 그녀를 찾아와 함께 바람맞았다. 페랄은 모든 비용을 지불할테니, 게다가 그 호텔이 페랄의 재단의 관할하에 있으니, 그녀가 투숙하고 있는 객실에 앵무새들을 풀어놓았다. 또 한 동물이 있었는데 뭐였더라... 발레리가 볼 때 페랄은 '여성을 인간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저 즐기는 대상일 뿐이다. 페랄은 발레리와 잠자리를 할 수 있어도,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마치 자본주의의 폐단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벨기에 사람인가? 프랑스 사람인 듯하다. 클라피크는 골동품상인이면서 정보제공자이다. "48시간 안에 이 도시를 떠나야 살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 정보를 기요에게 넘기고 돈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가는 길에 도박장에 들렸는데 밤 1시에 나올 때까지 도박에 빠지게 된다. 제 때 정보를 전달하지 않아서 기요는 11시 30분에장제스 군에게 끌려가 죽게 된다. 클라피크는 가게에서 푸른 선원복을 사서 변장을 하고 몰래 프랑스로 가는 배에 올라 자신의 생명을 구제한다. 끝까지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물론 정보제공자로 노력한 점도 있기에 부정적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기요의 아버지이자 첸의 스승인 지조르 노인은 프랑스인으로 북경대학 교수였다. 아편 중독자이다. 지조르 노인은 지식인을 대변한다. 지조르의 이데올로기 사상은 첸과 같은 테러리스트를 낳았고, 아들 기요를 혁명가로 만들었다. 지조르 노인의 지인 가운데 대 화백이 있었는데, 앙드레 말로가 예술에 조예가 깊었나보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대화가'를 말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지식층을 비꼬는 표현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코뮤니스트 중에 벨기에 인 에멜리크가 있다. 그에게 처지식이 있다. 자식이 아프다. 장제스군의 수류탄에 처자식이 죽는다. 아이의 팔이 떨어져 나간 것을 목격한다. 죽음이 인간의 권리인데 처자식으로 인해서 죽을 권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다가 처자식이 죽자 혁명운동에 가담한다. "저놈의 피로 핏자국을 씻고 말테다"하며 피의 복수를 하려고 한다. 처자식 때문에 첸의 테러에 가담하지 않는 것이 마음 꺼려졌는데, 처자식이 죽게 되자 혁명에 가담한다.


기요의 아내 메이는 독일인 간호사이며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남편 기요와 함께 사회주의자인 메이는 공산주의자답게 성의 공유화를 인정한다. 어느 날, 기요가 집을 떠나는 날 아내가 말한다. 남편의 친구인 의사 아무개가 졸라서 성관계를 했다고 한다. 기요는 말로는 괜찮다고 쿨하게 반응하지만, 감정으론 그런 아내에게 정내미가 떨어진다.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주인공 자신도 당황스러운 그런 감정이다.


기요와 메이는 서로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이에 성의 공유화는 용납하기 힘들다. 물론 미셸 우엘벡의 소설 <소립자>에서는 성을 누구나 소유할 수 있고, 아무리 연인이라도 각자가 실험적인 다양한 방법으로 성을 탐닉한다. 성기가 헐정도로 실컷 즐기지만, 나중에는 무감각해진다. 성의 자유화를 극단으로 몰아갈 때 나타나는 결과는 인간 종족의 말살이자 새로운 종의 출현이라는 내용이다.


도덕의 철폐, 성(性)의 공산화, 부부애 대신에 동지애.

이 소설의 마지막인 7부에서 1927년 4월 12일 상하이반혁명이 끝난 지 3개월 뒤에 지조르 노인과 자부 메이는 일본 고베에서 기요의 시체를 받는다. 그 때 지조르와 기요의 아내 메이의 대화가 '인간의 조건'에 대한 메시지를 남긴다.


지조르는 아들이 죽었는데 혁명은 무슨 소용인가 하면서 아편으로 도피처를 삼는다. 메이는 '다시 모스크바로 가서' 남편 기요가 했던 혁명을 이어가고자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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