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의 윤리를 대안으로 제시하다.
알래스데어 맥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의 책 덕의 상실 (After Virtue)은 현대 도덕 철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고대 덕 윤리의 회복을 주장한 중요한 철학 저작이다. 이 책의 중심 문제의식은 매우 단순하지만 깊다. 왜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 논쟁은 끝없이 계속되지만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가?** 정치, 사회, 윤리 문제에서 사람들은 서로 “정의”(justice), “권리”(rights), “의무”(duty) 같은 도덕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를 설득하지 못한다. 맥킨타이어에 따르면 그 이유는 현대 사회가 도덕 언어의 전통적 토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왜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 논쟁은 끝없이 계속되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가?” (현대 사회는 이미 “도덕 언어의 파편들”만 남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맥킨타이어는 현대 도덕 상황을 하나의 상상적 비유로 설명한다. 만약 어떤 문명이 붕괴하여 과학 자체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전자”(electron), “중력”(gravity), “원소”(element)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람들은 과학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질 것이다.
맥킨타이어에 따르면 현대의 도덕 언어가 바로 이러한 상태에 있다. 우리는 여전히 “덕”(virtue), “정의”(justice), “의무”(duty)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개념들이 원래 속해 있던 도덕 전통(moral tradition)은 이미 붕괴했다.
맥킨타이어는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근대 계몽주의 윤리 프로젝트(the Enlightenment moral project)의 실패에서 찾는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종교와 전통에서 독립한 새로운 도덕 체계를 세우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이다. 칸트는 도덕을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라는 보편적 규칙에 기초하려 했다.
그러나 맥킨타이어의 관점에서 칸트 윤리는 인간 삶의 구체적인 목적이나 공동체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 칸트의 윤리는 형식적인 보편 규칙만 남긴 채 인간 삶의 실질적 목적을 제거했다.
또 다른 대표적 근대 윤리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이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과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도덕을 최대 행복의 원리(the greatest happiness principle)로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맥킨타이어는 이러한 접근이 인간 삶을 단순한 계산 문제로 환원한다고 비판한다. 공리주의는 공동체의 전통과 인간의 도덕적 성품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결과의 계산에 의존한다.
맥킨타이어는 이러한 계몽주의 윤리의 실패가 결국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철학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니체는 도덕 자체를 권력 의지(will to power)의 표현으로 해석하며 전통적 도덕을 해체한다. 맥킨타이어에게 니체는 단순히 도덕을 파괴한 철학자가 아니라 근대 윤리의 논리적 결론(logical conclusion)이다.
만약 도덕이 전통과 목적을 잃어버린 채 개인의 선택이나 감정에 의존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개인의 의지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맥킨타이어는 감정주의(emotivism)라고 부른다. 감정주의란 도덕 판단이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개인의 감정 표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맥킨타이어가 제시하는 대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Aristotelian virtue ethics)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인간을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 이해했다. 인간 삶에는 목적(telos)이 있으며, 그 목적을 향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덕이 형성된다. 덕(virtue)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인간이 좋은 삶을 살아가도록 만드는 성품이다.
맥킨타이어는 덕 윤리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중요한 개념을 제시한다.
첫째는 실천(practice)이다. 실천이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공유되는 활동이다. 예를 들어 학문, 예술, 정치, 스포츠와 같은 활동은 공동체 안에서 발전하며 고유한 가치와 기준을 가진다.
둘째는 덕(virtue)이다. 덕은 이러한 실천을 올바르게 수행하게 하는 성품이다. 정직, 용기, 정의와 같은 덕은 공동체적 활동 속에서 형성된다.
셋째는 삶의 이야기(narrative)이다. 맥킨타이어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히 개별적인 행동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의 삶은 서사적 통일성(narrative unity)을 가진다.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하려면 우리의 삶 전체 이야기를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맥킨타이어는 도덕을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전통(tradition)과 공동체(community)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덕은 개인의 고립된 선택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전통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도덕의 회복은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속에서 덕을 형성하는 삶의 방식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맥킨타이어는 책의 마지막에서 의미심장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현대 사회가 로마 제국 말기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성 베네딕트(another St. Benedict)”라고 말한다. 이는 새로운 수도원 운동처럼 도덕적 전통을 보존하고 회복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덕의 상실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근대 계몽주의 윤리는 인간 삶의 목적과 공동체적 전통을 제거함으로써 도덕의 토대를 약화시켰다. 그 결과 현대 사회의 도덕 논쟁은 끝없는 갈등 속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적 덕 윤리와 공동체적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 맥킨타이어에게 도덕은 추상적 규칙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