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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7. 2021

창세기 22장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

《공포와 전율》읽기 안내서 5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는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시나리오를 네 가지로 소개하는데,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젖을 떼는 이유기(weaning)로 비유한다.



시나리오 1.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희생제물로 바치겠다고 설명한다. 이 기가 막힌 상황을 아들에게 설명할 수 없어서 살인을 저지르는 싸이코패스(정신병자) 행세를 하게 해서,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고 아버지 아브라함을 비난하게 하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 만은 잃지 않게 하려고 아버지가 계획한다. 어린애가 젖 뗄 때 어머니는 젖을 검게 물들여서 젖에 대한 미련을 버리도록 잔인한 짓을 하는 것에 비유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여전히 자애롭고 자식을 사랑한다. 아브라함이 악역을 자처하고 말을 꾸며댐으로써 아들의 신앙을 지켜주려 했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하늘에 계신 주여, 저(아브라함)는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삭이 당신에 대한 신앙을 잃느니보다는 오히려 그가 나를 인간이 아니라고 믿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다. 아들에게 하나님이 죽이라고 했더라면 아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런 하나님을 믿기는 커녕 얼마나 하나님을 증오하겠는가? 아브라함의 고민이 느껴지는 시나리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고민이.



시나리오 2.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따르기는 하지만, 마지못해서 이해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행하고 있다. 그 이후에 아브라함은 변했고, 아무런 기쁨도 느낄 수가 없었다. 비유하자면 젖을 감춘 어머니에 대하여 아이는 젖을 줄 어머니가 없다고 박탈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윤리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 아브라함은 실망감을 느낀 것이다. 어떤 기쁨도 없다.


이날부터 아브라함은 노인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신 사실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서운하다는 뜻이다. 기쁨과 감사라고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이삭은 이전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눈은 흐려졌다. 그는 다시금 기쁨을 볼 수 없었다.



시나리오 3.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를 다른 방법으로 시험한다고 보는데, 아들을 얼마나 진정으로 사랑하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이란 것이다. 아브라함은 나귀를 타고 홀로 모리아 산으로 가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생각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있다. 여기서 요점은 젖 떼는 아이도 힘들지만, 이제는 아이가 더 이상 젖을 빨려고 가까지 하지 않을 것이 어머니에게도 쓰라리고도 슬픈 일임을 강조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이유는 아들을 바치라고 했는데, 아들을 바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했고, 아들을 바치는 행동도 안 했어야 했다는 윤리적인 시험으로 이해한 것이다. 



시나리오 4.


모든 것을 계획대로 진행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삭이 본 것은 아버지가 절망적으로 칼을 왼손에 움켜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후로 이삭은 신앙을 잃고 말았다. "어린애의 젖을 떼야만 할 때, 어린애가 굶주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어머니는 영양가 있는 음식물을 준비한다." 아브라함이 이 시험의 진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두 번째 시나리오처럼,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절망에 빠져서' 명령에 따라고 있는 모습이다. 그 결과 아브라함과 이삭은 모두 신앙을 잃고 말았다.


가명저자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들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을 설명해보려 하지만, 결코 이런 행동을 하는 아브라함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윤리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도입부>의 네 가지 시나리오가 만족스럽지 못함을 보여주면서, 본론에서 윤리적인 것과 종교적이 것의 차이를 설명하게 된다. 윤리적인 것은 보편을 강조하지만, 종교적인 것은 개인을 강조한다. 윤리적인 것은 사회와의 관계인 반면, 종교적인 것은 절대자와의 관계이다. <도입부>에서 제시한 네 개의 시나리오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설명하려 했을 뿐, 믿음의 차원(종교적 차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유식 비유'에서 어머니는 하나님, 젖은 아브라함, 아기는 이삭이다. 아기가 젖을 떼고 어머니 자체를 즐거워하는 법을 알게 되듯이, 이는 지상에서 의지했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젖떼기를 해서 아이(이삭)가 어머니(하나님) 자체를 알게 하려는 것이 이 시험의 목적이었다.


첫번째 시나리오에서 어머니가 젖을 검게 물들여서 이유기를 거치는 것은, 중간자인 아브라함을 제거함으로써 이삭을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둘째 시나리오에서 어머니가 젖을 감추었을 때, 아이는 어머니를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된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 희생제사로 인하여 망하게 된다면, 이삭은 더 이상 하나님께 가까이 갈 가능성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세번째 시나리오에서, 아브라함(젖)의 중재를 통해서 이삭(아이)이 하나님(어머니)께 가까이 가게 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브라함(젖)이 중재할 경우에 -이삭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 이삭(아이)과 하나님(어머니)과의 유대가 더 쉽고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네번째 시나리오에서 어머니는 아이에게 젖을 떼기 위해서 손에 - 엄마젖보다 - 더 맛있고 좋은 음식을 들고 있어야만 한다. 아브라함이 신앙을 잃었기 때문에 이삭도 신앙을 잃게 된다. 이삭은 하나님(어머니)와 더 이상 강한 유대가 없고, 다른 음식(하나님을 대체하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런 네 가지 설명 모두, 믿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해를 초월하는 문제이며, 어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시나리오도 아브라함을 윤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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