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푸른 달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남녀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함께 조율해 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함께 낳은 아이들의 훈육 방식에 대해서는 쉽게 조율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경우는 ‘떼쓰는 아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다르게 반응했다.
물론, 나도 떼쓰는 아이를 옹호하고 싶진 않다. 떼쓰는 아이의 그 반응이 싫어서 빠르게 요구를 들어주고 조용히 시키려는 의도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남편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아이가 떼를 쓰는 걸 알면서도 들어주는 건 훈육이 아니라, 떼쓰는 걸 허락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반대로 나는 훈육이 통하는 시기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내 눈에 비친 우리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직 36개월도 안 된 아이였다. 너무 어린 시기에 사회생활(어린이집에서 단체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에 나는 늘 미안했다. 또 그런 마음에 아이의 언어표현이 서툴거나 성장 발달이 늦어도(대소변을 가리지 못했음) 뭐라 하고 싶진 않았다. 먼 거리를 출퇴근하는 남편을 대신해, 상대적으로 나는 평일에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자연스럽게 육아의 방법-훈육 방식- 조차 내가 정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비나리가 두 돌이 지난 시점부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떼를 쓰는 경향이 점점 많아졌다. 그때 남편은 “이제는 혼내야 할 때다!”를 강조하며 무서운 아버지로 변신했다. 아이는 그런 아빠를 볼수록 더욱 나에게 의존하려고 했다. 나는 비나리가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적으니, ‘아빠’를 혼내는 사람이 아니라 달래주는 사람으로 인지되게 하고 싶었다. 남편과 마주 앉아 앞으론 내가 혼을 낼 테니 그럴 때 무조건 아이를 달래주라고 했다.
하지만 훈육에 대한 의견차이만큼 나와 남편이 생각하는 훈육 타이밍도 차이가 있었다. 남편은 내가 혼내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결국 본인이 직접 혼을 내고 말았다.
이런 순간이 되풀이될수록 나는 점점 속상했다. 비나리는 어렸지만, 그 사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형이 되었다. 그러면서 당연히 혼날 거리가 많아졌다. 동생을 때리는 행동, 동생 것을 뺏는 행동 또는 동생처럼 다시 아기가 되어버리는 행동 등 많은 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둘째는 돌이 지나면서부터 더욱이 형을 ‘약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서 나와 나의 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기에 혼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이의 마음이 더욱 이해되었고,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내가 아이를 감싸면 감쌀수록 남편과 나의 의견 차이는 더욱 깊어지는 듯했다. 아이가 떼쓰는 순간이 되면 우리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남편에게 내가 읽었던 육아 서적들과 맘카페에서 보았던 혼내는 훈육의 단점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해 보았지만, 남편은 그런 이론적인 것보다 아이가 특히 엄마 앞에서 더 강하게 떼를 쓰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강조했다. 정말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리는 대화 끝에 서로가 만족할만한 기준을 세웠다. 나는 세 돌까지만 내 육아방식인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을 때까지 화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전부 들어주는 것을 존중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세 돌이 지나서도 변하지 않으면, 남편의 훈육 방식대로 혼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나는 이 유예기간 동안 아이가 떼쓰면 다 그런 이유가 있을 거라며 달래고 다 맞춰주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보단 “떼쓰지 말고, 예쁘게 말해보렴. “ ”울지 말고, 예쁘게 말해보렴. “이라고 아이에게 떼쓰는 것 대신 말로 표현해 볼 수 있도록 이야기하고 기다려주었다. 남편도 적극적으로 아이의 뜻을 맞춰주었고, 부자간의 사이도 좋아졌다. 사실 어떤 때는 버릇없이 키워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록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떼쓰기를 허락하기’를 꿋꿋하게 이어 나갔다.
대망의 아이의 세 번째 생일이 돌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아이는 동생에게 자동차를 뺏기고, 맘대로 되지 않자 울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에게 평소처럼 부드럽게 달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울면서 말하는 건 안돼. 동생에게 다른 자동차랑 바꾸자로 말해봐.”라고 칼같이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비나리가 울음을 그치더니 “알았어. 동생아, 나랑 바꾸자~“라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처음에는 나의 귀를 의심했지만, 내 육아 방식이 옳았다! 남편도 신기해하면서 내 말대로 너무 어릴 적부터 혼내는 훈육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라며 ’ 대화를 통한 훈육 방식‘에 동조해 주었다.
‘역시 엄마는 달라!‘ 나는 어깨가 으쓱했다.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인 것 같았고, 내가 정한 대부분의 육아 방식이 다 옳은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나리의 동생은 태어나면서부터 형을 따랐다. 뱃속에서부터 형의 울음소리,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컸기 때문일까? 태교가 ‘비나리의 육아’였기 때문일까? 둘째는 비나리에게 통했던 ‘대화를 통한 훈육’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나보다 형을 더 좋아했고, 형이 하는 것은 무조건 똑같이 따라 해야 하고, 형이 가진 모든 것을 자신도 가져야 했다. 엄마의 목소리, 몸짓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떼쓰는 스케일도 달랐다. 우선 약하게 떼를 써보고 안되면 그냥 바닥에 드러눕거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몸을 던졌다. 나는 둘째의 떼쓰는 방식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의 말로는 제어가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통하는 시기까지 무작정 기다리기엔 아이의 안전도 위협되었기 때문에 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남편은 마음 아프지만 단호하게 ‘몸으로 배우는 훈육’을 실천해 주었다. 막무가내 떼쓰는 우리 둘째는, 아빠의 강력한 훈육 방식에 따라 조금씩 나쁜 버릇, 특히 아무 곳에나 드러누워 떼쓰기를 고치고 있다. 참고로, 둘째는 아직 두 돌 전이다.
내가 처음에 너무 어린아이에게 혼내는 것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고 첫 번째 시도는 분명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나는 두 번째 케이스를 통해 그것이 절대적이지 못한 것을 알았다. 나이는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성향이었다. 아이의 성향은 부모가 가장 잘 아는 것이다 (때로는 엄마보다 아빠가 더 잘 알기도 한다). 그렇게 때문에 누구의 훈육 방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그저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다양한 훈육 방식에서 가장 잘 맞는 훈육 방법을 고를 수밖에.
우리 부부는 이미 어른이 되고 나서야 만났다. 서로의 어릴 적 모습은 알 수가 없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자라 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아이라는 거울을 통해 서로를 비추어 보았다.
첫째를 키우며 나는 꼭 어려진 내 남편을 키우는 것 같았다. 어리지만 깔끔한 것을 좋아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세워놓은 장난감 자동차의 줄이 틀어져도 떼를 썼고, 본인이 정리해 놓은 곳에서 그 장난감이 보이지 않으면 심하게 떼를 썼다. 남편은 본인을 닮을 첫째를 보며 왜 이렇게 까탈스럽냐며 혼을 내고 싶어 했지만, 내 눈에는 그저 사랑스럽고 완벽을 추구하는 똑똑한 아이였기에 나는 더 많이 마음이 쓰였다.
둘째를 키우며 남편은 꼭 어려진 나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활동적인 성향을 가졌고 한자리에 앉아서 노는 것보단 몸을 쓰며 놀기 좋아했다. 여간 넘어지거나 부딪혀도 울지 않고 일어나 달리고 또 달렸다. 한입 먹고 흘린 음식을 닦아 달라고 말하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음식을 온몸으로 먹었다.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일단 먹고 보는 우리 둘째를 남편은 더 귀여워해 주었다.
어떤 책에서 이런 문구가 있었다. ‘완벽한 부모보다는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여유를 가진 그럭저럭 괜찮은 부모의 시전을 갖자.‘ 어쩌면 우리는 완벽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의 성향보다 본인이 생각해 온 육아 틀에 맞춰 아이를 맞춰본 건 아닐까. 부부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아이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대신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성향을 알게 되고, 우리가 커온 모습을 보게 되며 그렇게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배우게 된다.
매일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지만, 특히나 5월은 더욱 생각난다. 어린이집 가방에 꼬깃꼬깃 들어가 있는 아이들의 낙서된 카네이션이 유난히 우리 마음을 적셔 주는 날이다.
-비나리의 육아일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