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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Jun 16. 2023

9등급 교사에 대한 생각

오늘 아이들한테 진로 교육을 하면서 각 직업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눠보자고 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바로 장단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어려워하기 때문에 먼저 쉬운 예시를 들어줬다.


예시로 든 건 바로 아이들한테 가장 익숙한 직업인 '교사'.


"여러분 선생님이란 직업의 좋은 점은 뭘까요?"

- 아이들이랑 함께 해요

- 아이들과 같이 재밌는 시간을 보내요

(우리 반 애들이 다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걸 교사의 최고의 장점으로 여긴다는 것에 깜놀^_^ㅋㅋㅋㅋ)


"맞아요~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해서 좋은 직업이에요.

그럼 선생님이란 직업의 어려운 점은 뭘까요?"

-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 되기가 어려워요

-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돼요

(솔직히 의외의 답변들이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요' 이런 걸 단점으로 꼽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교사가 되기까지의 힘들고 어려운 것을 이유로 들어서 놀랐다ㅋㅋ)


그 순간 머릿속에 피 터지게 공부하던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나 공부 진짜 열심히 했지...'


흔히 말하는 모범생의 삶이었다.


중학생 땐 전교 1~2등을 벗어나본 적이 없었고,

고등학생 땐 수도권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전교 2등으로 교장상을 받고 졸업했다.


사실 내가 수능을 보던 해는 2011년으로 역대 수능접수인원이 제일 많은 해였다.


외고 다닐 때 한 선생님께서는 우리한테 "너네 수능에서 한 문제 틀릴 때마다 4만 명한테 밀리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며 겁을 주셨었다.


난 경쟁에서 밀릴까 봐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3년 내내 주말도 없이 공부했다.


노력의 결과였을까. 다행히 수능 점수도 연고대 합격 가능권에 들었다.


수능 점수를 보니 그동안의 노력이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정말 너무너무 기쁜 마음으로 망설임 없이 서울교대에 지원했다.


 '나중에 교사 되면 애들 진짜 잘 가르칠 거야!'


교대생 시절 반포, 압구정 등 강남에서 초중고 영어 과외를 했다.

고등학생 영어 과외에선 시간당 10만 원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큰돈을 주시는 건 내 실력을 믿어주셔서 그런 거겠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교사가 돼서도 아이들과 엄청난 시너지를 보이겠다는 포부가 있었고,

실제로도 교직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이 한 해동안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껴왔다.


나의 교대 동기들이 자랑스러웠고,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난 지금도 매년 신학기에 우리 반 아이들을 처음 만나면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만났으니 1년 동안 정말 행복할 거예요. 선생님을 믿어보세요. 최고의 한 해를 만들어줄게요."


진심이다.


바로 이 자부심이, 나의 교직생활을 지탱하는 원천이다.


얼마 전 교사 모임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그 얘기 들었어? 이번에 수능 9등급 맞은 애가 교대에 1차 합격했대"


그 말을 들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한국말인데 문장의 호응이 어색해서 한국말이 아닌 것 같았다.

(수능 9등급과 교대가 호응 관계에 쓰이다니..;;)


"뭐라고??? 거짓말~~~~ 말이 돼??"


뉴스를 찾아봤다. 관련 뉴스가 네이버에 몇 건 올라와있었다.


휴......




사실, 위에 쓴 글은 이 말을 하기 위한 사설이었다.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난 9등급 교사를 동료로 맞이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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