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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Jun 24. 2023

'선생님은 주말에 뭐 하세요?' 물어본 아이

작년에 5학년 담임하다가 올해 3학년 담임을 맡으니 애들이 그렇게 아가아가할 수가 없다.


단 2년 터울일 뿐인데 이렇게 아가스러울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놀라고 있다. (너무 뽀짝하고 귀여워.....)

 

오늘 애들을 하교시키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집에 가지 않고 남아서 책상 정리를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물통과 물감, 젖은 도화지가 뒤엉켜있었다.


'어제 학교 예산으로 나눠준 수채화 물감이 좋았나 보네. 오늘도 쉬는 시간마다 그림 그린 걸 보니 ㅎㅎ'


느릿~느릿~


어른이 보면 속 터지는 속도인데 자기 딴엔 최선을 다하여 물통을 씻고 있는 아이가 귀여웠다.  


아이는 혼자서 열심히 물통을 닦다가 갑자기 날 보며 씩 웃었다.


"떤댕님~ 옛날 화가들은 쉽지 않았겠어요(^-^)"


나는 모른 척 물어보았다.


- 응? 왜애?


아이가 이마에 묻은 땀을 쓱 닦아내더니 말했다.


"물통 닦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헤헤"


누가 보면 엄청나게 큰 일을 해낸 것 마냥 ㅋㅋㅋㅋ


자랑스럽게 물이 뚝뚝 떨어지는 물통을 보여주며 얘기하는게 너무 웃겼다.


그러나 겉으론 짐짓 자연스럽게 대답해 주었다.


- 으응 그러네~ 대단하네.

 

아이는 청소를 마치더니 스리슬쩍 나한테 가까이 다가와서 물어봤다.


"떤댕님 있잖아요. 떤댕님께서는 주말에 뭐 하실 계획이세요?"


어눌한 발음으로 경어를 또릿또릿 하게 사용하는 게 귀여웠다.


그러면서도 나름 자기 딴엔 역점을 두고 질문하는 거 같아서 뭐라고 대답해 줄까 진지하게 고민되었다.


'그래, 얘가 듣고 본받을 만한 대답을 해줘야 되겠다. 어쩔 수 없이 하얀 거짓말 좀 해야겠네.'


- 응~ 선생님은 수학공부 하려고. 수학이 너무 좋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말에 수학공부는 무슨..


그런데 이때 아이 표정이 대박이었다.


아이는 순간 아주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랄까.


'선생님 거짓말 하시네 후훗'

+ '그래도 믿어드리는 척해야지'

+  '아님 진짜 수학 공부를 하시는 건가?'

등등의 여러 생각이 다 합쳐진 것 같은 아주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머리를 긁적 긁적이며 말했다.


"헤헷... 그러시군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꾸벅)"


세상에.... 뭐지 이 반응은?!


내 속마음을 알아챈 건가? (사실 거짓말 맞아.....)


선생님 대답을 듣고 최대한 존중해 주려는 아이의 모습에 흠칫 놀라고

그러면서도 약간 내 말을 믿는 듯한 낌새도 같이 보여서 너무 귀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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