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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망 Oct 16. 2021

영화 <헤드윅>의 사랑 이야기

영화 리뷰 / 분석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두 달 전에 처음 봤을 때는 사실 이해를 잘 못했다. 한국어 자막을 켜놓고 보다가, 번역이 구려서 끄고 보다가, 다시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키고 보기를 반복하다 보니까 놓친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도 너무 좋았다. 특히 가장 유명한 넘버인 ‘Origin of love’를 보면 누구나 감동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래도, 애니메이션도, 마지막에 카메라를 보며 노래하는 헤드윅의 얼굴 모두 너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을 찢는 고통을 사랑이라고 부른다고 노래하며 살짝 웃는 헤드윅의 모습. 이 장면을 정말 좋아한다.


너무 좋아서 처음 본지 한 일주일 만에 다시 보고, 이번에 영화 스터디를 준비하며 또 봤다. 한 세 번쯤 보니까 감이 좀 잡히는 부분도 있고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사실 너무 어렵고 아티스틱한 예술 영화 안 좋아하는데, <헤드윅>은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았을 때도 마음에 직관적으로 와닿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아름다운 이야기, 음악, 미장센, 캐릭터로 이루어진 영화다. 살짝 난해한 부분도 다시 보면 상징이 조금씩 보여서 해석하는 재미도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랑이다. 앞서도 언급했던 ‘Origin of love’을 통해 우리는 헤드윅의 사랑관(?)을 알 수 있다. 헤드윅은 사랑을 찾지 못하면 완전해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태초에 하나였던 인간을 신들이 반으로 쪼갰고, 그래서 우리는 평생 외로워하며 사랑을 찾아 떠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헤드윅은 어렸을 때부터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 미군이던 아버지는 자신을 성폭행하고, 어머니는 유고슬라비아로 떠나기 위해 사실상 헤드윅을 미군 루터에게 넘긴다. 자신을 사랑한다던 루터는 자유를 위해 성기를 자르라고 강요하고, 결혼한 지 1년 정도 지난 후 헤드윅을 버리고 떠난다.


1. 토미

그런 헤드윅에게 나타난 것이 토미이다. 헤드윅은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온 토미에게 ‘Wicked Little Town’을 불러준다. 가사에는 헤드윅의 불행한 상황을 설명한다.


The fates are vicious and they’re cruel
You learn too late you’ve used two wishes
Like a fool

And then you’re someone you are not
And Junction City ain’t the spot
Remember Mrs. Lot and when she turned around

And if you've got no other choice
You know you can follow my voice
Through the dark turns and noise of this wicked little town


가사에서처럼 헤드윅은 소원을 너무 어리석게 써 버렸다. 자유를 찾아 미국에 왔지만, 성전환 수술도 실패하고 남편은 자신을 떠나고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Junction City에 남겨졌다.

헤드윅이 이 노래를 소개할 때 헤드윅은 아마 이 노래를 자신에게 불러줄 그런 사람을 찾고 있을 것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그런 사랑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헤드윅에게 토미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브는 아담을 사랑했기에 지식의 나무에서 딴 사과를 건넸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헤드윅에게 자신에게 사과를 달라고 말한다. 헤드윅은 마치 이브처럼, 토미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가르쳐주며 토미를 사랑한다. 졸업 기념으로 지어준 토미 노시스(Gnosis)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지식'을 뜻한다.

토미는 진짜... trash 그 자체

후에 헤드윅의 트레일러에서 토미는 계속 같은 구간을 연습하는데, 잘 안된다. 하지만 헤드윅이 토미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려주자 토미는 갑자기 그 구간을 잘 부를 수 있게 된다. 그 후에 이들은 입을 맞대고 숨을 주고받는데, 이 장면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빚은 인간에게 자신의 숨을 불어넣어 창조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직전에 헤드윅이 토미에게 사랑은 영원하다고 믿으며,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사랑은 전에 없던 것을 창조한다고 설명한다. 토미가 ‘procreation(출산)’이나 ‘recreation(오락)’이냐고 묻자, 헤드윅은 웃으며 “Just creation”이라고 답한다.

헤드윅에게 사랑은 창조나 다름없다. 토미를 사랑해서 토미 노시스라는 록스타를 창조했다. 헤드윅은 정말 온 힘을 다해서 토미를 사랑했지만, 토미는 헤드윅의 ‘앞부분'은 사랑하지 않았다. 토미는… 먹튀를 해버렸다.  



2. 헤드윅

헤드윅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상대를 찾았지만, 사실 자기 자신조차 그러지 못했다. 루터에게 버림받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을 설명하며 불렀던 노래 ‘Wig in a Box’은 헤드윅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쓴다는 것이 나온다. 헤드윅에게 화장과 가발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 위한 가면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헤드윅은 잘 때조차 가발을 벗지 않는다. 하지만 화장과 가발은 영원하지 못하다.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살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토미는 영화 후반부에 다시 등장해서 헤드윅에게  ‘Wicked Little Town’의 리프라이즈 버전을 불러준다. 참고로 이 노래는 영화에서 유일한 리프라이즈 넘버이다(광광 이런 점이 날 울게 해). 헤드윅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불러주길 원했던 바로 그 노래를, 가사를 바꿔서 불러준다.


Forgive me for I did not know
For I was just a boy and
You were so much more
than any god could ever plan
More than a woman or a man
And now I understand
How much I took from you

'Cause when everything starts
Breaking down
You pick the pieces off the ground
And show this wicked town something
Beautiful and new

You think that luck has left you there
But maybe there's nothing
Up in the sky but air
And there's no mystical design
No cosmic lover preassigned
There's nothing you can find
That cannot be found

And with all the changes
You've been through
It seems the stranger's always you
Alone again in some new
Wicked little town


리프라이즈의 가사는 사실 신도, 운명도, 운명의 상대도 없는 것은 아닌지 의문한다. 헤드윅은 신이 계획할 수 있는 것보다, 여자나 남자보다 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헤드윅은 여러 변화들을 겪으며 항상 혼자 남겨진 것처럼, 항상 이방인처럼 느꼈고 그래서 운명의 상대를 찾아 헤매었지만 사실 그런 상대는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절망적이지 않고, 위로가 되는 이유는 헤드윅이 모든 것이 부서질 때도 그 조각들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사랑=창조라는 해석에 비춰보면, 헤드윅은 항상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운명의 상대를 찾지 않아도, 신이 갈라놓은 나의 또 다른 반쪽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헤드윅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것.

Wicked Little Town 리프라이즈를 들으며 우는 헤드윅.. 눈물 버튼 장면임

헤드윅은 ‘Wicked Little Town(reprise)’ 직전에 ‘Exquisite Corpse’를 부르며 가발과 옷을 벗어던진다. 콜라주같이 이어 붙인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노래하다가 순간 밴드와의 갈등에서 오는 스트레스, 자신과 관객에 대한 혐오감으로 뒤덮인 것처럼 느껴졌다. 반복적으로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고, 조각조각 부서진 것을 어떻게든 이어 붙여서 버티던 헤드윅은 무너진다. 맨몸이 된 상태로, 꾸미지 않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헤드윅은 Wicked Little Town을 들으면서 운다.


토미에게 십자가를 그려주었던 것처럼, 자신의 이마에도 십자가를 그리고 공연하는 헤드윅


후에 헤드윅은 자신이 토미에게 그려주었던 이마의 십자가를 그리고, 짧은 반바지만 입고 공연을 한다. 헤드윅이 사랑으로 창조한 토미의 모습, 십자가를 그리고 아티스트의 모습은 결국 자신이 된다. 이때 부르는 'Midnight Radio'의 가사도 헤드윅이 자신이 그대로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에 헤드윅이 이츠학이 키스를 할 때 밀어내고 TV에서 'Tear me down'을 부르는 토미의 모습을 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이츠학은 "Why don't you write a new song?"라며 화를 낸다. 헤드윅이 토미와 사랑할 때는 폭발하듯 나오던 노래들이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던 그 시점에서는 창조되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헤드윅이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고 공연을 하는 것은 자기가 토미를 사랑했던 것만큼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를 계속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온전한 자신의 모습, 자아를 찾은 헤드윅

마지막 장면에서 헤드윅의 몸에 있던, Origin of Love에서 나온 쪼개진 얼굴 타투는 완전한 얼굴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헤드윅은 맨몸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어두운 골목에서 빛이 있는 거리로 나아간다. 



3. 이츠학

이츠학은 영화에서 가장 궁금증을 유발하는 캐릭터이다. 헤드윅의 남편이라는 것만 나오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이츠학에 대한 백스토리를 찾아본 바로는 이렇다. 원래 이츠학은 크로아티아에서 유명한 드랙퀸이었는데, 인종 청소가 감행되고 있어 투어를 왔던 헤드윅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헤드윅은 이츠학에게 다시는 드랙을 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그를 미국으로 데려와준다. 이는 마틴이 헤드윅한테 자유를 위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것과 평행선을 그린다.


헤드윅 몰래 가발을 써 보는 이츠학

영화에서도 이런 전사에 대한 힌트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이츠학이 가발을 몰래 써본다거나, 뮤지컬 ‘렌트'의 드랙퀸 ‘에인절' 역에 캐스팅됐다며 기뻐하는 장면에서 이츠학이 드랙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도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헤드윅은 영화 내내 이츠학을 개무시(..)하는데, 특히 공연할 때 이츠학이 너무 튀거나 하면 밀치는 등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공연 중에도 이츠학을 포함한 Angry Inch들의 여권을 다 내가 갖고 있다고 말하며 웃는 등, 자신이 마틴한테 당했던 것처럼 권력을 이용한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Breathe, feel, love,
Give, free
Know in your soul
Like your blood knows the way
From your heart to your brain
Knows that you're whole


마지막 넘버인 Midnight Radio에서 헤드윅은 이츠학에게 가발을 건네준다. 세상이 자신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 것처럼 이츠학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헤드윅은, 자신이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자기의 본모습으로 있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이츠학에게도 그것을 허락한다. 헤드윅은 드랙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의 본모습이 되고, 이츠학은 드랙을 함으로써 자신의 본모습이 된다. 이 장면은 사랑을 통해 상처 받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헤드윅이 자기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타인까지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드윅 행복하자... 이츠학도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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