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여름 옥상, 온도계가 들려주는 이야기
장마가 물러가고 찾아온 맹렬한 여름의 한복판, 태양은 마치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작렬합니다. 이런 날이면 에어컨이 주는 시원함 속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바깥세상의 열기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조심스레 옥상 문을 열었습니다. 훅 끼쳐오는 열기가 저를 맞이합니다. 이곳은 도시의 열섬 현상에 갇힌 작은 섬 같기도, 태양의 손길이 가장 먼저 닿는 뜨거운 대지 같기도 합니다.
회색빛으로 칠해진 옥상 바닥은 마치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같습니다. 발을 내딛기조차 조심스러워집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손에 들린 적외선 온도계를 바닥에 향합니다.
찰칵, 한 번의 클릭에 액정에는 45.7℃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바로 옆 벽면에 대보니 49.7℃까지 치솟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온도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이 거의 50도에 육박하는 열기로 가득하다니, 문득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습니다.
이 뜨거운 바닥과 벽면이 낮 동안 품고 있던 열기를 밤새도록 내뿜으며, 도심의 열대야를 더욱 심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 위에서 살고 있는 작은 곤충들이나, 혹여 찾아올지 모를 작은 새들은 이 뜨거움을 어떻게 견뎌낼까. 무심히 칠해진 회색 바닥이 저렇게 많은 열을 흡수하고 있을 줄이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쨍하고 푸른 하늘에는 뭉게뭉게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풍경은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시선을 하늘로 향한 채 다시 온도계를 들어봅니다. 찰칵. 액정에는 20.1℃라는 숫자가 나타납니다. 불과 몇 초 전 40도 후반을 웃돌던 지표면 온도와는 너무도 큰 차이입니다.
20도라니, 이 뜨거운 열기 아래서 올려다본 하늘의 온도는 마치 다른 세상 같습니다.
발밑의 뜨거움과 머리 위의 시원함, 이 극명한 대비가 오늘따라 유독 낯설게 다가옵니다.
하늘은 마치 우리의 이상향처럼 느껴집니다.
늘 푸르고, 넓고, 비교적 시원하며 변치 않을 것 같은 공간. 반면 땅은 현실의 고단함과 어려움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은 때로 견디기 힘들 만큼 뜨겁고 버겁습니다. 하지만 그 위에 언제나 저렇게 넓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됩니다.
문득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뜨거운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죠. 경쟁, 불안, 좌절... 때로는 옥상 바닥의 온도처럼 견디기 힘든 열기 속에서 허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위에는 언제나 희망이라는 이름의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숨을 고르고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20.1℃의 하늘과 49.7℃의 벽면. 이 극명한 온도 차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숫자를 넘어, 삶의 이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뜨거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더 높은 곳, 더 시원하고 푸른 이상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상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옥상에 갇힌 열기 속에서, 저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여름의 뜨거움과 삶의 대비를 온몸으로 느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다시 에어컨 바람이 부는 실내로 돌아왔지만, 옥상에서 느꼈던 그 온도 차이와 하늘의 푸름은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여름, 저마다의 뜨거움을 견뎌내는 모든 이들에게, 머리 위의 푸른 하늘이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봅니다.